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감사하며 찬송하며 (시100:1-5) 본문
제 100 장 ( Chapter 100, Psalm )
그 들은
그들 만의 아름다움을
주님께
찬송을 불러 올리듯
감사함으로 꽃 피워냈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기쁠 때만
여호와를 섬기고
노래가 나올 때만 주님 앞에 가야 하던가?
슬플 때 힘들 때 어느때나 주님 앞에 나가야 하지 않던가?
잘못했을 때...는?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
'감사한 마음'이 안생기면?
그 문에 들어간다.
'주님 만나러 들어가는 문' .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간다.
찬양이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 궁정에 들어갈 수 없던가?
그에게 감사하고 그 분의 이름을 송축한다는 이야기가 또 되풀이 된다.
웬일인가?
이 어떤 논리적 모순인가?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이겨내기 위해서
억지로 감사한체 하고 억지로 흥얼 대고 노래하라던가?
감정의 강요를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
많은 갈등 속에 있는 자들은 '감사'와 '찬양'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하라'고 하면 참..하기 힘들기도 하다.
무엇인가?
처음에 말하는 기뻐하는 것,
감사하며 그 문에 들어가는 것.
찬송하며 그 궁정에 들어가는 것.
이것은 어느 정도 의지적인 행위를 말하시는 것 같다.
정말 그렇다.
'기뻐하리라' 선택을 하고
'감사하는 삶'을 결심하고
'찬양'을 의지적으로 드리면
마음이 놀랍도록 펼쳐지는 경험을 자주하곤 했다.
이전에 전혀 그럴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시...
감정을 강요 받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반발을 느끼던 시기..
그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하던 영역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자주 체험이 됨에 따라
내 영혼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점차로 확신이 됨에 따라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모두 사실의 체험이 되고 경험이 될 것임을
확신함에 따라 점차로 의지를 들이길 시작했다.
'감사'하라... 라 시면 감사의 말을 기도로 읊어 올렸다.
'찬양하라'..라 시는 하면 찬양을 올렸다.
때로는 '보혈 찬송'으로 회개의 찬송을 올리기도 했고
마음이 메말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잘 느껴지지 않는 듯하면 성령 찬송을
최근의 시편의 묵상구절처럼 '하나님께 영광'올리는 구절이 나오면 '영광을 올리는 찬송'을 드리면
그 찬송을 다 받으시는 듯
기뻐하시는 쓰다듬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 점차로 '예수님 믿는 시간'들이 '통쾌한 시간'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그렇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기도로 주님 만나러 가면 감사함이 나온다.
찬송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이 찬송이 나오게 한다.
연 이틀을 수영을 못하니 몸이 찌부둥한 것 같다.
운동이란 것은 묘한 마력이 있음을 늦은 나이에 깨달아 간다.
할 때는 나이든 근육이 피곤하다고 반항하는 듯 자꾸만 쉬고 싶지만
참고 하다보면 어느새 개운해지고 힘이 솟는 듯 자신감도 생기는 듯해 자꾸만 하게 되는 것,
수영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관절운동을 시키고 땅의 에너지보다 네배 더 들어 운동량도 충분하고
심폐기능 및 물이 주는 그 심리적 편안감 등의 장점이 많다.
처음에는 올초에 디스크가 너무 자주 재발하고 무기력하여
가까운 장애인 복지관에 걸어다니는 과정 중에 싼 맛에 더해져
자유수영 만 끊어 한다던 것이 점차로 늘어나 지금은 주일까지 문을 열면
거의 매일 한시간 내외 얼른 얼른 하고 오는 것이 버릇이 되었던 바
토요일, 주일.. 요리에 집중하고 주일 쉬는 바람에 이틀을 빼먹으니
월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영을 해야 했다.
기분이 좋다.
걸어다니는 내 흐름의 반경에서 흘러가는 듯 수영을 한다.
수영 중에도 가능하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려 애쓴다.
갑자기 '요즈음 내 마음의 흔들림'의 이유가 오랫동안 기도원 가지 않은 탓임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갔다.
참 좋다.
여덟시 정도 되니 한참 예배가 진행 중이다.
자유스럽게 내 즐기는 '휴계실' 의 의자로 갔다.
참 춥다.
갑자기 심한 바람이 불어대고 우박이 쏟아지며 추워지니 앉아서 예배드리기가 그렇다.
얼른 얼른 마무리 하고 집으로 가고 싶은 유혹이 날 붙든다.
어제의 묵상이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물이 다 떤다'는 내용이시다.
어려운 구절.
개인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워 자꾸만 뒤로 미루었던 구절.
