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1-1.통제욕을 드러내는 단서들 (신 30:19-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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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통제욕을 드러내는 단서들 (신 30:19-20)

주하인 2005. 9. 13. 15:19
제 3 일



묵상 말씀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신명기 30:19-20





1단계: 나는 삶을 지배하는 문제에 대해 무력하며, 스스로 삶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한다.



자신의 무력성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12단계 회복과정을 시작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원리이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차지해야 할 곳에 자기의 뜻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무력함과 문제들의 근본적인 뿌리는 바로 통제욕(control)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 속에 있도록 창조하시고 그분의 전적인 보살핌과 인도 아래 살도록 계획하셨다. 그러한 영적인 영역을 자기의 뜻으로 채우려고 할 때, 또는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바꾸려 하거나 환경을 통제하려고 할 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통제는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역기능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근본적인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사실 우리는 가족, 친구,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기도 모르게 부인과 통제욕이 남아 있으면 관계는 깊어지지 못하고 막혀버린다. 우리의 초점은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친구가 되어주고 사랑하는데 힘을 쏟기보다 지배력을 행사하는데 에너지를 쏟게 된다. 스스로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영역들이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고, 자신을 돌이켜 자신의 무력함을 시인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면 이러한 부분들을 하나님께 양도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당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답)



(질문) 자신의 삶이 원하는 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답)



(질문) 당신이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답)



(질문) 자신의 한계에 맞닥뜨리고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던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완전히 패배하여 자신의 무력성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들을 모두 여기에 적어 보라. 여기서 ‘패배’란 파탄으로 끝난 결혼, 깨어진 관계, 실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 등을 의미한다.



(답)



통제하려는 시도를 드러내는 단서: 짜증(irritation)과 탓(blaming)



의식적으로는 조절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초조함과 짜증을 느끼게 된다. 내가 실패한 것은 “주변의 불합리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탓을 돌리는 경향이 우리에겐 있다. 그러한 모습은 자신에게 쓴뿌리가 있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는 또 그들을 고치려고 한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망치고 좋은 삶을 망치기 시작한다.



(질문) 당신의 방식대로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초조함이나 짜증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을 탓한 경험이 있었다면 다음 빈칸에 적어보라.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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