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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땅이 되기를 원한다. ( 눅 8: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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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땅이 되기를 원한다. ( 눅 8:1-15 )

주하인 2008. 1. 25. 11:45

제 8 장 ( Chapter 8, Luke )

현관문 열고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나무.

 그 나무에 

잎사귀 하나가 

오래도 붙어 있네요.

 밤 하늘을 향해 

후랫쉬를 터뜨리며 찍을 찰나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려서

정확히는 찍히지 않았네요.

 누구의 속에도

있을 지 모를

저런 인고의 고통에도

끝까지 매달려 있어야

좋은 밭으로 인정 받지 않을까요?

나뭇잎

화이팅 !!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참 아름다운 모습.

열두 제자와 예수님은 열심히 전도하시고

따라다니는 은혜입은 자매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니..

천국이 이 모습이 아닌가?

 

 근데

이게 왜 내 속에만 오면

조금은 삐닥히 보이는 지 모르겠다.

ㅎㅎ

 

 만일 내가 '내 소유로 저희를 섬기게 될 때'

늘 평안하고 기뻤을까?

물론 저희 들은

주님 예수님의 놀라운 평강으로 인해서

당연히 천국의 감성으로

자신의 것을 헌신하고 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어쩌면 좀 달랐을 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내 변화하는 모습을 스스로 판단컨데

기쁨으로 했을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속의 가시 - 오늘 묵상 구절 아래 쪽에 나온다.. 가시가...- 가

스물 거리며 밀어올라 찌르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다.

'내가 이렇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데

 주님은 나를 칭찬하시겠지?

 어.. 왜 안보실까?

 왜.. 어.. 왜....'

그러면서 조금 더 눈에 뜨이고

칭찬을 조금 만 더 얻으려고

몸짓을 크게 하지는 않게 될까?

 난,  조그만 교회에 다닌다.

그 교회는 정말 깨끗하다.

수도적 영성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도

민감한 내 눈에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의 속성이 마구마구 들어나 보인다.

참 문제다.

난.ㅎㅎ

목사님을 향한

몇 분들의 충성도 !

특별히 여집사 님 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질투와

더 눈에 띄기 위한 몸사위.

거기에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듯한...

그것을 보며

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한숨이 나옴을 금할 길이 없다.

 

 오늘 이 구절에서

잠시 회개한다.

주님 만 보자.

내 자아를 내려 놓자.

난 날마다 죽어야 한다.

관심과 칭찬으로 만 살아온

과거의 어리석은 가짜 에너지를 포기해야 한다.

이제

주님의 사랑의 에너지만을 먹고 살고

다른 아무 것도 필요없음을 선택하기로

다시금 다짐한다.

스물 거리던

가시가 잠시 꺾이는 듯한 느낌이다.

' 샬롬

 내 영혼의 샬롬이여!!

 ㅎㅎ '

 

 오늘 묵상은

제자들과

그들 만큼이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선택을 받은 여성도들의 행로에 대한 것이다.

그러기에

편하게 살다가

부끄러운 구원이 유일한 목표인 자들에 대한

호소력은 적은 것이다.ㅎㅎ

 이처럼 올바른 신앙인- 실은 모든 자들에게 주님이 바라시는 삶이다 ! -에 있어서

인생의 여정은

주님의 나라에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방랑자의 거쳐가는 여행지 일 뿐이다.

온전히

그 분 곁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이제 곧

 아래에 나오는 과정을

버티어 나가야 한다.

그것 만이

온전히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드릴 기회가 된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바위가 어딘가?

척박한 환경이다.

척박한 환경은

메마른 곳이다.

그것은

재정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돈이 많아도 사랑이 없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성장이 된 영혼에

주님의 주관적 인도하에 '메마름의 단계'로 들어간

영적 메마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말라 버리는 자가 되면 안된다.

환경에 상관없는 평강이 필요하다.

주님을 온전히 만나는

인격적 만남의 습기가 필요하다.

영적 buffer가 필요하다.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가시가 무엇인가?

가시는 14절 이하에

'이생의 염려

 재리와 일락

즉, 재물과 쾌락'에  기운이 막혀서

온전히 결실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예수님의 해석이 나온다.

 

 돈이 많아 지면

주님 앞에 가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쾌락을 추구함은

성령의 시기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주님 앞에 올바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둔한 심령은 죽기보다 싫다 .  난...-

그래..

