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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이 광야 삶의 목표 & 결과[왕상21:11-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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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이 광야 삶의 목표 & 결과[왕상21:11-29]

주하인 2023. 10. 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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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을 행하였으므로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악'이란 

'스스로'(그렇다.. 모든 것 스스로의 선택이고 결과다.   우리 앞에 놓여진 어떤 상황에서든 매사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더해져 이루어지는 것 ..원망하고 좌절하기 보다 돌아보고 돌이켜야할 당위성이다.   )

자신을 팔아 (적극적 , 의도적 선택의 결과로 나오는 나쁜 결과는 모두 자신을 파는 ... )

'악'이다.

 악함... 말이다. 

 

주님께 드려야 할 온전한 선택과 그 결과를

자신, 자아의 편의를 위하여 ..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팔아 얻는'.. 

댓가성 편의이고

그것이 '악'이며

악은 반드시 '반대급부'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래서 주께서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매음'.. 

자신의 몸을 돈을 받고 파는 행위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악에 매음하니

악한 자가 아니던가?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그래도 '아합'이 

두번씩이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던

그리고 다시한번 더 '잠시지만' 용서를 받을

또다른 이유가 여기에 나온다.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다. 

그의 '패악한 결과' ..

나봇을 살해하고 

온갖 미련한 짓, 우상을 섬기는 것.. 

그의 욕심도 있었고 아내 이세벨의 꼬드김도 있었지만

그는 성품 자체가 유약하고 겁이 많은 자다. 

 

 그러기에 또 저렇게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비록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겸비' ..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우리네 인생의 태도'.. 

마땅히 외적으로 내적으로 '겸비'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인생의 풍파'를 허락하신 이유.. .

그렇게 되어진 인격과 인품을 가진 

자연스러운 영혼이 되게 하시어

우리의 이땅의 삶이 마감된 후 

'저 영생의 그 긴시간'을 

주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게 될 자격있는 자 되게 하시려시는.. 

그 궁극의 목표,

우리가 나아가야할 마땅한 목표 아니겠는가?

 

 그렇다. 

'겸비'.. 

humble himself

'겸손한 자신'이 되는 것.. .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마땅한 목표이자 결과이다 .

 

  아합은 

'자신'을 위하여 

'자신을 악에 팔아'

'겸손'과는 거리가 먼 '교만'과... 로 채워진 것이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무 늦은 '겸비'의 태도로

겨우 '이 땅에서 만큼은'ㅠ.ㅠ;; 

하나님의 용서를 허락받아

가장 불행한 죽음은 면하게 되었다. 

 

 

 한번 더 생각되어지게 하는 것.

 이땅의 처참한 죽음이 

모든 '심판'의 끝이고

저들의 죄와 그 징죄는 다 끝나신 것인가?

 이 땅이후.......는?

아니다. 

이 땅에 만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

이땅의 것들이 모든 것이라는 관점으로 붙드는 것..

이 땅의 권세잡은 자들의 '가장 기본'의 혼란이 아닌가?

이 땅의 권세를 잡도록

하나님께서 잠시... 권세를 허락받은.. 

타락한 천사.. 사단.. 마귀.. 뭐... 

모든 '악'의 '전략'의 기본 중 기본.. .

이땅..

이 유한한 땅의 모든 가지고 가지지 못함이 

잘 살고 못사는 기준이 되도록 

과학적 합리.. 사랑, 자유.... 온통 좋은 허울로 유혹을 하며

자신이 좋은 것이 '진실이고 진리'라며 주저 앉히는 것... 

그것 아닌가?

 

 아합.

그의 '악'함은 끝간데 모르고

자신의 유익과 욕심의 만족을 위하여

이 땅에서 허락되어지는 모든 것을 하려 했다 .

 그의 내면에서 그를 흔드는 그의 영혼의 허함,

진실과 진리를 아는 '선민'.. 

선택받은 백성으로 가슴을 때리는 '양심'의 소리를 통하여

'유약하고 약한 모습'으로

쉬이 '겸손'한 태도로 돌이키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하지만.. 그의 관심이 이 땅에 있기에

그에 맞는 정도의 

잠시 허락받은 '징죄'.. 판정의 늦춰주심이.. 

"그래 이땅에서 죽을 때까지 만이라도 

덜 참혹하게 함으로 

잠시 판결을 뒤로 늦춰주마'........라시는

그런 말씀이 아니던가?

 

 하여튼... 

악한 자든.. 

선한 자든... 

당연히도 하나님 앞에 '겸손'함.. 

겸비함이 

우리네 몯모든 자의 

살아가는 마땅한 '목표'가 되어야 겠고

진정한 '겸비'는 

주님 앞, 주님 나라에 가

주님 백보좌 심판대에 서게 될 때

빛을 발하게 되리라.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도 말씀을 주심이 그렇습니다. 

또 살아가는 이유와 목표를 잊고 

방황할 뻔 했습니다 .

하루 하루 살아가야하는 이유의 없음을 

사단이 강요하는듯

이 아침이 허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란, 

그 마져의 혼란 조차

그 누구도 마지막 거쳐야하는 연단의 과정이 아니겠씁니까?

 이 광야 삶의 마지막 단계의 시험...

 

그러시면서 주께서

'겸손'함.. 

겸비함을 위하여 

그 모든게 허락되었구나.. 

네 겸손함으로

네 .. 이땅에서의 조금 부족함도 뒤로 미루어진 거다. 

조금 더 인내함으로 

겸손할 ,온전한 날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라심 같습니다 .

내주여.

그렇습니다. 

겸손함은 주님 앞에 돌이키고 회개하는 '결과'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함이 '죄스럽게' 느껴져

돌이키는 그 어떤 것도

주님 앞에 '겸비'함의 증거이겠고

그 결과로 나오는 인격의 향기는 '겸비함의 증상'이며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점차 '단순'하고 '명쾌'해지며

맑고 고와지는 인격이 되는 것... 

주님 앞 겸비한 자의 스스로의 '지표'가 아닐까 알게 하십니다. 

주여.

말씀 붙들고 살게 해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시107:12)
So he subjected them to bitter labor; they stumbled, and there was no one to help.

 (Psalms 107:12,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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