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더 주님 만 힘써 바라보자[삼상10:17-27] 본문
17.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그래도
무조건 '하나님 앞'에 가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18.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선택권을 주신다.
매사 '사사'에게 여쭙고 물어보며
그때 그때 살아가는
'하나님 위주의 삶'과
19.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편리, 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즉각적인 효율적 삶.
제도 하에 만들어진 씨스템으로 웬만한 것은 해결되는 편리.....
하나님의 간섭 덜 받고(^^;; 죄송...그때 왕을 원하는 나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사에서 추론해본바... ) 마음대로 살수 있을 듯하고 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하는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는
'왕' 을 중심으로 사는 삶 사이에서
우리는
나는
매사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돌아본다.
나.
그래도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을 사는가?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삶인가?
그게 힘들던가?
귀찮던가?
오히려 하나님의 잔소리 (죄송 합니다...주여.. ) 가 더 그리운가?
홀로 , 우리끼리가 맘에 편한가?
나..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을 따르는
오늘의 삶이다.
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왕.
하나님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기준을 왕으로 삼아살려는
하나님은 단지 왕 보다 높은 상징의 존재로만 치부하고 살려는 자들의
위험성을
이리 보여 주신다.
사울,
우리 모두 알지만 대단한 용모와 체격을 가진 자.
24.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그러나 누구나 보아도
심지어는 '선지자' 사무엘의 눈에 보아도 혹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그의 심사가
23절에보아 알듯,
그의 종말을 아는 우리가 알듯
'인격적 비틀림'이 있는 자다.
왜 아닐까?
'원죄적 존재'인 인간을 '왕'으로 삼아
그를 모델로 (눈에 보이는 3차원적 존재이니 영이신 하나님보다 얼마나 즉각적이고 좋아보였겠는가?)
인생을 걸고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일까?
다시금 편하고 좋고 흡족하며 넓은 길 같은 '왕'을 따르는 것과
보이지 않으시고 차원 높은 (실제 다른 차원의 하나님이시잖은가? .. 그러니 3차원의 우리에겐 매사 받아 들이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던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사사를 통해서, 제사를 드리는 번거로움.. 등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과정을 거쳐야 하니
왕의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유혹적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비록
하나님의 명령이시고
하나님의 뜻이시며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목도하였고
그 결과의 어마어마함을 보았어도
'긴시간'이고 '오랜 시간'이며
즉각적이지 못하고
무겁고 어려우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매일이
이 미련한 우리들,모두에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
그래도
하나님의 의중을 여쭙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얻어낸 승락이기에
하나님께서도
이 가련한 인생들의 요구를 들어 주시긴 하지만
그것..............
정확히는 어린 아이의 뗑강을 들어주시는
한숨쉬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랑이 보이는 듯하다.
25.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그래도
'사울'도 성령이 감동되어 새사람이 된바가 있었고
주변에도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있었다.
아..
일단, 그 선택이 하나님께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긴 한다.
기도하는 것.
그 자체가
어떤 선보다 우선한다는 뜻이시다.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이 너무 강력히 원하면
어쩔수 없이 따라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분명코 그 길이 옳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완전한 타락만이 아니면
먼길 돌아가는 안타까움이 있을 지라도
결국 옳은 지점에 돌아갈 것을 믿고 말이다
거기에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있지 않던가?
결국 돌아올 것을
주님은 믿으시기에 '왕'.......
그 미련하고 어리석고 어쩌면 배악의 죄를 허락하신 것이시다.
나.
지금.
오늘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보는가?
내가 보는 것이 '왕'의 겉모습은 아닌가?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이 지침 탓은 아닌가?
혹여 세상의 잘나가는 듯한 원리르 힐끗 거리는 것은 아니던가?
그래도 기도하니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 그리 오인하는 것은 아닌가?
그게 내 자아의 발로는 아닐까?
잘 쉬고
주님 안에서 은혜 받고 안식을 누리다가 출근한 월요일이다.
괜한 혼돈이 머리속에서 춤을 추려한다.
필요없는 긴장이 나를 사로잡으려 한다.
내 안의 '왕'을 사모하는 마음이
잘 다져놓고 훈련되어진 내 영혼을 뒤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묵상해보아야겠다.
비록 , 느낌으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같아 보여도
진정 그게 주님 앞에 옳은 것인지..
자꾸만 여쭈어 보아야 겠다.
주님.
머리가 복잡합니다.
솔직히 말씀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괜히 그렇습니다.
남아 있는 여명의 시간이 넘 지루 한 것 같고
괜한 불안의 생각들이 몰려오려 합니다.
답답하려 합니다.
이때.. 누군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직접적인 교훈을 주고
이렇게 이렇게 하자.. 라고 으쌰 거리면서
절 인도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제 속에서 불쑥하고 올라옵니다.
모여서 빙둘러 앉아
자신의 영적 경험담과 지금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위로와 공감을 보내주며 '괜찮아.. 괜찮아...' 박수 보내며
한명씩 돌아가며 허깅 받고....
또 멘토 한명 붙어 깊은 대화도 나누고..
뭐 .. 그런 프로그램에 좀 참여하여보면 .. 하는 기대가
마음 속에 있을 때가 있다.
눈 앞에 실제적이고 즉각적이고 현실적이며 지혜로운...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어쩌면 '하나님 안에서 세워진 왕' 같은 시스템 아닐까?
당연히 그 안에서도 성령은 임하시니...
비단 이런 상황 뿐일까?
매사에 이런..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가까운데서 찾으려는 노력은
내게는 없던가?
그게 나쁘지는 않지만
매몰될시 영적인 마이너스가 될 그런 상황............
이제...
점차로 더 단순해져가야 할 시간이고 시대다.
너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많아진 '정보'들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믿음.
죄송한 표현이지만
'날것 그대로의 믿음'의 회복 말이다.
오직 기도
오직 기대
오직 하나님 ............말이다.
주님.
아직도 어리석고 미련하여
가끔 '왕'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고
주변에 '성령'의 존재를 느꼈으면 그게 옳은 줄 알고
거기까지가 옳은 믿음인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을 원하시는 듯합니다.
월요일.
잘 보낸 주일을 지내고
괜한 혼돈이 잠깐 머리를 스치고 지나며
마음을 흐리게 하려 했습니다.
주여.
왕의 유혹인 듯했습니다
오직 주님 만 바라보려 하오니
새삼 .. 왕 , 새삼 사사시대의 원초적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더 하나님.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주여.
제 ..그러한 미련함을 불쌍히여기시고
제 그래도 깨닫는 결심을 귀히여기시사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는 하루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런즉 주 앞에 가만히 서 있으라[삼상12:1-15] (0) | 2022.05.25 |
---|---|
진정한 기쁨 완전한 행복[삼상11:1-15] (0) | 2022.05.24 |
내 인생의 암나귀[삼상10:1-16] (0) | 2022.05.22 |
마침의 방점을 묵상하며[삼상9:1-14] (0) | 2022.05.20 |
늙어가는 자들을 위한 권면[삼상8:1-22] (0) | 2022.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