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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늘 기쁨으로 져야할 십자가 [왕상22:29-4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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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늘 기쁨으로 져야할 십자가 [왕상22:29-40]

주하인 2023. 10. 30. 06:46

(펌) 아합은  예수님 좌측 십자가의 강도의 그것과 무에 다를까

오늘 말씀 중 아합의 죽음전 암담한

병거에 꼼짝 없이 갇혀서서

하루종일에 걸쳐 죽어가야 함이

마치 '예수님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아.. 더 정확히는

좌편의 회개치 못한 강도 십자가..ㅠ.ㅠ

그것은 맹렬히 달려드는

영화속 좀비떼를

몸으로 받아드는 그 두려움..

하루 종일 읻어지는 격렬한 어려움......

그리고 끝없는 파멸.......

 

어차피 십자가를 지고 주님 예수를 따름이

마땅히 이 땅 좁은 길을 가야하는

제자들의 숙명이라면

저 천국의 소망,

예수 십자가를 같이지는 다행함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훨 낫지 않을까... 

 

 세상이 마구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재해, 전쟁, 기아, AI... 

우리가 회피하려해야 할 수 없는

누구나의 끝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

주님으로 인하여 감해지는 

소망있는 끝이라면

오히려 감사하고 기도하여야 될 

그런 상황은 아닌가 싶다 

 

두렵지만 감사한

십자가의 길.....

광야 인생.....말이다. 

 


34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꼭, 정해진 대로 세상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정해진 계획과 우연의 협력.. 씨줄과 날줄이 얽혀 직조되듯

인생은 그러한게 아니던가?

 

 하나님의 시간.. 

우연처럼 보이는 저러한 '무심한 화살'의 카이로스에 

드디어 하나님의 시간에 

누구나의 삶은 그리.. 마감되어 가는 것일 게다.

 

 아무리 애를 써봐라.. 

인생들아.. 

주하인아.. 

 

 그냥.. 

이제라도 괜한 고민 내려 놓고

하나님의 부르심,

인생에 허락되어진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 앞에 무릎꿇어야 하는 게 아닐까?

 

35 이 날에(NIV; All day long,하루 종일 )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NIV; king was propped up in his chariot facing the Arameans.  왕이 그의 병거 안에 기둥처럼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이상히도 아합의 죽음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돌아가심이 연상되었다

 아.. 더 정확히는 

예수님 십자가 '좌'편.. 회개치 못하고 매달려 있던

그 죄수.......말이다. 

  화살이 박혀 

아주 극렬한 전쟁터 (보라... 하루종일 전쟁이 맹렬하였다 나오지 않은가?)에서 

이로가지도 저리 가지도 못한 상태로

'병거' 위에서서 

마치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듯이 (Prop이 기둥, 지주처럼 떠받치다..라는 뜻이다.^^*

화살에 꽂힌채 꼼짝없이 서서..

(펌) 저둑 위에서 꼼짝 못하고있는게 아합의 십자가, 병거 위 화살 꿰인 prop, 기둥..좌측십자가이고..ㅠ.ㅠ

 맹렬히 밀려오는 좀비떼

꼼짝없이 바라보고 서있어야 하는 

그런 시선은 아니었을까?

 

 그날.. 하루 종일  

병거위에서 꼬치 꿰듯 화살에 꿰여  꼼짝못하고

밀려드는 아람 군대를 바라보고 있어야 만 하는

아합의 심령에 각인된 두려움....말이다..ㅠ.ㅠ;;;

 

밀려오는 아람사람들을 마주하며 (facing.. 이라 되어 있다 ... 마주하여 좀비몰려오는 것 쳐다보듯..

자기를 향하여 자신을 죽이려 몰려드는 

아람사람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공포가 

몸이 꿰뚫려 피가 쏟아지는 상태에서도

꼼짝 달싹 하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며 죽어가는 그 고통.. 그 두려움이 

소스라치게 느껴져 온다. 

 

 

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렇다 .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어찌 그리도 유사히 느껴지는 가?

