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마침의 방점을 묵상하며[삼상9:1-14] 본문
인생
역사가
이런 씨줄과 날줄의 직조처럼 이루어진게 아니던가?
그리고 그 완성은
우연처럼 다가온 그 어떤 일로 이루어지고...
그 우연의 방점
마침은 하나님의 도장이고......................
내가 할일은
감사하며 기대하며 기다릴 일 뿐...........
과도한 기대와 실망이나 부러움은
오늘도 모두
주 안에서 내려 놓을 수 있길 기도한다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베냐민은 형 요셉과 아버지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자다.
베냐민 지파는 가장 작은 지파로 몰락하기도
사도 바울과 ...오늘 첫번째 이스라엘 왕을 배출한 (아..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영광이다..복잡^^;) 가문이기도 하다.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은 가장 작은 지파 출신이지만
유력자 아버지를 둔 자이기도 하며
아주 뛰어난 용모와 체격을 가진 자이기도 하다.
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암나귀를 잃은 것은 속상한 손실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왕'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왕...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전까지는 거의 대부분 죽거나 영창행였는데...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그리고 또한 아들 사울의 순종하는 효심을 확인하는 계기기도 하니
그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이기도 하지만
행인가 불행인가?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암나귀는 끝끝내 찾을 수 없어
많은 갈증과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를 계기로 '대단한 인연' 사무엘을 만난다.
행인가 복인가?
나귀를 찾아서 그냥 돌아가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노후
잘생긴 동네 유지로
많은 재산과 어쩌면 아름다운 몇명의 아내 ^^; 와 자식을 거느린
부러울 것없는 착한 가장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어디가 복인가?
하필이면 '지혜로운 종'이 근처에 보필자로 있는것은 웬일인가?
좋은 인맥,
좋은 사람
좋은 관계가 다 좋은가?
14.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그 방점을
'마침' 산당으로 올라오는 사무엘과 마주하여
그 사울의 운명, 베냐민지파의 유력자 아버지의 운명은
우리가 다 아는 그 방향..
극적이고 화려한 초반의 성공과 놀라운 명예와 부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의 누구보다 비참함은
다 잘 알게 된다 .
왕.
그리고 그 결말을 결정짓는 순간...
인생의 눈으로
범생의 눈으로
지금도 세상의 부함과 화려함에 마음이 솔깃하는 주하인 (다행이도 이전보다는 아주 아주 덜하다.. 그나마.ㅎ.)의 눈으로
그 거부하기 힘든 결정의 순간이
'마침'이라는 단어로 응축이 되어 그들 사울 앞에 나타났다.
그 '마침'에는
그 모든 베냐민 이후 그 지파를 통해 흐르고 흘러 만들어진
사울의 현재와
그 인생 여정을 알수 없는 '사환'과
아버지 기스의 영향과
마침 그 자리에서 그렇게 도망쳐 사울들의 애를 태운 암나귀의 그 행동과
...................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수없이 오랜 시간을 거치고 익어온 시간을 재료로
그 시간동안 그들의 마음에 희노애락의 모든 굴곡들이 끼얹어져
마침내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마침' 그때 사무엘로 하여금 그 자리에 나타나게 하셔서
'사울'과
'다윗'과
결국 '예수님'으로 이어지고 이어지게 하셔서
이 시간 '나' 까지
이 자리에
이렇게 서게 되었다.
그 것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 표현 하면 맞던가?
카이로스...
우연처럼
마치 그 시간에 그 사건을 꿰어
마치 씨줄과 날줄이 엵이듯
거미줄이 얽히듯
그렇게 하는 하나의 방점이 그 '마침'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이 꿰시는 그 마침의 방점...!
그 과정의 어떠한 일도
하나님의 '마침'을 위하여 모이고 모여들고 엵어지는 것이며
그러한 인생의 모든 조합...
위의 기스와 사울과 베냐민과 베냐민 지파와 사환과 사무엘과................
심지어는 '암나귀'와 그 암나귀의 어미 아비와..... 가
롤러코스터 타듯이 엵이고 얽히지만
그 결국은
하나님의 '마침'이란 '버튼'에 달려 있으니
웃을 필요도 울 이유도 그리 크진 않다는 이야기다.
왜 혼돈 스러울 때 울지 않을까?
왜 죄 지었을 때 회개치 않을 까?
왜 어려울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 않을까?
왜... 왜.. ?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다.
우리가 어찌 모든 것 다 '주님'이 하실 걸.. 하며 관조하고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 존재가 될 수 있나?
그것은 '성화'된 성인이나 가능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될 대로 되라하는 자들에나 해당할 것을...
