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91세 천사의 유혹(요17:1-14) 본문
제 17 장 ( Chapter 17, John )
문이 저기 있다.
하늘로 가는 문이 저기 있다.
주님.....
깨달은 또 하루가 되게 하소서.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
영원한 생명.
전에도 묵상했지만
그리 큰 감흥이 없었음은
삶 자체가 나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서 였던 이유가 있다.
거기에다가 영원한 생명......
과거의 나에게는 그것은 '지옥'에서 살라는 말이랑 똑같은 저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점점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그 같은 강조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임을 이해하고
관심이 가던 차 ,
아침 묵상은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다소 선문답 같은
이전의 영생이란 단어가 주는 '괴리감'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
논리적으로는 안다.
영생에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참으로 잘 아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하지만 오늘은 '영생은... '이라 하신다.
영생은 두 분을 아는 것이다.
강조의 어법이신지
그 자체가 영생이라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머리 속의 생각과 경험이 바탕되지 않은 믿음이라면
예전에 그랬듯이 '그래.. 그럴 수도 있어'하고 지나가 버리고 말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듯 싶지만
오늘은 다르다.
강렬한 영감으로 다가오지는 않고
퍼뜩 머리 속을 스치는 어떠한 예감도 아닌
중요할 듯한
그래서 꼭 붙들어 보고 엿가락 빠는 옛 적 어린이처럼
두고 두고 음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영생은 하나님, 예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이다.
아는 것으로 출발한다가 아니다.
아는 것 자체가 '영생'이다.
영생은 전에 잠깐 묵상을 했지만, 부활된 육체와 깨끗한 영혼의 결합으로 온전한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경이적인 삶의 형태를 말한다.
그 영생이 그냥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출발하기도
하나님을 아는 것자체가 영생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이해가 가지 않을 듯 하기도 하지만
이해가 가기도 갈듯도 하다.
늘, 역설의 하나님이시다.
그 역설을 이해할 때 주님은 베일을 벗고 다가오는 것 처럼
휘장뒤의 놀라운 미녀가 휘장을 걷고 나오시듯
놀라움과 함께 격동으로 날 휘감으신다.
주님은 아침에 나에게 비밀을 보이신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 비밀의 실체는
'기쁨'이다.
주님 예수께서
이 이상한 시대에
그 어려운 땅에
그 더러운 환경에서
정말 모질고 힘든 고난을 견디면서
33년을 사셨던 것이
'내' '기쁨' 탓이다.
그리 고백하시는 영생의 실체 탓이시다.
주님은 '기쁨'이다.
아니다.
기쁨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언어가 짧다.
그래서
주님 예수님은 '내 기쁨'이라고 밖에 표현하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내 기쁨'이라고 하신다.
하늘의 높은 보좌에 하나님의 보좌에 같이 앉으시사 우주를 내려다 보아도 되실 것을
그 분은 그 기쁨을 표현하여 보이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
주님 하나님을 순종하고 주님 하나님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안다는게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고
그 기쁨은 주님 보좌를 포기할 정도의 가치가 충분할 기쁨임을
말로 표현 해 내실 수가 없어
행동으로 보이신 것이시다.
그 기쁨을 '우리에게 ' 충만하게 하신다...하신다.
아.
참으로 감사하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하인은 '세상'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것들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주님은 세상의 기쁨으로 표현되는 육신의 유혹과 정염에서 떨어져 있기를 원하신다.
부동산의 광풍이 불어도
금융대란이 전 세계를 흔들어도
가까운 자가 수년 내에 벌었다는 주식의 차익이 내 마음을 뒤숭숭히 만들어도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알기보다는 체득해야 한다.
그 체득이 '주님의 기쁨' 탓임을 안다.
기쁨이 흐려지기 싫어 세상을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할머니.
참 명석하기도하시다.
단호하시고...
그 어려운 몸을
이웃을 부탁해서
휠체어 타고
가족 몰래
이 부족한 주하인에게
사랑을 보이시려
직접 오셨다.
91세 연세 드신 환우 천사시다.
얼굴이 얼마나 맑으신지
눈물이 나려함을 참느라 혼났다.
