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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風 속에 예수님과 함께 눕다( 눅 8:16-2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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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風 속에 예수님과 함께 눕다( 눅 8:16-25 )

주하인 2008. 1. 26. 12:02

제 8 장 ( Chapter 8, Luke )

그래도

나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다.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狂風

 

인생의 광풍

하루하루의 광풍

내면의 광풍

관계의 광풍

비교의 광풍

 

미친 바람.

산다는 것은

바람을 맞고 사는 것이다.

인생은 고해다.

여기 올 때마다

늘 걸린다.

아직도..

언제나

광풍에서 광풍을 광풍같지 않게 미풍으로 받을 수 있을까?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역시 주님 예수님 !

꾸짖으시니

광풍이 멈추고

풍랑이 가라앉는다.

 

그나마

예수님 제자들은 참 행운이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모습은 볼쌍 사나와도..

 

 힘이 들면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울부짖어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서라도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그 광풍을 잠재우시고

물결을 잔잔하게 하신다.

행운이다.

행운.

 

 문제는

우리가

광풍의 상황에서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수 있는가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가?

정말?

아무 걸림없이 '주님...'하고 먼저 무릎 꿇는가?

세상의 것 먼저 돌아보지는 않는가?

주식

예금

친구

......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해결할 라고 하는 것은

믿음에 장애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은 사실이다.

미풍이라면 상관이 없을 지 몰라도

-실은 그 마져 주님은 의뢰하길 원하신다. 기도로... - 특별히 감당할 수 없는 광풍의 경우는

얼른 주님을 찾는 것이 선결이다.

 요 며칠

힘든 면이 있다.

광풍은 아니다.

예전 처럼..

하지만 , 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이리 저리 안절 부절 못하며 해결책을 찾으러 애썼을 것을

조금은 달리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crisis 이고 광풍일 지 모를 상황에

일단은 조금은 느즈막히 반응을 한다.

그리고는

다니면서 계속 기도한다.

'어떻게 해요.

 어떻게요...'

주님이 답하시는 가?

조금은 차분하다.

 

 

 어찌되었든

주님은

당신을 찾는 당신의 제자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으신다.

우선은

급한 불 , 아니 급한 바람 부터 끄고 보신다.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이 엉터리 같은 반응을 보라.

여기서

제자들이 박학무지한 자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님 말씀하시는 데

딴 소리들 한다.ㅎㅎ

 

 그런데,

주하인은 안그런가?

정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거 딴 짓은 안하는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요건은 그러면 무엇이신가?

믿고

나가서

광풍을 보고 꾸짖으시길 바라시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믿음이 있음을 보이시길 바라시는 것이 아니신가?

주님이 배 안에서

누워 계신 것을 확실히 안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광풍이 무엇이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

그나마 예수님을 잊지 않은 것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멈추어 주시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았어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배는 넘어지지 않겠지만

그 시간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요런 생각이 올라올 때 마다

그래,

나도 나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멋지게 꾸짖고

광풍을 잠재워야지...라는 의지의 북돋움보다는

'나는 안돼.. '라는 내 속의 저항이 있음을 본다.

그래서,

여지없이 슬그머니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이 곳을 비껴 나가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려했다.

고민 거리를 광풍으로 대입시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잠재우려 해도

잘 안된다.

갈렙이라면

좀 더 성숙된 베드로라면

주님의 말씀 대로 선언하고 나갔을 것을...

비단

이 일 뿐 아니다.

생에 있을 모든 바람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미리 원함을 뚜렷이 하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감사로 인식하고

-당연하지만 인식은 잘 안되지 않지 않는가?  오늘 이들도? - 선언하고 나가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게

얼마전 힛트친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서

목사님이 보여주시는

힘있는 믿음의 모습이다.

갈렙같은 신앙인이다.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잘 안된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자꾸만 오랜 습관을 빌미로 들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 불신의 세월 동안

훈련되어온 부정의 논리들이

잘 안되도록 막아서기는 한다.

