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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과 스탕달 신드롬(막12:28~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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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과 스탕달 신드롬(막12:28~34)

주하인 2007. 3. 24. 09:25

2007-03-24 마가복음 (Mark) 12:28~12:34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

     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오늘 묵상 구절은 두 사람의 놀이 마당패- 죄송합니다 . 주여...ㅎ- 나와 한마디 씩 주고 받는 품사가 범상치 않은 듯 느껴지는 그런 장면이 연상된다.

 

( 이런 마당극은 신이 나지요 )

 

 

 

 

 장면은 사람들이 쫙 둘러 싸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의 눈빛은 흥미로 가득 차 있다.

예수를 모해하려고 작심하고 모여든 무리들과 마치 불 나는 곳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재미 있듯이 악한 기대를 가지고 모여든 자들로 큰 소리는 내지는 않고 있지만 폭팔 직전의 흥분이 장내를 꽉 채우고 있다.

 어제 장면까지 두 번의 급박한 모해성 에너지가 터질 듯이 모였다 사라지면서 (서기관과 사두개인의...)

사람들은 아직도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무대 중앙의 예수님의 평온하고 현기로운 답은 그 분에 대한 악한 모해를 주도하는 派인 서기관 중 한 사람의 마음에 급격한 변화를 유도하게 된다.

그것은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와 대단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자들이라도 '진리' 앞에서는 겸허해지고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다.

물론 그 진리를 알아들을 지혜와 인격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되어 있는 경우에 한하지만...

 

 서기관 중 하나가 벼락을 맞은 듯 - 이 표현을 쓰는 것이 오늘 묵상 구절이 살아 움직이는 듯 , 시적으로 , 마당극 보듯이 표현 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그렇다.  살아 있다.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심 무대로 한걸음 나서며 물어본다.

 표현을 보라.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라 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 그가 그럴 수가 있나?

대답잘한 줄 안다는 것은 서기관의 입장으로 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이런 경우 '반전' 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던가?

아래와 같은 물음을 하면서 반전이 진행된다. 

 

그러면서 세상에 전혀 진행되는 극에 맞지 않은 물음을 한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

 

그러시자

마당극의 주연이신 예수께서 운율감 있게 말씀을 이어가신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힘있게 들린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멋지다.

그러시면서 내 속에 집어 넣으신다.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너무나도 당연하신 말씀.

그러나 그 너무도 당연한 걸 잊어 먹고 사는 이 어리석음.

공기와 물의 존재를 잊는 것처럼...

특별히 오늘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시지만 나에게 말씀하신다.

"잊지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다시 말한다 .

 잊지마라.

 주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기뻐하라.

 넌 그 분의 자녀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 분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다. "

 

그러시면서 마치 노래하듯이 말씀이 이어 지신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 이웃을 사랑하라.

 주하인아.

 이웃을 사랑하라.

 네 부족한 심성...알지?"

 

 이제 마당극은 종말을 향해 치 닫는다.

 

진리를 맞닦드린 서기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잊는다.

자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앞으로 자신의 행동에 따라 어떠한 결과가 자기 인생에 펼쳐질 줄도 잊어 버리고 있는 듯 무아지경에 빠져서 소리내어 외친다.

그 외침이 범상치 않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 

 열기에 쌓여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소리다.

그 외침을 들어보면 운율이 있다.

한마디 혀가 걸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좔좔 외친다.

열정에 쌓여서 황홀한 마음으로...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리 황홀할 무대가 아닌 데 황홀하다.

오히려 살기등등하고 바로 몇분 전까지만 해도 살기로 폭팔할 지경이고 지금도 그 위협은 존재하는데 이런 이해치 못할 일이 벌어진다.

 이해치 못하는 게 이해되는 게 참으로 기쁘다.

주님은 머리 속으로 이해되는 분이 아니다.

그 분은 마당극의 열기와 피타고라스의 깨달음의 기쁨과 반대되는 상황 속에서도 존재하시는 진리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아주 약간 느껴질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아.

멋진 표현.

행운아 ~ 익명의 서기관 !!

분명히

나보고 이런 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히 난 하늘 나라 백성임을 알지만

예수님이 그 입술로 열어서 말씀을 하신다면...

 

잠시 상상이 된다.

