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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괜찮으니(잠 27:14-27 )

주하인 2007. 8. 23. 09:22

제 27 장 ( Chapter 27, Proverbs )  

 ( 보일듯 말듯한 작은 꽃의 그 자리에 있음이 어찌 이리 감동을 주는지요...)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관계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 같다.

NIV에는 친구라 아니나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이라 나온다.

 

 굳이 친구 뿐 아니라 모든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 하는 말이다.

철이 철을 다듬는 도구가 된다.

보석 같은 자가 되어서 철을 다듬는 도구로 만 사용되는 것 은 아닌가보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쓰시고자 하면 쓰신다.

 철이 철을 다듬 듯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스스로도 다듬어 지는

그런 효율적 관계.

그게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의도 인 듯 싶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아직도...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주님은

괜찮으니.. 하시는 듯한 느낌이다.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 햇살 찬란한 기도원의 늦여름 정경 처럼 내 마음도 맑길 원합니다. )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

절묘한 표현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던 행실이다.

이중적인 것 같고

앞뒤 다른 목적으로 사람에게 접근 하는 것을 아주 진저리 치던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의사가 된 것이 너무너무 다행으로 알고 산 사람이다.

specialist로서 남의 눈치 안보고...

 

 이게 나름대론 정신적 순결을 유지할 수 있게 했을 줄 모르지만

사회적 성공의 기회를 억제하게 했고

폭넓은 대인관계에 제한을 두게 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주님은

당신으로 정체성을 재 무장하게 하신 후

나의 버려야만 하는 이런 터부를 깨시는 말씀을 주신다.

 " 과실을 먹을 수 있지 않는가?

  영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왜 무화과 나무를 돌보지 않고

  왜 상전을 극진히 모시지 않는가? "

그래.

이것 만 봐도 열심히 살아야할 사회적 당위성이 있다.

거기에 주님의 말씀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슬그머니 밀고 올라오는 반발이 있으려 한다.

예전 같으면 눈감고 넘어갔을 항목이다.

 

 다시 들여다 본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과실은 결과물이다.

영화는 상급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사회의 건전함을 위하여

농작물 같은 세상의 수확을 위하여

무화과 나무를 열심히 돌보고

윗 분들의 말씀을 주인처럼 시종 - 성경에도 분명히 권위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한다.   속 뒤틀릴 없다.  -을 잘 들어야할 당위성이 있다.

 자기 주인은 '하나님'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상전과 내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것이 내 삶의 영화와 과실을 보장하는 길이다.

비교도 필요없다.

과거의 터부도 필요없다.

그냥 주님의 말씀이니 순종한다.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 칭찬은 사람을 꽃처럼 피어나게 할 것입니다. )

 

 칭찬으로 관계를 무르 익히겠다.

권고로 방향을 잡겠다.

 

 

 


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 꽃보다 귀한 내 양 떼 , 내 가족 , 내 친지, 내 이웃 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난 의사다.

난 아버지다.

난 남편이다.

난 형제다.

난 친구다.

난 기독교 인이다.

 

내 우리 안에서 만날 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양 떼같이 약하고 귀하고 순한 우리 식구와

소 떼 같은 내 이웃을 살핀다.

특별히 어제 기도원 설교 구절 중에

로마서 15:1-2 에서 "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 라는 구절이 가슴에 왔다.

 소떼와 양 떼

 철과 철

 무화과와 상관

오늘 가슴에 짊어지고

잘 관계에 다져야갈 하루이다.

 

 

 

적용

 

1. 철 같은 나.

 이제는 단단하다.

그러나, 아직은 물르다.

 그럼에도 쓰시겠다 하신다.

주여, 당신이 원하시면 하소서.

내 약점을 사랑하고 이해할 것이다 .

남을 위해서 열심히 갈릴 것이다.

갈리면 아플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이유로 참을 것이다.

 

2. 무화과를 최선을 다해서 돌본다.

 특별히 오늘 전인치유가 내 무화과다.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주님을 바라보고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주인 하나님이 날 보고 영화를 주실 날도 있지 않겠는가?

 

3. 상전을 하나님 보듯이 하겠다.

 비판은 내려 놓겠다.

 

4. 양떼 같은 내 자식, 내 아내에게 부드러운 눈길, 다정한 말로 다지고

 마음으로 감싸 안겠다

 

5. 칭찬을 열심히 하겠다.

 칭찬은 사람을 살린다.

 칭찬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린다.

 

 

 

 

적용

 

 주님

제가 못하는 것만

어찌 이리 잔뜩 늘어 놓으셨는지요.

하나 도 아니고 계속요.

그럼에도

철이 철을 다루는 것 같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제 마음을 다 아시고

제 상황을 다 아시는 듯 뉘앙스를 보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철이라서 아직 안되겠다고 많이 물러섰지만

철임에도 철을 깍는 도구로 쓰임 받으라 권면하십니다.

똑같은 것' 들끼리 갈고 갈리니  오죽 하겠는가라는 자괴감이 들 듯한 상황도

똑같은 종류끼리 엮여서

갈고 갈려

결국은 주님이 원하시는 날카로운 도구가 되는

주님의 원리에 대하여 다시금 알게 해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유이기에

모든 게 다 맞습니다.

어리석은 나의 터부가 하나하나 짤려 나갑니다.

이 아침에도

주님의 바람으로

제 바위 덩어리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떨구어져 나갈 자리가 마련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윗분

 아랫 사람

 친구...

 나.

 모든 자

 모든 관계에 부드럽고 유한 겸손의 관계가 되길 원합니다.

 칭찬을 기쁘게 할 수 있길 원합니다.

칭찬을 많이 말할 수 있기를원합니다.

주님의 뜻이기에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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