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여쭙고 여쭙는 기도의 삶[삼상23:1-13] 본문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탈취하려는 일을 듣고
'다윗'이 한 일은 '여호와께' 여쭙는 일이 우선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시는 말씀이셨고...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당연히 드는 의문들..
겨우 사울 등의 핍박조차 두려워 유다에 머물기를 무서워 했는데
어찌 블레셋의 군대를 칠 수 있을 까라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저항이 있다.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다.
그것도 '그럴듯한 논리'로........
거부하지 못할 두려움이 나중에는 온 생각을 사로잡아
두려워하는 것 이외 다른 생각 못하게 막아서는 것이
두려움이다 . ㅠ.ㅠ;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어찌 안무서웠을까?
그러나 그는 두려움이든 무엇이든
'하나님께 묻'는 자였다.
그것도 '다시' 물었다고 나온다.
그렇다.
이게 중요하다 .
두려운 것은 두려운 것이다 .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셨어도
난.. 다윗이 아니다.
다윗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옳은 인간은 '예수님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뿐이셨다.
아.. 그 분 인간 예수님도
두려워 피가 땀이 되어 흐를 때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
그렇다.
두려움은 내가 맞서는 것이 아니며
맞서서 누른다고 눌려질게 아니다.
마취될 수는 있어도
곧 다시 더 무서운 두려움으로 다가올게고
더 마취시켜도 점점 짧은 간격으로 더 커지는 고통으로 다가올게다.
그것을
'다윗'은 '기도'로 해결하였다.
안되는 것 여쭙고
말씀하시는 것이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하면 또 여쭈었다.
그게 레마다 .
하나님께 모든 것
여쭙고 여쭙고 또 여쭙는 하루가 되라...말이다 .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반면, 다윗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울'도
하나님의 이름을 되뇌이는 자다.
하지만 그는 '여쭙지'를 않는 자다.
자신의 주변에 쉽게 가용할 수 있는 병력들을 이용하여
쉬운 방법으로 다윗을 해치려 하고 있다. ㅠ.ㅠ
10.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다윗
또 여쭌다.
신하들의 논리, 전쟁에 승리한 기억 , 거기에 아직도 잔잔히 남아 있는 '아드레날린'의 기억이 있을 것임에도
그는 '하나님께 여쭙는다. '
그 여쭙는 방향이 '사울을 격파가 아니다. '
11.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사울이 내려올 것'인 가에 대하여 여쭙고 있다.
12.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그일라'들이 사울의 손에 그와 그의 사람들을 넘기겠는가를 여쭌다 .
무엇인가?
더 큰 세력은 전쟁으로 물리친 다윗들이
'사울'에 대하여는 '피할 것만 상정'하고
그에 따라 도피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쭙고 또 여쭙는 것이다.
그렇다.
여쭙는 것에도 방향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울은 대적하지 않는다...다.
물론 사울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의 '비논리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논리와 하나님의 이름 만으로 이겨내려 하기보다
모든 생각과 판단을 앞서
여쭙고 여쭙는 다윗의 태도는
오늘 내게 배우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신 듯하다
항상 여쭙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라심이시다.
여쭙는 것도
모든 것을 여쭙는 것이며
자신의 어떠한 생각도 다 여쭙는 것이 맞다.
그리고.........또한
그 여쭙는 방향이 맞는지도 다시한번 여쭐 필요가 있다.
나...
참..오랫동안 불신의 시간을 거쳐
많이 고착화되어 인격비슷이 형성된 잘못된 생각,
내가 논리적으로 아님을 알기도 전 벌써 내 감정의 형태를 유지케하는
그런 왜곡들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기에 자칫 '다윗의 사울같은 존재'를 대적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내게는 없지 않아 있다.
그러에 여쭙고 여쭙고 또 여쭙고 또 여쭈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
하나님.
여쭙는 기도의 삶이 제게는 습관이 덜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기도의 습관이 들때까지 주님께서
기도하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도 기뻐하셨을 지난 시간이지만
이제는 조금은 더 성장을 위하여서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서라도
더 여쭙는 ...
그리함으로 주님을 내 삶의 영역에 더 내밀히 모셔들이는
그런 여쭙는 기도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다윗님 처럼 뚜렷한 응답의 소리는 금새 듣지 못할지라도
여쭙고 여쭈으며 주님의 응답을 간구하다 보면
내 삶에서 더 뚜렷한 '동행의 하나님'
코람데오의 하나님이 되실 줄 믿습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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