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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육 ( 출 13:1-16 ) 본문

구약 QT

가정교육 ( 출 13:1-16 )

주하인 2008. 4. 17. 13:56

제 13 장 ( Chapter 13, Exodus )

 

 아침에 출근하는 시간

마주보이는 동산에

해가 떠오르며

십자가가 묘하게 아름답게 보인다.

십자가는 매력없이 보이지만

동산에 비치는

저 강렬한 빛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주님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우리가 지고 나가야 할

그것입니다.

 이제야 십자가의 저 모습이

예술적인 배치로

제 눈에

들어옵니다.

 

 

 

2.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큰 애를 대할 때마다

마음에 약간의 부담이 없지 않다.

 주님 안에서 많이 변했지만

아이를 혼내고 키운터라 아이와 서먹거린다.

 어찌 아들이 그리도 희망차게 보이지만은 않는가?

속이 부글 거릴 때도 없지 않아 있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아이는 부족한 면이 별로 없는 아이다.

차분하고

믿음이 신실하고

세상 아이들과 다르게 조신하다.

그럼에도

아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이니..

 

 결국은 알고있다.

모든게 내 마음의 부족함 탓임을..

공부를 잘 못하면 어떤가?

아이가 나에 대하여 서먹함은

오래된 역기능 아버지였던 내 탓인 것을.. .

주님 안에서 그냥 맡기고

주님이 허락하신 내 자식임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될 것을..

괜히 장래에 대한 걱정,

일취월장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남의 자식들에 대한 비교...

등이 문제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내 속은 꼬여 있다.

내가 문제다.

 

 군대에 들어간 아이가  자주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다.

어제 그제 화요일 들어갔다.

그때 이후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기도제목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내 속은 항상 그렇듯

무언가 막힌 듯 멍하니 두고 보고만 있다.

기회를 잡아

주님께 직고하리라...하고...

 그 마음을 아시는가?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하신다. 

그래요.

주님.

난 안되지요.

주님이 원하시면 그리하리다.

잊지만 않게 하소서.

자꾸만 밀고 올라오는 어리석은 상념이

날 사로 잡으려 할  때 ,

주여

제발 절 붙들어서

그 아이는

주님이 허락하신

주님의 것임을 명심케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돌리려는 의지를 발휘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주님이 성령으로 강제로라도

제 영혼 속의 어두움을 녹이소서.

제발...

 

 

6.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 칠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8.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무교병.

누룩을 섞지 않은 빵.

맛은 없지만

누룩을 포함

이전의 오래된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곡물로 깨끗이 만들어 먹던 빵.

 

 출애굽의 그날 저녁,

만나와 더불어

이 무교병이 없으면

그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이 죽게 될 수 밖에 없던 식량.

 맛은 없지만

애굽 430년의 종살이 흔적을 온전히 배제한다는 뜻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상징적으로 보이시는 떡.

 

 주님의 말씀은 준행하려면

힘이 들고

고리타분한 듯하고

자유가 없는 듯하고

밋밋하고

여러가지 곤란한 점이 없지 않으나

그 말씀이 없으면

이 모진 세상에서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는

일년의 일주일

무교절 날 만 무교병을 먹게 하신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 분은 처절한 절제만을 원하지는 않으신다.

그럴 수없는 허약한 존재가 인간임도

너무도 잘 아신다.

 그래서

무교절 만이라도

주님의 뜻을 기리길 원하신다.

 

  여기서

주님은 또 이리 말씀하신다.

 '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

 

 아들에게 가르치라 하신다.

모범이 되어야 할 아버지로서

난 그리 행해 오지 못했다.

 그 아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성질부려가며

세상의 있는 도구 없는 도구 다 동원해서 가르치기 보다

'아들에게 뵈어'주어야 한다.

내가 주님 앞에 신실하게 행하였음을..

