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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갑가지 다가온 큰 파도 앞에서(왕하18:17-25)

주하인 2006. 11. 11. 10:52

(열왕기하18:17-18:25) 

 

17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 폭풍우는 예기치 못하게 올 수 있다.   누구에게나....언제나...)

 

  어제도 나왔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열정적 믿음 가운데 다가오는 시련의 순간이다.

처절한 선교의 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선교사님의 이야기.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다가오는 이해할 수 없는 환란.

그 와중에서  과연 신실했던 히스기야가 악한 왕보다 더 나쁜 행실,

여호와의 전의 은금 말고도

기둥과 문의 금까지 닥닥 긁어서 조공으로 보내는

한계 상황의 모습을 볼 때...

이 같은 반응을 안보인다고 장담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난 어제 가슴이 아팠다.

마음이 쓰렸다.

날 보고 있는 것 같은 동병상련의 느낌이었다.

 

이제

그 환란이 '대군'을 이루어 현실화 되어 눈 앞에 와 있다.

생각 만 가지고 도 불안해서

우울해 지는 것이 현대인의 취약한 심성들이다.

그 앞에 대군의 현실이 다가왔을 때.,,

더구나 주님과 동행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넓어지고

뿌듯한 열정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 다가오는 이 대적을

좁은 새 가슴의 내가 어찌 녹여낼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그동안의 훈련 결과가 나와서

주님의 뜻으로 모두 치부하고 십자가 앞에 내려 놓을 수 있는 담대함은 있단 말인가?

 

( 폭풍은 두렵다. )

 

 

19 랍사게가 ~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그 원수 마귀가 더구나 이렇게 외친다면..

 

'네가 뭘 믿고 그리 까부느냐? '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 네 생각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나 보구나?

   네가 의지할 만한 누가 있나보지?'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애굽왕?

 그는 잘못하면 네 손을 베는 갈대 같은 대상이다.

 조심해라. !!

 그런다고 우리 편 중 제일 힘없는 자라도 이길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더구나 그렇다.

내가 여기 온 것이 내 뜻이겠느냐?

너희 들이 그리도 잘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잘생각해 보아라.

더더구나

전에 우리에게 이 땅을 올라가서 치라고 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랍사게의 이 말을 들으며

가슴이 섬뜩하다.

온몸의 힘이 다 빠지려 한다.

정말 그럴 듯하다.

가끔씩 믿음 생활을 하다가도 힘이 빠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마음 속에 스치는 소리들이 이런 류의 소리들이었다.

그럴 때 '그래' 하고 수긍을 하여 버리면 온통 근육에 힘이 빠지고 아무 것도 할 의욕이 없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건강치 못한 우리 의미있는 주위 사람들이 

'네가 ..

 네까짓게...

 내가 다해...'

주위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마음엔 패배의식과 분노가 밀려오기도 했었다.

과거에...

 

 마치 그런 것 같이...

아직 성화되지 못한 푸석푸석한 믿음의 틀에

이제 열정을 가지고 빛을 보는 듯한 기쁨에

현실의 위협을 가지고

갑자기 쓰나미 같은 큰 파도가 밀려올때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대군이 조롱하면

그 감정적 혼란을 어찌 감당할 까?

히스기야가 참으로 불쌍하다.

 

예전에는 위와 같은 암울한 생각만 했다 .

 

그러나.. 

 

이제는 이렇다.

,그래...

아직은 난 안된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날 아시고 계시는 구나.

그래서 주님 앞에서 훈련하길 원하시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렵고 힘들지만

어쩌면 견뎌나가야 할 일.

그럼에도 대책없는 두려움은 주님의 원리가 아닌바...

더 큰 평강의 연습을 시키시는 것.

그것은 다시 생각하면

히스기야 같은 자질의 나로서 인정을 하는 것.

그리고 그 보다 더 큰 자로서 인도하시려는 의미일 수도 있는것...등의

희망적 생각이 아주 적지만

스며 나오기도 한다.

 

 내 속을 들여다 보게 하며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희망으로 인하여 감사하기도 하다.

 

기도

 

주여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열심으로 뿌듯해 하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그 안에 내 자아가 스물거리고 살아나오는 듯 했습니다.

주여..

히스기야에게 주신 그 열심 가운데의 환란이

실은

버려둠도 아니시요

단순한 고통이 아님을 오늘 아침 묵상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은연 중 피어나는 희망과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성장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그리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위해 기꺼이 고난 당하는 사람이 고난 속에서 가장 평안한 자다.

 - 토마스 아 켐피스 

 


 

 
 Mold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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