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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삶 은혜의 심령[몬1:13-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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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삶 은혜의 심령[몬1:13-25]

주하인 2016. 11. 7. 14:40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 복음을 위하여서"는

내 인생의 목표가

'복음을 위하여서'가 되는 게 맞다.

내 사는 이유,

내 삶의 살아갈 목표...

그게 '복음을 위하여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총론은 알았으니 '각론' 말이다.

왜 .. 를  알았으니 '어떻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같이 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부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상에서 어떻게.. ' ???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갇힌 자"가 되는 게 맞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

이 인생이란 ... 헛된 삶.

아무런 의미없는 육체의 족쇄, 관계의 굴레, 윈죄의 결과애 허덕이다가

육신의 시계가 다 돌아가고 나면 벗어 놓고 가야 만하는

돌아보아도,어렸을 때는 공부하다가

젊어서는 괜한 인생의 방랑과 방탕에 잠시.. 십여년 보내다가

그다음엔 자식, 자녀, 부모라는 , 자식이라는 굴레를 짊어지다가

이제 여유가 생길즈음은 세대의 갈등들, 현실의 어려움으로

허리를 필 겨를도 없다.

그러다가 '예수님 구원의 손길'로 무언가 깨달아

이 감사함을 무엇인가 갚으려 허덕이다가는

더 갈급한 듯한 장해물에 시달리다가 또 그렇듯 그렇듯 시간은 흘러간다.

이게... '갇힌 자',

갇힐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에 갇힌자다.

우리 믿는 자는 '예수 안예서 갇힌 자'다.

그 갇힘이 .. 우리의 운명임을 알면 받아들이면 된다.

갇힘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내는 게

우리의 나아갈 바,

인생의 살아갈 이유,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다.


어려운가?

나.

'깨닫고는 여기까지 왔다.

참으로 많은 놓임을 받았고

참으로 많은 간증거리로 , 축복을 얻어냈다.

또한 참으로 많은 깨달음으로 '의미'를 아게 된자가 되고

그것은 내 자유를 의미한다고 고백하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난 갇힌 자'다.

아직도 풀어낼 수 없는 인생의 숙제들이 있고

그것을 풀어 던지고 훌훌 날아가고 싶으나

난.. 그러다가는 소설 속, 혹은 다큐멘터리 속의 주인공,

그렇게 하고는 싶지는 그렇게 하기는 불편한 존재..

비 통상적인 인간, 수도자... 가 될 지 모른다 .


난.. 아무리 날 돌아보아도

그런 자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자..

그러기 위해서는 '갇힌 자' 에서 벗어날 기회, ... 가 있을 수 잇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눈치 보면 '갇힌 자'를 다시 선택할 수 박에 없는 자다.


그렇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은 다시 '하나'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갇힌 자'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 갇힘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고

그 갇힌 약함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그것을 알고 깨닫는 순간..

난.. 일상에서 '선교하는 '자가 될 것 이다.



 어제그제.. 응급수술이 밀려서 바쁜 과정에

느즈막히 수술을 하면서

도우미 간호사들과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기회를 잡아서 '곧 결혼할 간호사 ' 도우미에게 '예수님' 믿어서 좋은 점,

내 변화한 점을 이야기 했다.

그러니 ..순순히 대화를 받아 들인다.

옆에 Assistor로 도우미하는 남자 도우미 샘이

'샘.. 예수님 믿으면... 좋아요.?' 한다.

그래서 .. 속사포 쏟듯이 내 간증거리를 이야기 했다.


어쩌면 난.. 예수님 믿으면서

내 복잡하고 머리 터질 듯한 이 갇힘의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말씀대로 내 어려움을 '예수 십자가 ' 앞에서의 의미로 바꾸는 노력을 해왔고

점차로 평강과 평안을 맛보는 시간이 늘고

내 감사의 표현들은 '이렇게' 삶속에서 펼쳐놓기 시작했다.

'수술 전에 불신의 간호사들이 보든 말든, 소리내어 기도'하기..

내 기쁨을 슬쩍 슬쩍 그들에게 보이기..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찬양의 자리에 서기..

말씀을 통한 감동을 '이곳'에서 적어내어 보기..

내 답답함을 어루 만지시는 주님의 살아계심을 적어내기..

사진으로 투영켜 글로 만져보기...

깨달아지는 인사이트를 현실의 내 삶의 방편에 적용해보기 (논문... 기술개발.. )  

... 십수년이 흐르면서 조금은 다른 '방편의 삶' 속에 난 서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괜히 아침부터 답답하다.

짜증이 나려한다.

여성을 다루는 과라서 '히스테릭'한 분들이 갑질을 많이 한다.

타 과에 비해서 ..

전화로 그리하시는 분이 있으시다.

'갇힌 '마음에 불을 지르는 듯.. ㅠ.ㅠ;;

예수님이 그러신다.

'주하인아.. 넌 복음을 위하여 갇힌 자'다.

위로 보다는....


그래서 다시 글로 옮겨가며 마음을 다 잡아 본다.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은혜가 심령에 내려오는 듯하다 .

세상의 어떤 위로와 위안과 터치가

날 근원부터 만질 수 있을까?


진정한 회복,

온전한 힐링.

개선과 생기와 소망이다.

영생의 소망이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비록

내 지금

갇힌 자의 범주에 있지만

내 심령에 내려 앉으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영생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갇힌 자...

주하인이

그 깨달았음을 글로 , 이리 무언의 기도로 영광 올립니다.


주여.

나.. 갇힌 자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르 위하여 그냥 갇힘을 기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사로잡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제 심령에 내려 앉고 있음을 알고 깨닫습니다.


주여.

이 갇힌 삶.

이 같힌 인생..'

주님의 뜻 가운데 허락되어져

성화의 과정을 주님께 영광으로 올려 드리기위하여 허락외어짐도 믿습니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위하여

이 갇힌 삶을 살아나가 겠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시오니

힘껏 그리할 수 있습니다.

위로가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제 심령에 크게 크게 내려 앉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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