그 신실함 중의 일부는

주님이 원하시는 행사를

약간의 절제를 동원하여서라도

육신의 본능을 누그러 뜨리는 행위를

주님께 드림으로써

아들이 그 의미를

자연스레이 몸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모본이 되되

유교의 그것처럼

유대교의 바리새인의 그것처럼

자신의 자아가 들어나고

그것을 강제적으로 가르치려 노력하기 보다는

이 무교절이

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

내가

그 조그만 개척교회 딱딱한 의자에서

눈물흘려가며 주님을 영접하였던 것이

오직

주님이 날 사랑하셨고

오직

주님이 날 위해서

값없이 구원해주셨던

그 놀라운 것의 감동과 감격에 대한

아주 약간의 충성심을 몸으로 보임임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내 자아가 그 감격에 끼어들어가는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늘 말씀으로 날 잡아야 한다.

말씀에서 금식하라면 금식하는 흉내를 내면 된다.

말씀에서 레마로 주어지는 구절에 대하여

아주 약간의 흉내라도 내면 된다.

그러다가 보면

주님을 의식하는 그 사실 하나 만 가지고

흉내의 성사 유무에 불구하고

주님은

놀랍게 내 인생에 들어와 도우심을 느끼게 될 날이 오게 된다.

 

이제

오늘 주시는 레마는

큰 아들에 대하여

조금 성별화된 눈으로

그 아이를 하나님의

조금은 달리 구별된 아이임을

내 영혼에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호 불호에 상관없이

난 그 아이를 좀 더 품격있게 대해야 한다.

그 아이를 믿어야 한다.

그 아이의 인격을 믿고

그 아이의 앞으로 있을 장래에 대하여 믿고

그 아이의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조금은 더 깊이 믿어야 한다.

 언제고 틈만 나면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우신 세상에 역사하심을

증거하여야 하겠다.

지금도 잘하지만

그 아이는

하나님의 성별된 큰 아들이니까..

 

 

 

 

 

적용

1. 큰 아들은 '주님 것'이다 .

 귀히 여기자.

 

2. 말씀 앞에 겸허하려 노력한다.

 이전과 는 달리 조금은 절제에 대하여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식욕 부분에서 약한 나...

 

3.  아이들에게 보여줄 최선의 것은

 주님을 열심히 믿는 아버지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최선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머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에 고착되어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이들.

주님 믿는 이 기쁨 만은

그대로 물려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 마져 내 의지로 될 부분은 아님은 잘압니다.

소모되어야할 시간이 필요함도 잘 압니다.

주님

당신의 뜻 안에서

아이들의 좋은 모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큰 아이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아이

조금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존중하겠습니다.

그리할 지헤를 주소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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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병'에 대하여

 

 

옛 이스라엘에서는 빵(<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떡'으로 옮긴다)을 둥글넓적한 꼴로 만들어 빵 굽는 판 위에서나 뜨거운 재 속에 넣어 구웠지 그 밖의 다른 기구는 쓰지 않았다.

둥글넓적한 빵은 지름이 20-50센티미터쯤 되었고 1센티미터쯤 두꺼웠다.

밀가루를 물에 풀어 저은 다음에 보통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웠다(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

이렇게 구운 빵은 잘라 먹지 않고 떼어 먹었다.

누룩*을 넣어 구운 빵(유교병)은 제사에 쓸 수 없었다.

무교병은 유월절*에 이어지는 '무교절'(출12:15-20; 13:3-10; 23:15; 민23:5-6; 신16:1-4)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때는 칠일 동안 무교병만 먹어야 한다.

첫 명절날 전날에는 누룩을 집에서 모조리 치워버려야 한다(출12:15. 고전5:6-7 참조).

'무교절'은 본디 보리걷이가 시작될 때와 맞아떨어지는 추수 절기였다(신16:9).

(같은 때에 지키는) 유월절이 이스라엘의 유목민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는 달리 무교절에는 새로운 수확을 삶의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고 축하했다.

모든 '옛 것'은, 그래서 지난해에 거두어들인 곡식 가운데 아직 들어 있는 누룩도 쓰지 않는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결합됨으로써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이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 베푸신 창조적인 구원 행위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출13:3에서는 무교병을 먹는 것을 이런 뜻으로 풀이한다. 12:34 참조). 이로써 또한 수확의 복을 가나안 땅의 신들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다산 종교의식*')

여호와께서 베푸신다는 사실도 분명히 하는데, 이 여호와의 손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과 아울러 그 땅의 소산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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