 

꿍~~ 

잠시지간의 시간이 멈춘듯한 장면이 지나고

주님의 입술이 열린다.

그 분의 입술은 크지 않았지만 단호하게 보이는 형태를 지녔다.

그 입술이 잠시 후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정말 잠시의 순간瞬間이지만

마치 영화의 슬로 비디어처럼 입술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뇌리를 울리는 듯한 소리.

"네가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았다."

아..

얼마나 감동일까?

그 순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익명의 서기관 그와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넘치되 사람은 그 서기관 이외에 아무도 아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행하고 살기 위해 주님을 영접해야만 한다.

살아 있지만 불신자의 삶은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 분이 네가 하나님 나라에..라는 말씀을 듣는 체험을 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서 마당극의 신명을 느끼는 그 열정을 느껴야 한다.

 

( 너무 진한 감동으로 쓰러지는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 합니다. )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지나친 감동은 침묵을 동반한다.

엄청난 예술적 감동은 눈물을 흐르게 한다.

어제 TV를 잠시 보는데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얘기를 했다.

 예술 품 앞에서 너무도 감동을 하여 쓰러지는 현상.

 

 그 엄청난 악의 기운 앞에서 조용한 예수님의 변론은 오히려 큰 감동을 가져오게 되었고

그 진리 앞에 가능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구원을 영접하고

그 어이없을 듯한 현상 - 유대인의 눈으로...- 앞에서도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을 정도로 숙연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감히 스탕달 신드롬이 비교할 바가 아닌 것이 아닌가?

 

 지 지난 번 전인치유에 1시간여의 인도를 갑자기 부탁받고 진행했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감격에 겨워 했고

다음 주 수요일 오후.

수술방에 들어가 오후에 나오니 한 여성이 찾아왔었다 한다.

보호자로서 계신 분이신데

그 날에 우연히 참여하신 불신자이시던 환자 분이 너무도 감동을 하여서 퇴원 전 한번 만나길 원한다고..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분은 전도가 되실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난 꾸민 적이 없었다.

스토리도

무얼 해야할 구상도...

그냥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환자 얘기 한번하고

큐티를 통해서 얻은 하나님 말씀 몇마디

그리고 그로 인한 성경구절 좋아하는 것 ...

그러면서 사이 사이 찬양을 했다.

참여한 분들 실제로 50% 이상이 울었다.

 

 하나님의 감동은 이렇다.

진실을 얘기하며

그 진실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말씀드리고

운율에 맞추어 기도를 드리고

진리이신 그 분이 주관적으로 선택하시고

그 선택을 맞아드리고 받아들이는 선택의 의지가 있는 자에게는

상황이랑 상관없는 기쁨을 맞게 된다 .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비록 감성의 차이로 기쁨을 기쁨으로 느낄 수도

이해할 수 없을 미묘한 감성의 흔들림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한 느낌으로 다가오던

알지모를 선한 생각들의 차들어 옴으로 나던지 그것은 개인차일 뿐이다.

주님은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많은 기독교인들 -정말로, 기독교인 모두는 아니다.- 그 기막힌 성령의 체험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이러한 감동으로 나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 얼~~ 쑤 !

  첫째는 이것이니 주하인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잊지 마라.

  기뻐하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주위를 사랑하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곧 주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게 되고 멀지 않아 그 나라에 거할 것이다. "

 

잠시 진리이신 하나님 그 분을 곁에 모시고 그 분이 연출 주연하시는 마당극 한편을 보고 간다.

진한 감동을 가지고...

 

 

 

적용

 

1.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이심을 묵상한다.

 

2. 이웃을 위해 사랑한다.

 

3. 구원해 주신 그 분을 감사한다.

   감사기도 드린다.

 

4. 성경 5장 읽겠다.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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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프랑스의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에게서 유래된 심리학 용어.

1871년 스탕달은 산타 크로체 교회에 진열된 미술 작품을 관람한 뒤 전시관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이를 치료하는데 1개월 이상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한 뒤 받은 흥분에서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세계에서 고전 미술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피렌체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집단적으로 이와 유사한 증상에 시달렸다는 보고서가 입수되자 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최초로 경험한 스탕달의 이름에서 따와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명했으며 스탕달 신드롬이 환자들에게 의기소침, 피해망상, 자아상실, 정서혼란 등의 증상을 겪게 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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