어제 정말 바빳다.
밀려드는 외래 환자 탓에 12시 반이 넘어도 환자가 대기 중이라서
참고 참았던 방광의 충만감을 해결코자
잠시 환자를 끊고 화장실로 급히 향하려다가
문 앞에 휠체어에 앉아 계신 눈에 익숙한
최xx 할머니- 눈치 빠른 간호사가 얼른 이름을 속삭여 주어 알았다 . 얼마전 응급으로 난소 혹 수술 하시고 퇴원하신 91세의 귀여운 할머니 -와 허리 굽으신 동료 할머니 한분이 눈에 들어왔다 .
반가와서 손을 만지니 굉장히 반겨하시며 날 만나려 기다리셨다고
예의 그 어눌하신 말투로 날 잡으려 한다.
얼른 화장실로 도피한 후 돌아와 환자 먼저 보려니
간호사가 들어와 할머니가 면담을 요청한다신다.
많이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보니 '챠트'를 접수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시나 궁금하는 사이 '지팡이'도 놓치신채 휠채어 밀고 진찰실로
급히 들어 오신다.
아마도 많이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무엇인가 건네 줄게 있다고 호주머니를 다짜고짜 뒤적이시지만
91세의 노구에 앉아서 호주머니 뒤지시니 그게 여의치 않으시다.
그러시면서 '선물'을 주신다는 말씀에 깜짝놀라 막아섰다.
그러시면 그냥 '음료수'만 달라 했다.
그랬더니 옆의 도우미 할머니께서 얼굴을 붉혀가며 그러시자고 하신다.
그런데도 막무가내신 할머니....
도우미 할머니께 화를 내시며 음료수는 안가져왔다시면서
굳이 굳이 봉투를 내미신다.
할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봉투.
액수보다는 그 마음이 귀하지만
그래도 어찌 91세의 노인의 그 피같으신 용돈을 받을 수가 있는가?
한사코 사양하자 할머니는 더 우기신다.
그러시면서 '도우미 할머니'께서도 몇차례의 음료수를 권하심을 포기하시고
'자식 모르게 왔다. 나도 옆에 사는 이웃일 뿐이다'라면 봉투를
차트 밑에 숨겨 넣으시고는 돌아서신다.
눈물이 나려 한다
할머니께서 나가시며 하시는 말씀이
'이 나이든 사람을 더 살라고 그리 살려 주셨는데 내 ..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건강하세요.....'
할머니 휠체어 발 걸이를 받쳐 올려 드리고 끌리는 발을 들어 올려 드리면서
눈물이 나오려 함을 억지로 참았다.
그 말씀이 이제 천국에 가서야 뵐 분임을 암시하는 듯도 하고
그 따로 찾아오시는 감동의 배려가 가슴을 지미기도 하고
식구들도 모르게 찾아오시는
연세드신 연장자로서의 매너가 그렇기도 하고
감동을 표현하시는 그 깊은 마음 씀씀이가 그랬다.
난,
너무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할머니를 배웅하여 진찰 실 바깥까지 나가니
사람들이 내 눈을 쳐다본다.
약간 충혈이 되어 있음이 이상하셨던 모양이다.
환자 분들을 보면서도 '흥분'이 가라 앉질 않는다.
주님이
주모는 늘,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면서
세상에서 위로 받지 못하고 자라왔다는 어이 없는 생각을 많이 하니
넌 이리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심도 같고,
한편으로는
긍휼이 여기는 자가 긍휼을 받을 것임을
91세의 할머니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 주심으로
당신의 한없으신 능력의 증거를 보이심도 같아서 이다.
요새 그렇다.
말씀이 레마로 들리고 나면 증상이 나온다.
내 환자가 아님에도 '밀려오는 뜨거운 영혼의 눈물'이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얼른 도망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신가?
얼마전 '미림'의 촌지 사건 후
또 한번 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을 느낀다.
한참이 지나서야 봉투를 열어 보았다.
보통 할머니들의 천원짜리 몇개의 촌지를 생각하며 아무 기대없이 열어 보다가
난 깜짝 놀랐다.
