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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영혼의 담금질 작업(삼상 22:1-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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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영혼의 담금질 작업(삼상 22:1-23)

주하인 2008. 6. 16. 09:27

제 22 장 ( Chapter 22, 1 Samuel )

 

 

 어떤 상황에도

이렇게

하늘 만 보며

아름다이

꽃을 피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한 주되세요..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아둘람 굴.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가

고난에 빠지자

식구들,

그를

그리도

사람같이 여기지도 않던

식구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든다.

 천천이요 만만이라면서

사울보다 다윗을 높일 때는

아니더만...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 이었더라
 
 그가

역경에 처하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환난,

빚 당한자

원통한 자..

 

 이들이

다윗 왕가의 기둥이 되는 자들이다.

 

 고난은

반드시 겪어야 할  

그 어떤 것이다.

고난은

고통이지만 축복이다.

누구의 표현대로

위장된 축복이다.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보라.

사울과 비교해 보라.

 

그,

고통없이 왕이 되고

모든 것 다 가졌던 자가

마치

보리수 나무 아래의

누구같은 자세로

단창 들고 앉아 있다.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그

사울이

미친 사람같다.

 아들을 의심하고

아무도 자신을 도우는 사람없다고

신세를 한탄한다.

 

 쉽게 말하면

'망상'이다.

잘못된 생각의 고착..

 하기 싫어도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고정화된 생각.

 

 왜 그럴 까?

 사울은 왕이고

고생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왕이 된 순탄한 인물인데..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사울의 만행에

도피한 아히멜렉의 아들 ,

아비아달

그가 다윗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다윗은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라면서 탄식을 표한다.

 죄책감에

깊이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별히  

다윗의 현 상황은

아둘람 골로

나락에 떨어진 상황이다.

자기 연민 만 더해지면

" 그래, 나는 안되어.

 나는 재수가 없는 사람야.

 나만..

 나로 인하여..

 나..' 하면서

양심을 가장한

사단의 무리들이 공격하고 들어와

망상을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대인의 

 '우울증'  유발 상황이랑

너무도 비슷하다.

 

하지만

다윗은 안 그런다.

현실에서 중심을 찾는다.

 

그는

건강하다.

 

 

 

 두 사람이 대비된다. .

 

 사울은 

거침 없이 왕이 되었다.

다윗은

지독한 곤란과 고통을 겪는다.

 

사울은

쫓는 자다.

다윗은

쫓기는 자다.

 

 사울은

칼과 단창을 쥔 자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서 얻은 

칼 한자루 이외 변변한

방어 무기 조차 없다.

 

 사울은

왕의 호화로운 물자를 가졌다.

다윗은

아둘람 굴의 빈곤한 생활이다.

 

사울은

왕궁의 무장한 군대로 둘러 쌓였다.

다윗은

가난하고 억울하고 원망에 서린 자들 뿐이다.

 

 

 하지만

 

사울은

망상에 시달린다.

다윗은

건강하다.

 

 사울은

혼내고 질타하지만

다윗은

위로하고 보장한다.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리도 이상한 대비를 가지게 했는가?

 세상의 이치로 생각하면

가진 자가 더 행복하고

가진 자가 평안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울이 안절부절 못하고

다윗은 담대하고 편안하다.

 

 하나님이 그 기본임은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다윗은 틀림없이

담대하고 평강 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다.

 

 그 하나님이

'고난'을 다윗에게 허락하신 게

의미가 심장하지 않는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고난이 유익이다.

 

 그 유익은

인간의 인격의 폭을 넓힌다.

그것은

자신의 담대함과 평강을 가져올 뿐 아니라

남들,

특별히

그 자신과 비슷한 고난을 겪는 자들,

즉,

환란을 당하는 자

빚진 자

원통한 자 들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도피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

인생에게 허락된 고난의 의미다.

 

 즉,

 

고난은

우리의 인격을 높이고

세상이 안 바뀌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넓어져

세상과는 상관없는

누릴 기회이다.

즉,

순금과 같은

반짝이는

인생의 행복을 위한

우리 영혼의 담금질 작업이다.

 천국의 높은 상급을 위한

시험도구이다.

 

 또한

고난은

인격의 깊이를 깊게 할 뿐 아니라

남의 고난을 알게 하는

공감의 능력을 넓히는

도구이다.

 실패를 아는 자 만이

실패를 한 사람들의 아픔을 안다.

 다윗에게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에게는

아픔이 있고

그 아픔을 이해하는 가슴이 있고

그에게는

눈물이 있되

그 눈물이

자신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눈물이기에 그렇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이

하나님이 전제가 되기에

그들이 느끼는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을 보고 오는 것이다.

그게

진정으로

고난을 넘어온

크리스찬 리더의 모습이다.

 

 반면

고난을 모르는

CEO는 위험하다.

그들은 전횡을 일삼을 위험이 다분하다.

특별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전횡은

많은 자들로 하여금

실족할 도구가 된다.

사울처럼..

 

 

 다윗은

바닥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가장 큰 성공과

맞닿아 있다.

 

 

 

적용

 

1. 고난아 오라...

 오지 않으면 좋긴하다. ㅎㅎ

 하지만 고난을 이겨낼 저항력을 주소서. 주여..

 

2. 남의 아픔을 이해한다.

 요사이 시험이 든 일이 있다.

 아닌 줄 알지만 답답하다.

 그 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조금은 더 진중할 마음을 주소서 주여.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헛된 죄책감은 끊는다.

 주님 안에서 많이 끊긴게 사실이다.

이전에는

많은 죄책감이 날 괴롭힌게 사실이다.

이제 주님에게 맡기는 작업을 한 후

장래의 번영을 위해 기도해 주는 횟수가 훨씬 많아졌다.

과거는 주님께..

미래도 주님께........

 

5. 중보기도한다.

 

6.   기도원 가겠다.

 

7. 감사한다.

 아둘람의 체험을 통하여

주님,

어두움 가운데 빛이시던 당신을

확연히 알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도

 주님

놀라우신 하나님

오늘 하루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여

가능하면

고난은 고만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시라면

허락하시되

저에게는

다윗처럼 담대히 견디어 낼

힘을 주소서.

주님..

그것을 통하여

남을 이해할 힘을 허락하시고

나를 이해할 능력을 주소서.

쓸데 없는 자책은 피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전진을 위한 능력을 주소서.

주님

오직 주님 만이 제 삶의 모든 것이나이다.

주님 안계신

제 삶은 존재의 의미가 없음을

아둘람 굴 속의 회상을 통하여

다시금 고백합니다.

빛을 보이시는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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