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흑과 백, 그리고 회색[창36:9-43] 본문
세상이
꼭 이렇게
흑 백 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빛 가운데
옳음 가운데
백 가운데 서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물론이다
9.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10.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에돔족속, 에서의 족보 마져
길게 늘어 놓으셨다.
그리고는 '이러하고 ' '이러하니라' 하셨다.
무슨 의미실까?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인은 다 관심이 없음은 '아이'와 같은 생각일 수록 강하다.
'흑백'논리도..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넘어지고 깨어지고 일어나면서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성숙되어질 수록
흑백은 70~80% 정도고
나머지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한다.
(통계는 누가 했는지 정확도는 어떤지 확실히는 모른다.
언젠가 들었으며, 살다보니 그게 맞을 수 있다 생각이 든다.ㅎ)
그런데........
살면서 '정말' 그럴까?
그 회색의 구역.
반드시 옳지도 ,반드시 틀리지도 않은 그 구역을
어떻게 엄밀히 알고 구분해내어
흑과 백, 옳음과 그름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실 확실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흔들리지 않는
옳은 믿음으로 지켜내고
그 회색의 지역에서 조차
'관용'과 '이해'로
그리고 그 들을 마주하면서 겪어지는 일로
더 뚜렷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역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오늘
에돔,
솔직히 그리 중치 않고
버리고 하등 신경을 쓸 당위성이 없다고 생각하던 부류들에
하나님께서
저렇듯 신중하고 면밀히 기록해 나가신다.
그러면서 '이러하고.. ' 라시면서
마치 '심드렁한' 뉘앙스로 전개해 나감이 묘하다.
흑으로 단정하여 버려 버리지 말아야 하지만
깨끗한 '백'으로 끌어안기는 거북한,
그러나 함부로 단정하여 끊어 내기는 버거운..
뉘앙스가 느껴진다.
무엇인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난.. 어쩌면
머리 복잡한 젊은 시절을 살아내오면서
그 머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니편 내편, 흑과 백으로 구분하여 갈라 놓고
가능하면 '흑'에 속하는 자들은 멀리하여 놓는 습관을
내 스스로 가져왔는 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미성숙'한..
그러나 '생존을 위하여 어쩔수 없던'... ㅠ.ㅠ;;;
이제 말씀 안에서
내 잘못된 구획과 구분을 재 정립하면서
아직도 '타인'에 대하여
조금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 겠다.
그들의 잘못된 것을 '흑'으로 치부해 밀어 놓기 보다는
조금더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을 이유를 들여다 보고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받아 들여 보는 노력..
즉.. '회색'의 경우는
때로는 잘 빨고 말리면 백색의 깨끗함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게 필요함은 '긍휼'.
그 긍휼이다.
그 긍휼에 대하여
오늘 다시 말씀하심은
그 어이없는 에돔, 에서들을
'중히.. ' 여기셔서 족보를 길게 길게 늘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읽혀지는 게 아닐까?^^*
그러나,
불신자, 죄.. 에 대하여 성경 어디에선가
두번 세번 권면( 어디에는 장로들과 같이..라고도 되어 있는 구절도 본듯 ^^;) 하고
안되면 멀리하라 신 것처럼.. (전도에 대함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따질 때.. )
반드시 친교를 하고
그들을 '백'으로 만들 과감한 결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에 대하여서는
'이러하고 ' 이러한 느낌 ,
즉 중시는 하나 과도한 노력은 별 필요하지 않다는 뉘앙스 말이다.
12.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중시하는 이유에 대하여 '단서'가 되는 인물이
아말렉이다 .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 통과 부터 그후로도 참으로 오랫동안 괴롭혔던...
무시할 수 없는 간심의 이유.
43.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그리고는 에서더라.. 에서 끝맺힘.
그들..
그들은 '긍휼'로 바라볼 대상이지
적극적 친교나 무시나 같이 흥분하여 맞장 뛸 ^^;; 대상은 아니란 말씀이신 듯하다.
결국..
오늘 내게 허락하시는 말씀은
'긍휼'의 시선으로
타인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그러면서 긍휼을 지체하게 만드는
내안의 저항은
그들을 받아들이면 무조건 '백'.. 우리편으로 삼아서
내 안의 부대낌에도 불구하고
더 잘해 주어야 하는 강박에 대하여
그럴 필요없는 당위성.. 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지나친 흑백논리로 세상을 봄도 옳지 않지만
회색도 옳다 하여 무조건 오냐오냐 함은 (마치 모두 다 옳다는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처럼.. )
또다른 '오염'.. 백마져 흑으로 만들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회색 분야..
그를 어떻게 바라보는 가가
그리고 그럴 때 어찌 더 중심을 잡을 수 있는가가
오늘 내게 허락되어진 레마거리다.
(그를 잘못하여 쓰러진 수많은 대형교회와 이전 병원의 리더들을 보며
어이없지만 그 영적 어려움에 대하여 절감하고 있다. )
회색을 바라보는
내 시선
'긍휼'의 시선.
그러나, 그들은 우리,
제대로 구원 받고
인격적 체험한 성도들(영적 이스라엘인)과는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어야 함이다.
쉽지만 쉽지 않은
반드시 걸어야할 성숙의 길.. 말이다.
감사하다.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그 안에 긍휼을 말씀하시니
무시하지 않고 경멸하지 않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 그 안의 모든 일을 바라보다가
어찌할수 없이 바라보는 그 회색지대에서
허락되어진 '선한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전도의 계기가 되게 하시며
제 안에 '사랑'의 연습을 허락하시고
말씀대로 '긍휼'을 연습하며
제 안에서 순종의 결과 로 얻어지는 영적성장도 경험하게 하소서.
주여.
감사합니다.
말씀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영을 기뻐하나이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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