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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 지금 이후[창35:23-36:8]

주하인 2020. 2. 28. 08:51



5장
28.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이삭이 눈멀고 귀가 잘 안들려 

에서와 야곱을 혼동한게 벌써 몇십년 전인데..

참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매일성경(성서유니온)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는

아들들의 화해를 보기 위하여 버틴 세월 ^^;; 이라 하시던데

나름 공감가고,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너무 인간적이고 가슴이 훈훈해서

꼭 하나님이 그래서 살려둔 것 같지는 않으며

근거가 성경적인 것은 아니라 흘려 보냈지만 (죄송^^;;)

어차피 이 부분에 눈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레마.......


 난..

이 블로그에 많이도 써 냈지만

불신의 시절이던 38살 이전까지는

28살 이후에는  살지 못할 것 같았고 (10대에..직장없이 무기력한 막내 삼촌을 보며.. )

그 나이를 넘으니 40살(괜히.. 그랬다.. 죽을 4자라서 그랬나.^^;;) 이후의 삶은 그려보지 못했었을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정적이고 암울했었다 .


 어쨋든

그러한 내 성향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후 대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이제는 전~혀 자살 내지 그런 어이없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으나

솔직히 나이들어 가면서

노화된 , 노인의 삶에는

어떤 낙도 없을 것 같고

그 때에 어떻게 살아가지가 (외로울 것, 재미가 없을것, 어떤 자극도 둔감해질 것.....)

막연한 두려움이었으며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묵상해가며

그 막연한 두려움의 간격은 점차로 간헐적여지고 옅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완전히 아니라고는 못한다. ㅠ.ㅠ;


 그러나,

난.. 분명코 안다 .

주님이

주님을 사모하고 제대로 믿으려 몸부림 치는 자(나, 아직도.. 제대로 믿는다고 장담은 아직 못하겠다..) 들에게는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며

그들의 궁극이 '선'임을 알기에

우리의 노인시대,

우리의 죽음이후에 대하여

서서히 확신 비슷한 믿음이 생기고

따라서 그 나이가 다가오면서도

이젠 '기쁨'이나 '행복'.. 내지 '생기'.. 발전이라는 단어들이

내 입에서

내 글에서 나오는 빈도가 강하고 많아지긴 했다

 항상,

그래야 하는 게

내 , 앞으로 더 되어야할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러함,

그러한 발전은

아래에 써 있는 구절이

더 크게 가슴에 들어면서 부터

그러기 시작했다.

분명코, 더 뚜렷이 말이다.


(시편23: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보라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산다 잖은가?
여호와의 집이라면 '교회'일 수도 있겠다 .

교회가 중심이 되는 삶이

내 은퇴 이후의 살아가는 인생패턴의 중심에 서서

더 교회에 봉사하고 더 ..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내 특질의 버거움,

그러한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지루함,

..........등으로

반드시 그것만은 아닐 것임은 잘 안다 .


여호와의 집은

'시온성'

주님의 진정 계시는 '천국'을 사모하는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내가 성전이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믿어지고 느껴지는 바

주님을 사모하는 내 영혼,

내가 주님을 사모하며 산다면

그게 어떤 장소이건

주님의 집, 여호와의 집이 되는 삶이 될 것이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은혜

기쁨

아름다움


 은혜에 충만할 때..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내가 주님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내가 '영'으로 느끼고

마음까지 내려올 때

정~말 기쁘다.

그 기쁨이 너무 좋아

다른 어떤 유혹도 아무런 내 관심을 끌어 다니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런 상황..

그 상황이 계속되면

그게 '여호와의 집에 '

단 하루를 살더라도 '영원히 ' 산다는 개념 아닐까?


 그리고

그래서

유일한 소망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이

내 평생.

이제 남은 나머지의 여명동안 (늙어가다가 결국 소천될 그 때까지)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동일한 바램이 아니던가?

늘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즉, 은혜 깊은 눈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이 兩子적인 표현 ~ ^^*)

늘 아름다운 눈으로..

조건은 늙어가고 가진것 다 없어지고 .. .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과 나의 앞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의 마지막 소망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마지막이 되겠는가?


 오늘,

수십년 째 죽지 못해 아들의 화해만 기다리며

그 모진 목숨 여명할 것 같은

'이삭'의 노후가

그리 비참하기 보다는

어쩌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그 진정한 소망으로

이땅을 살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심령천국의 삶이 되었을 것임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짐작해 봄이다.


 내

이제 남은 나머지의 여명동안

주님과의 동행

그 아름다운 소망으로  살다가

부르시면 두손들고

이 모진 세상의 버거운 육신의 장막을 벗어 놓고

홀연히

주님 곁으로 소천하여 갈

그러한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하다.



주님.

이삭의 눈멀고 귀먼 시간이

결코 암흑이 시간이 아니며

소설 속의 비련의 주인공 같이

오직 자식들의 화해를 바라보며

겨우겨우 연명해가는 그런 삶이 아닐 것임을

묵상하였습니다.


주여.

주님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선'의 전제조건이며

주님과 깊이 만나는 자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음을

그리 길지 않은

지난 세월의 경험을 통하여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주여.

그러나 ..

이 습관적으로 부정한 생각을 했던 습관으로

아직도 순간순간

외로움과 어려움과 고난과 지겨움과.........그런 두려움으로

주님이 원치 않으시는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주님.

그것을 아시고

이제 정리시키심이 맞는 줄 압니다.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거함을 간절히도 원합니다.

그럼이 내 나머지 삶의 시간동안의

간절한 소망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여 .

저로 그렇게 하셔서

아름다움,

주의 아름다움 안에 거하며

나머지의 시간동안 살 수 있길 원합니다.


그 놀랍고 귀한 비밀,

그 은밀하고 크신 감동을 누리는

우리 , 믿는 자들의

아.. 사모하는 자들의

오늘이후에 남은 나머지 시간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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