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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産(왕하19:1-3)

주하인 2006. 11. 13. 12:47

 

 

(열왕기하19:1-19:13)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히스기야의 훌륭한 점.

그의 지혜.

내가 본받아야할 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냥 주님 앞에 매달리는 것 밖에 없을 그 때.

그는 그대로 했다.

 

상황이 가슴이 아프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라는 말...

그것 밖에 선택할 것이 없다.

그것 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그럼에도 그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을 극복할 엄청난 신앙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굵은 베를 입고 옷을 찢었을까?

 할수 밖에 없지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벌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드디어 도달한 상태.

 

 그 상태에서 그는 FM으로 선택을 하였고

하나 더 기특하며 안스러운 것은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깊은 허탈함에서

모기소리 만큼 작게 쥐어짜는 목소리로 신하들에게 '이사야'를 찾으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게 오늘 영적인 원리에 대하여 또한번 말하여 주시는 것 같아 반갑다.

 

주님께 철저히 매달려라.

혼자서는 어려울 때 영적인 의지처를 찾아라.

 

 

 

오늘은 곤란 distress 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 출산의 고통은 엄청납니다.    난산은 더더욱....  부인들에게 잘해줍시다.. 아자 !)

 

 

 이제 히스기야의 마음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

곤란

영어로 distress

이 영어 단어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아주 익숙하다.

태아가 뱃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 똥을 싸면서 심장이 떨어지는 상태까지 이르는 증상을 fetal distress라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생똥을 쌀까?

그 정도로 힘든 상태를 곤란이라는 한국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름대로 요번 일이 위기이지만 영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임산하였으나..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귀한 일이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다.

감히 앗수르왕이 침범한 것을 어찌 그가 그리 표현 했겠는가?

이런 '위기'가 곧 주님이 원하시는 어떠한 계기가 됨을 그는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격한 풍랑이기에 그는 견뎌낼 힘이 없는 것이다.

그게 '해산할 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기가 distress상황에 있으면 제왕절개를 시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상분만 고집하는 산모..

특별히 의사들을 못믿어서 무조건 정상분만하기를 고집하는 산모들은

의료사고의 지름길이 된다.

 

믿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도 !

 

어쨋든 히스기야 산모는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을 인하여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히스기야의 표현이 곳곳에서 마음을 찡하게 한다.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한다.

내 하나님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혼미한 산모가 헛소리 하는 것처럼

그의 의식은 거의 죽기 직전의 고통까지 내려갔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냥 '당신의 '라는 표현을 두번씩이나 한다.

누구나 다 내 하나님이다.

누구에게나 다 내 하나님이시길 그 분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하나님께는 원치 않으실 부름이실 수 있지만

그의 한계상황이 저리도 절박함을 보니 불쌍하기 그지 없다.

성경은 단어 한마디로 아픔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린다.

 

 거기에 '혹시'라는 표현은 더욱 더 가슴이 미어지게 한다.

참으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치 않은 앗수르라는 대적을 맞이하며

현실의 겁란을 당하며

그 성장도에 맞추어 더욱 교묘한 랍사게의 말로 치명타를 입은 그는

범인들의 원망하며 실족하는 어리석은 선택 대신에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허탈해하며

그럼에도 성전 안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이 아침 가슴이 미어진다.

 

왜 ?

나도 저런 가슴을 많이 앓아보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확실하신 분이시다.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시다.

그도 그렇게 알고 행해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로 앞에서 기술하였던 그런 상황이 그를 자신없는 상태로 만든 것이다.

 

혹시... 

내가 잘못하지 않았던가?

 

혹시

주님이 보시기에 내가 큰 ..

 

혹시...

혹시..

 

그러나.. .

저런 부정적 사고는

마귀에 의한 악성 의혹은 아니다.

그 것은

주님에 의하여 허락된

성장을 위한 고통성 의혹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선택한 것은 너무나도 잘했다.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기도해주길 바라는 그의 바램.

거기에는

그럼에도 주님 만이 정답이시고

그럼에도 기도만이 살길이고

그럼에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그러하다.

 

 수많은 험로를 걸어오며

바닥을 치는 경험을 했음에도

그 과정에서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음에도

주님은 변개치 않으시고

그런 의혹에도 유일한 대안이었음을 아는 나로서는

히스기야의

그 커다란 강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잘한 선택으로 이겨냄을 보고

다시금 감동을 금할 길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전에는 주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에 의하여

되돌아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그 과정이

이제는

혹시 있을 더 큰 환란 중에서도

의심치 않고 당당히

주님만을 의지하고

오직 믿음의 동지들과의 중보로 서

담대히 이겨나가길 바라시는 주님의 뜻으로

오늘의 묵상이 읽혀져서

감동스럽다

 

당연히도 그러하면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뉘앙스도..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고통올 때마다

다가올 의혹을 알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처 방안도 알려 주셔서 감사하고요

더구나

변개치 않으실 주님의 약속을 다시한번 확인 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독교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를 둔다.

- 윌리엄 바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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