그냥..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우리 같은
나름 좁은 문을 달가워하며 선택하는 자들로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다면
'너무 흥'하는 것도 좋아할 이유가 적어지고
너무 힘든 것도 과도히 슬퍼하거나 어려워할 이유도 없으며
주변의 잘나감도 과도한 부러움이나 질투할 이유가 없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마침.. .
그 마침의 순간이
내게 오게 되는 것을
만약 내가 느끼게 된다면
그때는 '더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앉아 여쭈어 보아야 하며
타인에게 그 순간이 온 것이 알아질때
특별히 그가 내 원하는 대상이 아닐때 (Y.. 맘에 안든다... 그런 자가 사울처럼..^^;;)
그것.. 꼭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오히려 그의 발전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내면적 든든함을 달라고 기도하거나
그의 예상되어지는 불행한 결말이 '악한 쾌감'으로 오지 않도록
스스로 돌아보게 하시도록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아도 될 것이고
과거를 돌아보아...
흘러온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면
그 마침을 위하여 여기까지 인도하신 매개체였구나... 오히려 감사하는
성숙하고 귀한 깨달음이 되었으면 한다.
나...
오늘도 흔들릴 일이 많다.
괜한 '크로노스'의 일이
홀로만 겪는 불행이나 힘듦인양 혼돈스러워 할 때도 많았다.
이제.. 이 모든 것..
그 어떤 불행이나 다행이나 행운이나 속상함...........도
다 하나님의 '그 마침'의 시간을 위하여
질주하는 크로노스의 일일 뿐임을 잊지 않도록 더 간구함으로
이 일상의 흔들림에 일회일비 하지 않길
권고하시는 것 처럼 느껴진다.
감사하다.
주여.
순수하고 맑은 청년..
다양한 인생의 새옹지마의 히스토리를 지닌 그 인생,
베냐민 지파의 소년 사울이
드디어 '마침' 사무엘을 만나게 되는
그 역사적 순간을 묵상하며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후의 상전벽해의 변화의
바로 그 시점을 위하여
지금껏
그 모든 것이 마치 씨줄처럼 날줄처럼 엮여 온것임을 묵상할 때
그 마침의 방점을 위하여
그 모든 것이 허락되어진 것임을 깨달을 때
현재의 내 모습,
예상되어지는 부족한 내 미래에 대하여
그리 큰 고민과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 가운데서
허락되어진 매일의 일상을
그 모든 과정을 통하여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려 갈것임을 믿고
모든 것 내려 놓고
가능하면 받아 들여서
허락되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별 흔들리지 않게 되길 원합니다.
주여.
주신이도 주님, 가져가실이도 주님이시며
지금의 고난은 유익이기도 하며
고난은 고난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게
한줄로 꿰어지는 '선'이되기 위하여서는
오직 주님...
오직 하나님의 뜻 만을 기억하고
매일을 주님 안에서 주님을 기도하며 사는 가 아닌가 하는 데만 달렸음을
그로 인하여
오늘.. 과거.. 미래에 벌어질 그 모든 세상의 일이
드디어 의미를 지니게 됨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나머지... 주님을 모르는 그 어떤 부귀와 웃음과 울음과 잘난체와 울부짖음... 어떤 것도
다 스러져 없어져 잊혀버리고 말...
헛된
헛되고 헛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마침'만 의미가 있고
그리되기 위하여
오늘 내가 하루 종일 얼마나 주님을 잊지 않고 보냈는가만
고민하고 기뻐하는 의미가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내 주 하나님..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베냐민 지파 참고, 펌)
성경에서 딱히 좋은 언급은 없다. 바람나 집나간 레위인의 첩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 영역의 건달들이 레위인의 첩을 강간한 끝에 결국 사망에 이르렀고, 범죄자들을 비호하다가 다른 11지파들을 적으로 돌리며 몰살직전까지 이르게 되면서 '가장 작은 지파'라고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이 스스로 말할 정도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사울 때 1세대로 끝나긴 했지만 왕을 배출했었다. 이스라엘의 남북분할 때 유다 왕국에는 베냐민인 군대가 있었으며, 베냐민 지파의 도시인 여리고는 북이스라엘에 속한 것으로 나온다. 이로 보아 베냐민 지파는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양쪽으로 나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남북분할을 예언하는 성경 구절에서 12지파 중 11지파의 행방만이 언급되는 것도 베냐민 지파가 어느 한편에만 속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레위 지파, 므나쎄 지파, 에브라임 지파, 이다말(아론의 막내 아들) 지파와 함께 베냐민 지파는 사마리아인 중 20세기까지 이어져온 지파였지만 1968년에 단절되었다(참고).
남왕국 유다에서는 유다지파와 함께 남았다가 신약에 이르러서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도 바울로가 자신을 소개할 때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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