두가지는

내 의도든,

주님의 뜻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래된 구습 중

'이생의 염려'

즉 , 삶에 대한 걱정 (NIV : life's worries) 부분이 

건너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정말 많은 부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통제 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여서

가벼워 졌지만

이 38년 가까이를

되풀이한 삶의 습성은

어느 때

이 정도면 되었지라는 나태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는

여지 없이 날 괴롭힌다.

 

 묵상이 참 좋은 것은

이런 것을 한번 이라도 생각하면

여지 없이 묵상에서 걸러진다는 사실이다.

 

 요 며칠 마음이 불편하다.

아침에

거울을 보고 세수를 하던 중

불현듯 느낀바가 있다.

내 속에 아직도 찌르는 것이 있다.

그 찌르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것마져 포용하여야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그 찌르는 것이

찔린 다고 몸부림 칠 때

그것은 가시가 된다 .

가시가 찔러도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는 가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침의 느낌이다.  

 

 버스 안에서 들춰본 묵상에

아니나 다를 까 '가시'가 나온다.

가시를 가시로 안받아 들이고

가시를 가만히

주님 앞에 맡기고

나를 스스로 용인할 때

가시는 더 이상 가시로서 역할을 못할 것이고

주님 안에서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리 되기를 원한다.

강력히 원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님이 전제가 안되면 소용이 없다.

재물도

일락도

부요도

그 어떤 것도

주님이 전제가 아니되면

난 필요가 없다.

가슴 깊이 들여다 보아도

한결 같은 내 고백이다.

좋은 땅이 되기를 원한다.

 

 

 적용

 

1. 날 사랑한다.

 찌르는 가시가 있어도

아픔을 인내한다.

아픔조차 

가만히 주님 안에서 내려 놓는다.

그리고 , 그 모습을 사랑한다.

 

2. 남을 사랑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랑하겠다.

불친절한 자도 묵과하겠다.

악의도 용서하겠다.

과실은 덮어 주겠다.

좋은 점은 사랑하겠다.

번영이 있는 자들은 같이 기뻐하겠다.

우호는 받아 들이겠다.

 결과적으로 남들을 사랑하겠다.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땅의 토질(土質)이다.

이게 '윌리엄 로우'가 선언한 구절이다.

그렇게 하고 싶은게 내 마음이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걱정되는 일은 걱정하기 보다

 주님께 고했으니 주님이 걱정하시도록 맡기고

그 일로 통하여 더욱 선한 일이 벌어질 지 모를 기대에 부풀겠다.

 그리 해주소서. 주여.

 

5. 최선을 다해 친절하겠다.

 

6. 내 선택으로 하겠다.

 그 선택은 주 안에서 주 뜻에 맞추어 한다.

 내가 좋은 것은 한다.

 

7. 주님의 뜻이라면 ....

 인내하겠다.

 습기 없어도 참겠다.

 환란과 메마름이라도 인내하겠다.

 

 

기도

 

주여

오늘도 많은 느낌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신 생각들이

제 영혼에 녹아 들아

자연스러운 제 인격으로 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특별히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과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모든 분들이

날 마다 주님안에서

주님의 주신 뜻대로 성화되어

마지막 날

7천명의 숨겨진 선지자들처럼

곳곳에서 익어갈 수 있도록 지키소서.

부디

좋은 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메말라도

습기가 없어도

고통스러워도

인생의 근심이 그를 사로잡아도

재물이 머리를 잡아채고

유혹이 가슴을 쥐어 채도

그냥

주님의 뜻이 아니면

과감히 잘라 낼 수있는 저와 저들이 되게 하소서.

 미성숙한 용기를 자제하게 하시고

과도한 자기 의를 내려 놓게 하시고

숱하게 찔러오던 인생의 가시가 꺾어지게 하소서.

아니시면

받아 들일 수 있는 큰 가슴이 되게 하소서.

큰 사랑의 탱크가 차서

그런 일련의 모든 유혹들이

하찮은 바람 앞의 티보다 적은 것으로 보이게 하소서.

가시는

그 영혼에 머물지 못하게 하소서.

가시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잊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 그 가슴에 의미가 있게 하소서.

제 가슴에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고비의 열정적 키타 연주( 펌)
 
가시는 아프고
유혹은 강하고
메마름은 힘들지만
힘냅시다.
 
기분 전환된 기분을 위하여 !!!!
야 호
샬 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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