수표를 포함하여 .......수 십만원.
뛰쳐 나가 보았지만 안계실 것이 뻔하다.
잠시 머리 속에는 그 노친께서 자식들의 용돈을 꼬기 꼬기 모으셨을 것이 눈에 선하게 스쳐간다.
도우미 할머니의 상기되시고 왔다갔다하는 말씀의 이유를 알듯도 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것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아들에게 용돈 집어 주고 조카 들에게 주며 폼내고 싶은 자랑스러움도 지나간다.
중국산 스피커의 찍찍 거리는 소리가 안좋았는데 게제에.. 하며 욕심이 스물 거리기도 한다.
두꺼워진 지갑이 마음까지 흐뭇하게 하기도 한다.
머리가 아프다.
계속되는 수술에 허리가 뻐근하다.
돈이 있어서 인가...마음이 풍성한 가운데 싸우나로 향했다.
여유롭게 있으려 했지만 자꾸 머리 속에 돈의 용처가 휘돈다.
동료의사들에게.....
아냐........ 할머니의 핏돈을 선교사 지원에?
얼마를?
......
공돈이 생기니 욕심이 스물거림을 내 영혼이 느끼고 있다.
깜짝 놀랐다.
쉬고 가려던 마음을 바꾸어 얼른 옷을 갈아입고
기도원으로 향했다 .
여러 기도제목이 날 기다리지만
어찌 사용할까요......
소탐대실.
적은 기쁨을 누리려다가 마음의 평정을 잃을 것이란 생각이 강력히 밀려온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집에 내려가서 아내랑 대화를 하니
아내역시 마찬가지다.
돈 한푼 쓰지 마라..라한다.
아직 내 호주머니에 있다.
어디로 향할지 주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적다면 적고 많담 많다.
하지만, 난 유혹보다는 기쁨을 택한다.
주님의 기쁨.
기쁨을 위하여 순종함.
순종함을 통한 십자가 사건.
어찌보면 바보지만, 주님은 천재시다.
주님은 역설의 천재시다.
그 역설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주님의 기쁨을 아는 자들이다.
난 기쁨을 안다.
어제의 그 할머니는 그 기쁨을 시험코자 오신 '천사'시다.
돈 얼마에 기쁨을 희생할 것인가 아닌가 보고 계신 .. .
어쨋든..
감사해요.
할머니..
주님 고마워요.
주님의 기쁨을 알게 해주셔서.. .
영생의 단초를 느끼게 해주셔서요.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겟다.
2. 내 기쁨을 전하겠다.
전인치유의 모든 분들께 내 기쁨을 찬양으로 보이겠다.
3. 주님은 영생이시다.
영생은 주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묵상한다.
성령이여 도우소서.
4. 교회. 선한 물질에 대하여 기도한다.
생각이 많다.
방향은 틀려도 목적지는 같으니 힘들어도 있어야 할 것인가?
내 영혼이 흔들림은?
남을 위하여 나의 바램은 눌러도 옳은가?
어찌하나요? 주여?
물질은요?
미리 기도하고 믿는것이 중요한가?
주심을 만족함이 중요한가?
주어진 공돈은 어찌 쓸것인가?
5. 긍휼한 마음 주소서.
긍휼함을 앎은 기쁨을 회복함이다.
긍휼하심을 받을 찬스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영생의 비밀이십니다.
주님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고
역설을 이해함은 기쁨이기에 그러함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여러가지 혼란이 내 속에 있으나 잘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전인치유의 날입니다.
내 기쁨의 찬양을 크게 하시고
그 기쁨을 저들이 알게하시고
저들이 그로 인하여 회복될 도구가 되게 하시고
내 영혼도 그리하소서.
주님
내 자식들 기억하시고
내 가족들 그리하시고
우리 식구들 그리하시고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 그리하시고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의 기쁨이 늘어나게 하시고
주님이 영생의 길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옛적 그 부흥을 다시 한번 이땅에 허락하소서.
경제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회복과 부흥의 재현으로
따라오는 부도 누리게하시고
이 나라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선도 백성이 되게 하소서.
너무 추워 힘 부치는 자들 없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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