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더 인내할 수 있는 이유[삼상22:1-23] 본문
아..
깊은 어둠은
깊은 쉼의 또다른 의미이기도 하며
곧 있을 찬란한 아침의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잠잠히 참아 기다릴 일 뿐이다
흔들림은 다
주 앞에 내려 놓고
말씀과 은혜에 의거하며 말이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이 큰 환난에 처하자
오히려 그를 무시하던 '가족'과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환난 당하던 모든 자...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다 한다.
'환난'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듯했던 가족들이
다른 화합의 노력을 하지 않고도
오히려 환난 중에 하나로 뭉쳤으며
인생의 버거움을 겪고
나름 깊은 철학들을 가지게 되었을 세력들이 (어쩌면 그들 환난 , 빚진, 원통함도 그들에게 오늘을 위한 준비가 아니시었을까? 인생의 목표 !) 규합되어 다윗이란 인물이 세워지는 배경이 되게 되지 않던가?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그 시간안에 매몰되어서는 알수 없다. ^^*
믿고 기다려도 될 확실한 증거.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이 말이 가슴을 편하게 한다.
이 환난 깊은 중에
그는 드디어 한 결론에 달했다 .
'당연히 ' 하나님께서 하실일이 무조건 선하심을 알고
그러기에 자신이 지금은 그래도
언젠가는 모두 해결되고 더 좋은 결과가 있을 줄 믿지만
그것은 모두 마음의 문제일 뿐
확신에 달하진 못하였었지만
그 가장 바닥 상황에서 '힘'이 되줄 증거들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그는 '소망을 가진 기다림'을 더욱 결심한 것이다.
그 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라는 말에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
이 구절에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가 주 안에서
당연히 기다리고 기다려야 하는 당위성을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 속 생각이지만
마음까지 내려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그렇다 .
아직이다
하지만... 다윗도 그러함을 보았고
그 소망의 결심을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가 아닌
'모압'
어쩌면 자신의 가장 큰 숙적이기도 한
모압 왕에게 가서
뜬금없는 저런 '신앙고백'이 상황에 맞지 않지만
이 상황에 맞지 않음이
때로 성경에 자주 나오고
그 뜬금없는 고백을 적장인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은
이방왕, 우상을 섬기는 나라의 왕인 모압왕이
가만히 들어주고 있음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터치'하신 증거가 아니면 가능치 않을 이야기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깊은 감정의 부분까지 공유되게 하는 상황.
그것은 '성령'의 은혜를 경험해보지 않은 자들,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의 자연스러움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상황들이
성경에는 도처....에 나온다 .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됨,
그러하신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 찾기 같은 심사를 느낌이야 말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레마를 듣는 자들의 기쁨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ㅎ
각설하고
'부모'라 나온다.
나..다윗에게 어머니가 '당연히도' 있을 것임을
오늘에야 처음 깨달았다.
정말..
단 한마디도
다윗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그런데 3 &4 절 통틀어 '두번'이나 '부모'라는 단어가 나온다 .
그리고 그들을 걱정하여 '모압' 왕에게 부탁하여
의탁하였다 나온다 .
'가족 간의 아픔'이 새삼 읽혀졌다.
역기능 가족의 구성에서 '아버지 '힘이 너무 강하고 왜곡된 그 시절에
왕따 소년 양치기 '다윗이 어떻게 나왔던지 짐작할 만한 구절이지 않던가?
내내 어머니 부재 같이
심리적으로 전~혀 위안자 역할, 품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
오직 생물학적 '모친'
죽은 자 같이 그의 삶 내내 역할을 해주지 못했던 '모친'이
실제로는 생존해 계셨었음을
여기서야 알게되니
그 가족의 '심리적 역동'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져 오지 않던가?
그러나, 그러함을
그는 광야의 연단시간 동안,
그 너른 광야에서 고요히 수금과 나팔로,
'양떼'의 평화로움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마음이 위로를 받았고
가족들에 대한 엮임이 있지 않게 성장하게 되고는
드디어는 가장 힘든 시절에
모든 가족이 하나로 똘똘 뭉치고
늙어 연약해지신 부모를 모압왕의 배려로 따로 모시는 등...
완전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게되니
마음이 따스해지려한다. ㅎ
아..
주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전능의 하나님이시며
그 모사의 기기 막측하심이 이건..ㅎ...
