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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한적한 아침을 누리며[막1:35-45]

주하인 2020. 3. 3. 08:23

 


35.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게제에.........

늙어가면서 아침잠이 줄어드니 (아.. 의대 다닐 때, 인턴 레지던트 거치며......

 너무 잠이 많아서 울 class내 3대 잠 중 하나인 '김병잠' 이라 불렸었다..ㅎㅎ)

아침에 자꾸만 일찍 눈이 떠져서 엎치락 뒷치락 하다가

불현듯 '기도'하는 시간이면 좋을 듯하다 생각되어

그것을 기도했다. ㅎ

초저녁에.. ^^*

 왜 이신지 아시겠지만

아침에 뒹굴거리며 이불 속에서 빠져 나오기 싫은 그 느낌,

특별히 겨울 , 찬 공기가 코끝에 느껴질 때

이불 속의 그 '안온함'은 일어나기 싫은 유혹이다.

특별히 월요일이나, 그날 아침부터 무거운 부담이 있을 때...^^;

더더구나 그렇다 .

머리는 맑아지려 하지만 몸이 무겁고 천근 만근인듯하여

웬만한 의지로는 일어나기 힘든..

그래서 기도했더니

그런 나, 김병잠의 나.. 겨울 이불 속의 부담있는 내가

나도 모르게 일어나 기도하게 되었다.

아..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많은 시간을..


 그리 된 이유.

역시 이불 속에 상체만 드러내고(따사한 상의는 걸친다.ㅎ)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등을 벽에 붙히거나 '포뮬라'에 기대 등치기 하며

차분한 찬양반주 하에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사자가 roaring하듯..) 묵상의 기도를 하다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그 고요하고 한적한 유혹이 너무 행복하여서 그렇게 되었다 ^^* ).


 오늘

예수님이 그 피곤하신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기도하심을 멈추시지 않으시는 이유가

 '한적한 '곳에 가서.. 라는 구절에 응축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하나님을

깊이 마주하여 느껴지는

그 한적한 고요함.

아무도 없고 조용하기만 하는 한적함이 아니고

그 안에 그 분 예수님 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평안함, 기쁨,

한없이 넓어지는 마음의 지평을 체험하는

그 귀함에 대하여

'한적함'이란 표현에 응축되어 느껴져 온다.

할렐루야.


 내 평생 소원이

오직 '여호와의 집'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의 성전을 향하여.........라시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야곱을 떠나 보낼 때 부터 눈멀고 귀 어두우면서도

그가 다시 돌아올 30여년의 시간 동안

그 늙은 육신에 갇힘이

결코 '유형지', 절해고도......의 고독의 고난이 아니었을 것임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유추해서라도 알수 있다면

그 선하심이 그 이삭에게 주어졌을 때

그 고요하고 한적함이

오늘 예수 그리시도께서 사모하시는

그 한적한 아침의 기도,

내 이불 속 유혹보다

훨씬 큰 고요한 아침 시간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그렇다면

난..

우리 , 진정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기도하는 신앙인들...

주님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피곤을 무릅쓰고

그 한적함을 택하게 되는가?


과연 '한적함'이 목적일까?

아직도 난 .. 그 한적한 기쁨이 조금은 커서

더 사모하는 아침의 기도를 누리지만

정말

그 심적인 누림 만이 모두일까?

아니면 아침 기도에 간구하면 얻어지는 축복이 많아서 일까?


'본질' 문제다.

무엇이 본질인가...?

한적함, 기도로 얻어짐, 기도의 응답의 체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본질이 아니지 않던가?


 예수님이 겨우

치료하러 세상에 오셨는가?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겨우 이 .. 부족한 결점덩어리 주하인, 김병잠을

당신의 일을 시키시려고 부르셨던가?

무엇이 부족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씨스템을 만들어 ㅠ.ㅠ;)

전도와 구제와 세를 불리는 데 쓰시던가?

........

그 모두 '비본질 '아니시던가?


 그것을 아시고

오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

그 분, 예수님이 오신 것은

'전도'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

전도는 '본질'에 속하는 것 맞다.

주님이 그러셔서

오늘 날 내가 '구원'을 얻을 자격이 주어진게 아니던가?

 전도........가 모두란 이야기시던가?

아니다 .

주님 예수님의 보내지신 이유는 '전도'란 이야기시다 .

우리, 나.. 모두에게도 '전도'는

본질이자 본질에 필수 적인 것이다.