 한편,

너무 앞서나가는 위험성에 대한 생각도

많다.

실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속을 하나하나 파들어가서

변화시켜 얻는 영적 희열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

 

 가만히 묵상했다.

화장실에서 ..ㅎ ^^;;;

암모니아 냄새가 각성의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이전에 들었다.

칙간에서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많았다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ㅎㅎ

 그래서 인가?

번뜩 떠오르는 영상이 이렇다.

 나가서 호수를 향해 소리쳐 외쳐서

광풍과 비바람과 물결을 대항하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만

배 밑으로 들어가

예수님 주무시는 곁에

가만히 같이 누워 있으면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

그 분이 주무시는 데

별일이 있겠는가?

불안하고 죽을 상황에서 주무실 수 있을까?

그냥 그 곁에서 잠자면

안전할 것이 아닌가?

파도는 치고

광풍은 몰아쳐도

배는 이리저리 흔들려

조금은 불편해도

주님의 그 평강을 누리고

깊은 잠에 빠져

한번 온전히 피로를 푸는게

나가서 내 몸 피곤케 하며

주님의 이름 불러서

주님도 곤혹스럽게 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게 조금은 더 성숙할 것 만 같다는 느낌이 왔다.

세상을 주님으로 변화시킴도 괜찮지만

세상의 흔들림 조차 주님께 맡겨

주님의 뜻하시는 대로 이끌림 받는게 더 행복할 것 같은...

긍정의 힘과

내려놓음이란 책의 주제가

바햐흐로

두 생각을 대표하며

오늘 묵상에서 대치하고 있다.

ㅎㅎ

 그럼에도

이런 두가지 믿음의 행동이

모두 의미가 있다.

어떤 것이 더 의미가 있고

어떤 것이 더 부족한 것은 아닐 듯 싶다.

 

 주님은

개인의 품성과 환경과 모든 것을 고려하신다.

 

주하인은 

생각이 많다.

갈렙보다는 기드온 같다.

베드로 보다는 도마 같다.

 단정적이기 보다는 상황에 가변 적이다.

어느 때는 베드로 같기가 필요하고 

어느 때는 도마가 필요하기도 하다.

난,

그 결정을

주님에게 여쭙기로 했다.

'주님

어떻게 해요.

생각 같아선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모든 게 주님 안에서 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고 싶은 데

이 습관이 절

안될 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주님 이것도 맡깁니다.

그냥 주님 알아서 해주실 줄 믿고

그냥 주님 곁에서 가만히 쉬길 원합니다.

 물결을 잠잠케 하시고

풍랑을 멈추어 주소서.

그냥 주님 만 믿습니다. '라고...

 

 

적용

 

1. 주님을 의식하는 하루이길 원한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시다.

 주님은 살아계시다.

 주님이 계시면 날 실망치 않게 하실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걸 통해 강함을 알게 하실 것이다.

 무언가 예비하시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2. 주님은 내 영혼 속에 누워 계시다.

 그분의 평안 속에 같이 누울 것이다.

 난, 모른다.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고개 숙이고

 말 줄이겠다.

 

 

 기도

 

주님

바람이 붑니다.

세차게..

 

주님

물결이 칩니다.

두렵게...

 

주님

마음이 흔들립니다.

혼란하게..

 

주님

어찌 하오리까?

 

주님

어찌 하오리까?

 

주님

어찌 ...

 

주여

님이 계심을 압니다.

 

주여

님께서 계신 한

모든 게 잘 될 줄 믿습니다.

 

주여

당신 곁에

가만히 누우려 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평안을 주소서.

평안의 쉼을 주소서.

 

주님

끝까지 도우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Ian Bostridge (ten.)

Julius Drake (p.)

 (펌)

 

이게 제목이 '물위에서 노래함'이래요.

오늘 묵상은

노래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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