상상하지도 못할 상황에서
'세를 규합'하게 하시는 것도 모자라
일거에 '가족간의 우애와 화합'
그리고 '노부모 공경'까지 해결해 주셔서
그의 가장 기본되는 마음의 부담을
가장 어려운 시간에 해결하셔서
바닥 부터 온전한 마음으로 새롭게 일어날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는데
그 모든 것
상상치도 못한 시간에
상상하지도 못할 일거에 해결해주시고
무슨일을 하든 든든한 마음으로 하게 하시니
그게 놀라우신다.
그리고 오늘 다윗님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를
기쁘게 가슴에 담아도 될 것 같다
잘 쉬다 왔다 .
목요일 반차 후 금요일 하루 휴가 내니
2박 3일은 캠핑 다녀올 수 있었고
토요일인 어제는 본집인 ㅇㅇ에 올라와 '귀여운 손녀' 와 보낼 수 있었다.
속리산 산행 덕분에 몸이 자꾸만 삐걱 대지만 그래도 잘 놀고는
들어와 쉬려다 보니
갑자기 마음이 묘하다 .
가만히 들여다 보니
내 기도하고 있는 제목 중 하나인 '은퇴'의 시간 이후가
갑자기 묘한 불안 내지 걱정으로 다가오고 있음 때문인듯하다.
나름, 정리되어
내려놓을 것 내려 놓고
내 삶의 방향을 적절히 정리하였다고 생각했으나
내 수십년의 불안한 예견의 습관은
날 그만 내어두지 않으려 한게 이유가 맞다.
아.......이........'역기능 성장의 무게'.......
얼른 털고 주님 말씀으로 , 화살 기도로 털어내려 했지만
내 예견의 스토리도 꼭 틀린 것 만은 아니다 .
아니다.
오히려 너무 논리적 생각들이라 '거부'하기 힘든게
날 더 힘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내가 낮에 운동하러 지나다가 'ㅇㅇ천변'에 다리밑에
마치 '탑골공원'처럼 노인네들만 모여 있는 사진을 찍어 보여준게
더 가슴을 그리 어둡게 만들려는 단초가 된것도 사실이다. ㅜ.ㅜ;
왜 아닐까?
내 계획.
장래에 대한 내 행동의 방향, ........
그것에 대한 막연한 기도 역시
현재까지의 내 건강이나 내 의욕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이나 의욕이 사라지고 옅어지는게
늙어가는 자의 특징들이 아닌가?
그런 기준으로 '일이 있는' 지금을 넘어
아무 자극이나 의욕, 동기.. 가 옅어지고 사라지는
저 나이 때가 되어
아무리 내 생각대로 '돈' .. '하고자 하던 계획'들이 이루어진다해도
그게 동일한 소망과의욕으로 유지될까?
내 죽을 때까지.... .?.... 가
내 불안한 예견의 함축이었다.
자도 잔거 같지 않다 .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났지만
심히 피곤하려 했다 .
알람울리는 것 무시하고 더 자려 했지만
의욕이 사라져 일어나기 싫었다 .
그게.......
본 집에 올라와 손녀와 가족끼리 어울린 다음 날인
오늘 '주일'이다.
그리고 덜 풀린 피곤에 더해진 '두려움'이었다.
누워서 음성으로 들은 오늘 말씀 구절은
나에게 멀~리 있는 듯 들렸다.
그래도 겨우 의지를 내어
자리를 털고 일어 났다 .
세면을 마치고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말씀을 붙들기 위해
서재로 자리를 옮겨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
그리고는 말씀을 들여다 보았다.
여지없이 주님은 답을 주셨다.
아픔이 누구보다 많은 다윗.
성장시기 '모친부재' 상황에 너무도 강팍한 '아버지'와
뛰어난 형제들 사이에 눌려 온갖 무시와 잊혀진 채 마치 '종'처럼 커온 '다윗'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장 성공했으나
가장 비참한 바닥치기 하고 있을 그 절대 절명의 시기에
불현듯 모여들은
'가족'들, '부모'님과의 완벽한 '회복'(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은 없다 !! ㅎ)을 거쳐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라는
정말로 뛰어난 신학적 통찰력으로
'모압왕'과
이 시간 이곳의 갈등하던 나... 주하인의 가슴에
확실한 깨달음을 주고 간다 .
은혜로 자연스럽게 묶어 놓고 간다 .
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어떤 예견도
주님의 가장 선하심을 알수 없으며
가장 선하신 방향대로
기기막측하고 신묘막측하시게
도저히 수를 짐작하기 힘든 고수의 필살기 보다 더 대단한 방법으로
당신을 놓치지 않는 자,
주하인을 포함한 '좁은 길'을 선택한 모든 분들의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그래서 그를 기대하고 더 기다리고 소망 가운데 거해도 될 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하나님.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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