 내가

예수님과 같을 수 있던가?

내가 그 시대 사람인가?

나로 아니면 하나님께 올자가 없던가?
'전도만 모든 것'이라고 나가시는

전도를 위해 구원 받은 자도 있을 것이다.

지금 전도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내게 실망하실

내 주변의 사람을 위하여서도

나는 전도를 반드시 해야한다.

전도는 '믿는 자'에게는 '필수'다.

하지만

내게,

당신에게

그에게

구원하신 본질이 '전도'인가?.. .라는 문제에 들어가면

상황 , 위치, 시간에 따라 달라질 '본질'에서 약간 벗어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 보다는

오늘 말씀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보내졌는가?" 다시 한번 반문해 보길

주께서 바라심 아니실까?


아..

전도에 대하여

오늘 말씀하셨으니

오늘 , 한사람에게라도

전도의 말씀을 건네야 하겠다.  .. 당연히..



41.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깊이 만난후

성령 충만함으로

당신의 본질에 합당한 일을 시작하셨다.

또..

즉, 당신의 본질이신 '전도'를 위하여

'치유'의 행동을 하셨던 것이다.

'깨끗함을 받으라'

아..

주님은

주님의 뜻을 행하려 결심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능력을 허락하신다.

한적한 시간에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통하여..



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보라.

예수님은

'전도'를 하기 위하여

치료를 열심히 하셨지만

그 치료를 통하여 전도를 하려 하지 않으셨다.

치료의 성적인, 치유율을 내세우고 광고하며

system을 만들어 (교회조직, 전도 조직 .,PR방법 강구.. .)

더 전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적한' 곳에 계셨다 .

그러나 사람들이 그에게 사방에서 옴으로

전도의 사명이 크게 부흥되었다.


 본질과 비본질의 뒤죽 박죽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현재, 작금의 어려움을 겪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도 연구되고 쉬이 세상에 접하게 되었으나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는 자들의 영혼은

성경에서 나오는 수천년 전 사람들의 (미개한 ㅠ.ㅠ;;) 심성과

거의 차이가 없다.

더 사나와 졌다.

왜 인가?

왜 일까?


 오늘 말씀에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으시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약시대

그 수천년의 어르고 달래고 보듬으시고 만지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변화없이 타락함을 고심하시던

너무도 크신 '사랑많으신 ' 결단으로 인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의 시선까지 낮추시어

우리를 구원코자 오셔서

그 놀라운 '복음'을

단 한명이라도 더 전파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그 뜻을 준행함을

이 짧은 '3년여' 의 공생애 를 포함한 30여년 인생 동안 이루시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분명히 그 분은

'기도', 그것도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으로 인하여

그를 이루시려 하심을 보이시고

그 모범이 '나, 주하인'을 포함한

모든 세상의 믿는 자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계심이시다.


 그렇다면

본질과 비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돌아보고

전도를 포함하여

내게 , 나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가 돌아봄이 필요하다.


나.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의 본질은

'예수님'을 깊이 만나

나의 모든 특질과 나의 강한 바램에 따라

그 분이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길을 가면서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 영적 성화를 이루어냄이 아니겠던가?

당연히도 '전도'나 구제나 선교는

우리가 밥을 먹어 에너지를 보충하듯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심으로 행하며

그 안에

우리의 일상의 일들 가운데서 행하며 말이다.

그러고 그러기 위하여

'한적한 나만의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 사모하는 자 , 모두에게 말이다.

 그게

본질과 비본질이 뒤섞이다가

마침내 지쳐 burn out되지 않는

옳은 우리의 모습이다.

주님을 앞서지 않기 위한

한적한 기도..........가 꼭 필요함이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도 다행히

무거운 몸을 들고

따스한 유혹을 벗어낸 후

잠시

주님을 만나는

한적한 아침을 보냈습니다.


주여.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러함이 더욱더 필요함을

점점 더 느껴 집니다.


주여.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 기쁨이 없으면

제가

어디에서

살아갈 에너지를 얻겠나이까?

돈도

유혹도

명예도......

이제는

별...........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그 한적한 고요함 속의

잔잔한 은혜로 아침을 열고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며

입을 열어 전도하고.........하는

일련의 일들이

점점 더 기쁨으로 커지는 부분이 되길 기대합니다.

주여.

그러다가

부르실 그 때

모든 것 벗어놓고

홀연히

주께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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