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광야에 울리는 것은 다윗의 감동의 찬양이었다 ( 삼상16:1-23 ) 본문
제 16 장 ( Chapter 16, 1 Samuel )
하늘이 흐리다.
그러나,
십자가가 전제가 되니
아름답기만 하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 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사무엘이 무엇을 슬퍼하는가?
사울의 잘난 얼굴을 보면서
그와 보낸 그 밤의
그 아이 사울의 착했던 마음이
떠올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 아이 사울이
그토록 변질 되어 주님 앞에 버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안타까워서 그런 것 아닌가?
거기에 곧 나오지만
사울의 보복도 두렵고...
참 복잡한 마음이다.
한마디로
그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도 인간적인 끈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인간적 끈..
어찌 생각하면
감수성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를..
그런 면에서
안타깝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둘 사이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둘 사이인가?
하나님의 뜻 내지 명령과
사람의 정 내지 인간적인 고려.. 사이.
둘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마음의 상태이 심해지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오래되면
영적인 파괴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뜻은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영적인 낮은 수준에 있거나
심적인 왜곡의 상태에 있는 자들은
따르기가 어렵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늘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이 사울처럼
어릴 때는
위로와 기다림으로
보육하셔서
아이가
차분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먹으며
시원한 자연가운데 평화를 누리는 것처럼
은혜가운데
잘 커오시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순종을 말씀하신다.
사무엘은
많이 큰 자이다.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장로들이 왜 떨까?
잘못했는가?
전설적인 인물 사무엘이
자신의 고향에 방문하니
대통령 방문받은
그런 두려움이 있겠지.
거기에 사울과의 관계를 들은 풍문이 있어서
그의 나타남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서
그때나 지금이나
일부 복지부동의 공무원 ^^;;들께서는
떠실 수도 없지 않아 있겠다.
어찌되었든
주님의 사람 은
주님에게 올바로 서기만 하면
불신자들
똑똑한 세상적 기독교인들은
떨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권위 !!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또
이곳에 왔다.
격변하는 세대에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더 뚜렷하다.
작금의 세월이 그렇다.
전세계에 움직이는
곡물
유류 전쟁은
환경보다 더 위험하다.
치열한 경제 각축 전은
곧
주님이 예고하셨던
위험한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날이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적은 소(小) 자아의 틀
- 촛불 집회도 마찬가지 소( 광우 병 소가 아니라.. 적을 소..ㅎㅎ)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세상의 모임은 그게 그거다 - 에서 벗어나
좀더 큰 눈으로 세상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종말이 이르면
정말 필요한 사항은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시는 것 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제라도
정말 정신차려
세상을 향하는 하나님의 눈물어린 뜻을
읽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이 미친듯 돌아가도
조금은 떨어져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세상이 떤다.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도 사람이다.
아무리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도
순간적으로
인간의 생각 - 사단의 톡하고 건드림 !! - 이 스치고 지나갈수 있다.
어찌되었던
인간은 원죄적 존재가 아닌가?
단 일초라도 놓치면
여지 없이 사단은 챈다.
주님을 믿으면 좋은게 이것이다.
하나하나
주님이 간섭하시는 그것이다.
물론
간섭을 귀찮아하거나
어린 영혼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 뜻대로 받는 자들에게는
평온이고
평강이고
기쁨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여지없이 자신의 뜻을 꺽는다.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보라
귀찮아 하는가?
하염없이
그의 만족스러운 눈빛을
주님께서는 내리게 하신다.
언제까지인가?
그래도 사무엘은
시키는 대로 한다.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하실 때까지 ..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우리시대와는
다른 방법이지만
분명히
성령이 충만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성령이 감동도
큰 감동도 있고
작은 감동도 있다.
사울처럼 일회성 감동도 있을 수 있고
다윗처럼
평생에 성령의 감동이
그 영혼에 큰 흔적으로 남아
그 흔적에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시면
그 영혼이 견디지 못하는
주님의 유달리 사랑하시는 사람도 있다.
난...
성령의 감동의 흔적의 느낌을 안다.
난
그 기쁨의 흔적을 안다.
그 감동이 그리워
하나님 이외의
육신의 유혹이
점차로 중요감을 잃기 시작했다.
아직은
큰 감동이라는 자신은 없지만
내 죽어
하나님 곁에 갈 때
그 때
나에게 허락하셨던
그 첫사랑이
아주 큰 성령의 임하심였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길 원한다.
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성령이 떠나기도 한다.
한번 비취임을 받고 나서
타락한 자들을
'이단' ,'적그리스도'라는 말로
성경에 나오고 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어도
구원받았어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악신이 들기도 한다.