 그러나, 그의 죽음은

180도 다른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연상이 된다. 

 예수님과 같이 달렸지만 너무도 다른 이유.

 

 같은 죽음의 고통과 공포.. 를 체험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

 

 예수님의 그것은

비록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닥치는 

그래서 당황되는 죽음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의지적  이타적 매달리심'과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불현듯하게 다가오는 십자가와

정신차리지 못하고 달려드는 늑대나 사자 같은 아람인들을 

눈 앞에서 마주하며 느껴야할 '공포'.. 

움직이지 못하는 결박으로 인한 두려움과 답답함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혹감

피가 빠져나가는 혼란.. 

상처의 아픔...'.............

같은 십자가 이지만

전혀 다른 힘듦이 느껴져 온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세상 인류의 구원의 기회가 되었지만

이 '아합'은 이름조차 잊혀져 버렸다 .

그냥.. 엊그제 묵상이후로 계속 '이스라엘 왕'으로 불리워져 있다 .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보라.

그는 '이스라엘 왕'으로 살아 모든 것 다 누리고 만들고 갔지만

그의 건축한 것은 기억되고 기록 되었으되

그는 '이름'조차 잊혀지고 (세상에서 뿐 아니라.. 당연히도 하나님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졌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선택받은 백성으로 태어나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자로 지워져.. 영멸, 지옥의 가장 바닥에서 기고 있을 존재....ㅠ.ㅠ) 말아 버리는 

그러한 자 된 거다. 

 

 오늘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2:21)

 

 보라.

누구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거쳐야 함이 

인생의 숙명이다. 

그 십자가를 달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주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이고... 

 

 그러하다면 '지금의 고난'이 

당연히도 달게 받아야할 것이 맞고

다행이도 이 인생누구나 벗어 날 수 없는 고난이 숙명이라면 ( 고해의 바다... 라 누가 그랬다. 유명한...대표 불신자.. . 그 누가 인생에서 100프로 행복만할 수 있던가? .. 그 끝은?... 살아온자.. 살아가는 자.. 물어보라. .. 인생이 힘겹지 않은 자 있던가?.. )

그래서 '십자가' 짐같은 인생의 고난이 필연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은

자신이 '죽을 지 전혀 인정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맞는 미련한 죽음' 아니겠는가?

그 미련한 죽음의 대표자가 

오늘 '십자가 죽음' 맞이하듯

마귀떼 몰려와 물어 뜻을 듯 달려드는 SF영화의 한장면 같은

지옥의 한장면을 연상 시키는 

'아람 적군이 몰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병거..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그 병거의 틀에 

기둥처럼 화살박혀 피흘리며

옴짝 달싹하지 못하고 Prop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합의 시선에서

그 공포와 두려움.. 아픔과 당혹감... 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한편.. 예수님의 시선은 어떠하던가?

같은 '마귀 떼' 같은 군중들이 소리치고 있지만

주님은 '하늘'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던가?

초연하신... 

 

자신이 가실 길을 담담히 걸어

마침내 순종의 끝에 서계신 주님.

잠시 후면 '천국'에 가 계실 '소망'과 희망을 잃지 않은... 

고통이지만 '유한한 끝을 알고 받아 들이시는

회복의 고통.........

 

 감사하다. 

 

주님.

고통이 절 가만두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는데 

마음이 흔들리고 

몸이.......그러하였습니다. 

괜히요.. 

오래전.. 그랬던 두려움이 저를 사로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런데.....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깨끗하여 졌습니다. 

정말요.

 

 제가 

어쩌면 '병거위 의도치 않은 십자가 형 당하는 아합'의 시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깨달았습니다. 

필연이라면

난.. 예수님 쪽이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난이

내 오래된 이러한 고통이구나.. 요.

 

다행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게 하시기 위한 

두려움이었던 모양입니다. 

 

참 편안합니다. 

소망있는 고난.......

반드시 거쳐야 할 십자가를 바라보는 

제 시선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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