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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그 밤 그냥 하나님[창22:1-24]

주하인 2020. 2. 1. 11:27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말씀을 들을 때

그 ,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밤새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게 당연하다 싶다.

그는 그저 순종 만 하는 로봇 같은 사람인 듯.. 설교가 되지만

아침이 일찍이 일어났다함은

긴~밤 ,

내적 투쟁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고

그를 통해 승리하는 과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으셨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순종해서 그 즉시 나갔지

왜 한밤을 자게 하셨을까?

그 밤.

죽을 듯 고통과

정리된 아침.............


 난..

가슴아프게도

상황은 다르지만 (내게는 정도가 다르다..^^;, 수준이 저 수준.. 아이구... 도저히.. 다.)

그 고민의 밤을 겪어 보았기에

그 느낌,

그러함을 허락하신 상황을 이해할 만하다.


 한 겨울에

3일 간 시련의 밤

온 이불이 식은 땀으로 적실 정도의 고난,

그 이불을 드라이기로 말려야 만 버틸 수 있었기에 그런 후

일어난 아침......

그 아침의 찬란한 아침과 더불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통쾌함으로

마음이 가볍게 일어난 그 아침.. 말이다 .

이 블로그에 적어 놓긴 했다 .

돌아보기 싫어서 옮기진 못하지만.. 말이다.


그.

아브라함은

그리고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아들을 번제할 ㅠ.ㅠ;;  나무를 '침착히'도 준비하고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정확히도 절제된 언어로 종들을 달래고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혹여나 있을 아들의 번민 마져 매만진 후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드디어는

망설임없이

아들을 제물로 삼는

끔직한 (인간의 눈,  .. ㅠ.ㅠ;;)행위를 거침없이 해냈다 .


 그

아브라함의 내면.

그 내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과연.. 로봇처럼 감정이 죽었을까?

정말 그러한 순종을 원하실까?

피노키오나 조정되는 로봇 같은 우리?

세상을 창조하기 보다 오락기 만드는게 낫지 않으셨을까?

 아님은.. 순식간의 고찰 만으로 도 나올 것이다 .


그렇다면

마음이 미어터짐을 부여잡고 저랬을까?

손발이 덜덜 떨리고

어디 한번 머뭇거리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어야지 않았을까?
마치 .. 영화의 갈등이 폭팔하는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적 장치의 내용..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 . 결심한 아침..이후

그는 하등 머뭇거림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일까?

무엇이

그가

우리랑은 전혀 다른 감정 차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는 사람처럼 살게 했을까?


 이제는

조금은

실제적으로

이해가 간다 .

 그니에게는

확실한 '하나님은 옳다'라는 개념이 너무도 깊이

그의 뇌리와 영혼에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


아...

오직 바라는 것이 '하나님 '뿐이고

오직 기뻐하는 이유가 '하나님'이며

오직 하나님이 모든 것인

삶의 이유가 오직 하나님 뿐인

그런자..........


 아플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고난이 날 사로잡을 때

그 깊은 곳에서

한겨울 의 그 젖은 이불 속에서

불현듯 나를 깨닫게 하고

모든 고뇌를 멀리하게 하고

더 이상의 두려움, 예상되는 어려움이 없어진 것은

'하나님이면 된다' 라는 깨달음 일 뿐이었다.


그 분이 '이삭'을 죽이지 않으실 거야..

도저히 말도 안되는..

믿으니 선으로 될거야................등의

그 어떤 논리적 , 종교적 고찰과 깊은 몸부림 속에서 이루어낸

또 다른 자기 확신이 아니다.

그냥...

그저

믿어짐이다.

그러함은 이삭을 죽이기 위해 (제물로 해체하기 위해.. ㅠ.ㅠ.;;) 칼 을 들었을 때 조차

전혀 망설임이 없었음에서 드러난다.

그냥.. .

하나님이 옳으시다. ..

머리속의 개념을 넘어서는

깊은 확신.

더 이상의 망설임이 필요없을 확신.. 말이다.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그게

여호와 이레.. 아니던가?


 여호와께서

이 이후의 모든 삶을

다 이끄시리라... 는 개념.

하나님이 다 하실 것.

다 알아서 좋게 하실것.......

그러니. .

이 땅의 현상으로 '하나님'을 짐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노력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냥 믿고 나가게 되는 것.

거기에 단 한톨의 미혹조차 없어지면

그게 .. 성화이고

아브라함의 저러함이 맞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이..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 했다.. 라는 표현이 상서롭다 .


하나님의 역사가

예기치 못한 곳

예기치 못한 때에 강하게 나와

그 하나님의 그러하심이

내 인생에서

한 징표,
또 한번의 믿음의 성장에 있어서의 변곡점의 사건이 되는 것........

그 ...황홀하고 감사한.......

더 이상 이전의 고민은 고민거리가 되지 못하고

더 이상 과거의 관심거리가 내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되어

어디가도 거하는 곳이

내 쉴곳임이 되지만

이 큰 확신,

여호와 이레의 확신의 계기가 되는

그 지점이

브엘세바라는 상징으로

아브라함에게 다가와

거기 머물게 되는 것.

그 느낌이다.


감사하다.


주님.

깨달아지는 바가 있습니다 .

제 오늘의 현상과 또 맞닫습니다.

주님.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제게 합당한

제 수준의 그러함.. 말입니다.

홀로 영광 받으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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