사울은
자신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을 왜곡시킴을 선택하는
죄를 범하고
그 죄가 죄임을 숨기다가
결국은
죄임을 잊어 버리다가
오늘
악신이 드는
결과를 맞게 된다.
19.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이것을 보며
다윗을 위해
사울이 악신을 든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절묘히
다윗과 사울이
주님의 의중 아래서 엮어진다.
그렇다.
결국은
주님의 뜻이
세상의 그것을 누르게 되어 있다.
다윗은
아무 것도 준비도 하지 않았다.
기름을 부음 받고
양치기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예전 부터 그래왔듯이
그냥 양을 치고
부는 바람에 풀피리를 꺾어 물고
가끔 달려드는 사자의 입에서
양을 구해내기도 하는 등
차이가 없는 삶을 영위했다.
단,
이전에 보던
그 넓고 황량했던 광야가
이제
주님의 신이 들어 온 후
다르게 보였을 것이고
그의 수금은
곡조가 훨씬 깊어 졌을 것이 분명하며
그가 광야를 바라볼 때
그의 눈의 감각은
이전보다 훨씬 맑아져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흙바람에도
그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느끼고
그 안의
오묘한 주님의 뜻을
감동으로 받아 들여
그의 입을 통하여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시가 쏟아져 나오고
운율에 쌓여
노래가 되었을 것이다.
그 찬양을 하는 동안
그 찬양이
그 넓은 광야를 퍼지는 순간
어디에선가 울고 있던
새는 울음을 멈추었을 것이고
승냥이는 씹던 입을 멈추었을 지도 모르며
양들은
더 깊이
더 안전한 가운데
그들의 코를
풀 속에 담그고 씹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땐가
하나님의 운용하심으로 인하여
그는
웬 한무리의 말탄 사신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그는 드디어
그의 기름부음을 현실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절대로
당황할 일도
초조할 일도
무엇을 하려 애쓸 일이
아무데도 없다.
주님의 때가 되면
주님의 선택받고
주님의 성령으로
크게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 감동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귀하다고 느끼는 자들은
주님의 시간이 되면
주님이 알아서 역사하실 것이다.
굳이
세상의 낮은 의미들에 쌓여
부화뇌동할 일이 없다.
비록
조금의 손해라면 어떠할까?
그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길에
하등 영향을 미칠 일이 아니라면
조금
손해보고 말 일이다.
그렇게 손해 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안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 을 기뻐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게 약함이 아니고
강함임을 알게 된다면
그냥
손해보고 말것이다.
그 시간에
난
주님과 동행하려는
감동의 시도를
단 일초라도 더 할 것이다.
내
감동을
어디에라도 담아
세상에 널리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찬양의 소리,
내 기쁨의 글
내 감동의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깊은 하나님의 말씀의 풀 속에
고개를
조금은 더 담게 될 지 모르고
어딘가
필요없는 곳에 정신을 팔던
승냥이 같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솔깃이라도
하게 될 지 모르며
어딘지 모를
괴롬에 힘이 들어 하던 분들이
내
시와 찬양과 시선에
힘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때가 되면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원하는 자리로
날 옮기실 것이다.
그게
다윗의 입장에서 본
우리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뜻이실 줄 모른다.
적용
1. 기다린다.
무엇이든 서두를 일이 없다.
2. 기뻐한다.
3. 성령 충만을 사모하자.
주님의 영감을 놓칠 일체의 일을 배격한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힘듦을 참을 줄 도 알자.
6, 지루함은 주님의 시험이시다.
기다리자.
7. 눈을 들어 늘 하늘보자 .
8. 이 마지막 세대에 정신을 차리는 자가 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특별히 늦은 수술을 마치고
내려갔던
전인치유에
은혜 받고 설교를 듣던 제가
주님의 영감아래
찬양 몇 소절에 참여하며
제 영혼이
놀랍게 뜨는 경험을 했습니다.
목소리는 놀랍게 컸고
은혜는 강렬했습니다.
참여한 환우 직원모두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광야의 다윗이
충만한 은혜로 수금을 울리며
찬양을 하고
시를 읖던 기억은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묵상이 은혜롭게 진행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
주님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속에서 ( 사무엘 상 17:12-27) (0) | 2008.06.06 |
---|---|
골짜기에서 난 내려다 본다(삼상17:1-11 ) (0) | 2008.06.05 |
가만히 겸손히 멈추자(삼상15:16-35) (0) | 2008.06.03 |
내 귀에 들리는 소리 ( 삼상 15: 1 -15 ) (0) | 2008.06.02 |
사울 닮지 않게 하소서(삼상 14:36-52 ) (0) | 2008.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