그래서 그냥 의자에 앉질 않고 서서 기도를 드렸다.
'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다.
말씀에 집중하고 ...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온다.
' 창조의 아버지 그 섭리 보이사.... 주 영광 여기 임하사 열방 향해 그 빛 비추소서...
열방의 통치자.. ♬'
그렇지 않은가?
열방의 통치자.
젊은 노래.
'창조의 아버지'
이런 찬양을 가지고 은혜 받을 것을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 나다.
깊은 분위기를 가지고 무겁고 조금은 우울한.....아니면 은혜 갈구.......그런 찬양으로 기도 중 간간히
올려 드리고는 하던 것이 젊고 비교적 분위기 맞지 않는 찬양이
내 뇌리에서 나도 모르게 떠올라 계속 되풀이 된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찬양은 말씀을 이해하게 만드신다.
통치자이신 그 분이 '나'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신다.
통치자이신 그 분의 마음대로 내 영혼을 건드리는 사단을 떨게 하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움직이신다.
무엇이 걱정이던가?
무엇이 문제던가?
묵상, 큐티라는 것은 개인적인 말씀이시어야 한다.
어제나 너무 뻔한 구절의 말씀은 그래서 나에겐 오히려 더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그것 조차도 기다리면 이렇게 이해가 가게 하신다.
찬양.
그 찬양 마져 주님이 들어서 그냥 주님 궁정 안에서 받으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난, 그제야 오히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몸이 훈훈하다.
그것이 또 감사하다.
차가운 바깥에서 집중된 기도의 읊조림을 개인적으로 받으신 주님이
날 따뜻한 성전의 제일 앞, 십자가 바로 아래 무릎꿇게 하시어
또 기도를 받으신다.
감사함을 올려드렸다.
'이래서 , 이래서 , 이래서, 이래서.... 이래서 감사합니다. '
그 감사함은 감사함의 마음이 깊이 어우러져 나오진 않았지만
이처럼 이제는 역설적으로나마 이해가는 상황의 어려움이 감사할 것임을 읊조리고 나면
하나님이 감사함으로 내 영혼을 채워 주심을 조금씩 자주 체험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별 의심하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가 조금씩 편해짐을 느낀다.
주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고 있다 보면 그냥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은 좋은 글을 톻해서 얻어진 방법으로 한다.
그러면 더욱 은혜를 가까이서 주시는 듯하다.
나,
성전의 문을 열고 들어와 '감사함'으로 기도를 올리니
주님이 계속 같은 '창조의 하나님'으로 찬양을 올리게 하시더니
결국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방언'의 기도를 받으신다.
기쁘다.
은혜가 마음을 채우신다.
무거운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싶다.
통쾌함.
이 은혜의 표현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이 느꼈으면 싶다.
늦은 시간 집으로 향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다시한번 내 지속될 주님과의 동행하는 양식에 대하여 지적해주신다.
'주하인.
네 일생동안 감사하는 기도로 나를 만나는 마음 자세를 가져라.
찬송으로 영광을 올려라.
그러면 감사하는 삶을 허락하리라.
찬송이 나오는 삶을 주리라. '
감사하신 주님.
적용
1. 감사할 거리를 자꾸 찾아 감사 기도로 읊조린다.
화살 감사기도를 할 것이다.
2. 찬양 올린다.
틈날 때 찬양을 드릴 것이다.
3. 오는 모든 환우 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리라.
주님이 맺어주신 인연들이다.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냥 감사하리라.
4.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귀하시고 감사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을 따름이 우선임을 알게 됩니다.
내 감정이 우선이 아니고
그 감정은 하나님이 감사하라는 말씀 안에서 감사로 바뀜을 압니다.
환경이 우선이 아님도 압니다.
어려운 환경도 감사하는 삶이 되면 감사한 환경으로 바뀔 줄 압니다.
주님이 마음을 그리 바꾸실 줄 압니다.
찬양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주님이 그리하시라 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
어떤 경우에도 주님 앞에서 감사하고 주님 앞에서 찬송하는 자의 마음이 체험되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존재와 생명없는 것들(레15:19-33 ) (0) | 2010.11.11 |
---|---|
흘리는 것이 어찌 그것 뿐이랴(레15:1-18 ) (0) | 2010.11.10 |
그래도 주님 (시99:1-9) (0) | 2010.11.08 |
빛을 뿌리시고 기쁨을 뿌리시고 ( 시 97:1-12 ) (0) | 2010.11.06 |
새 노래로 주님께 (시 96:1-13 ) (0) | 2010.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