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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로 담대히[행9:19-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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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로 담대히[행9:19-31]

주하인 2024. 5. 20. 07:47

부제)어색함이 무엇이냐 사망아 어디있느냐

.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는 것도 

다메섹의 제자들도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시다.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 하는 것.

 

 회심 맞다. 

성령 충만함이 아니고는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즉시로 ' 전했다는 표현에 .. 

'당연히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함을 인정하면 쉬이 받아 들여지지만

그게 

사울의 '하나님이 택하실 수밖에 없는 특질'이어서 그랬을까?

 뭐든지 '깨달으면 바뀌는?'

 

 '즉시로'라는 단어를 보면서 

'부러운 품성'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얼마나 깊이 체험을 하고 

하나님께서 강력히 임하셨으면 

바로 며칠전 그토록 살기등등하던 자에서

완전히 반대의 열심이 보여지는가 

그 내면의 '충격'과

'예수님의 실재(사도 바울이 아니시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아.. 그 분의 그러하심이 가능하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실재' ..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의 증거를 표현하는 것이다 ^^*)'를 

이토록 '즉시' 발현해내는 게 놀랍다 .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그의 놀라움은

이 '며칠내 180도 다른 사람'이 된

그 영혼의 변화가 놀라운 것 뿐 아니라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면화 시키는데 필요한 

일정의 시간이 없이 '즉시' 되었다는 것과

사람들이 다 놀라는 데 대한 '어색함'같은 반응은

그에게는 일절 .. 없다는게 그렇다. 

 

 29절의 '담대함'으로 표현되는 

그 영혼의 '강함'이

일절 '예수님의 강력한 임재' 때문 만이었을까?

 

 어제 말씀에서 나온 것 처럼

당연히 '선택된 그릇'으로서의 '자질'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한 

가장 타당한 그릇으로서의 '사울'.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힘을 더 얻어' 라 나온다 .

그 자질에 (어찌 자질만 가지고 이 '어색함'과 예견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이처럼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힘'

성령의 은총과 은혜로 인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지....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그에게는 어색함과 두려움이 일절 없다.

이러할 때 '당돌하다'는 표현을 쓰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어린아이 같은 ...그러함.

그것을 " 담대히" 라 표현하고 있다 .

 

 오늘

내게 무엇을 보여 주시려는가?

 

 어제 잠시 보고 잔 묵상 구절이

내내 밤새 잠을 자는 데 떠올랐다 .

왜인지 모르겠다.

그를 부러워 하고

그를 질시하거나

그처럼 되고 싶다는 강력한 바램이 있음이 아니데도

계속 꿈대신 '사도 바울'님의 내면과

그를 아시는 '하나님의 선택'과

그에 '즉각 반응'하여

180도 다른 자로서의 '생명을 걸고'

'염치(죄송^^; , 난 이 어색함과 쑥스러움이 평생의 이슈다... 하나님께서 내게도 오셔서 이러한 눈꺼풀의 막을 벗겨 내시고 강력한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앞뒤 재지 않는 사도 바울님 같은 변화를 허락하시길 바래본다.    염치가 아니고 당당하고 담대함 .. 말이다 )'를 무릅쓰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강력하게 해보았으면... 하는 부러움의 기대인가?

 

 주님

솔직히 '사도 바울'님의 저러한 대 변화를 마주하면서

부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며

그의 담담함과 즉시 반응하는 모습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의 어떠함에 대하여

일견 공감하기도 합니다.

 

 내내 지난 ㅇ산 땅 기경으로 피곤하기가 말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성령충만한 자의 어떠함'을

내 영혼이 밤새 간구하게 하셔서 인지

개운하게 깨었습니다.

 

주여.

문제는 제게 있음을 압니다 .

'도피성'........

자꾸 '디지탈'세상에 머리를 맡겨버려

주님께서 제게 임하실 시간들을 소모하며

'기도'를 하려면

기도의 기쁨과 개운함 ^^*을 알면서도

우선 다가오는 부담감.. 말입니다 .

 

주여.

제게 '더' 성령을 사모하게 하소서.

그래서 더 기도하게 하소서

더 기뻐하게 하시고

주님 이외 그 어떤 곳에 있는 것도

제 영혼을 유혹하지 못하게 하소서.

 

주여.

오직 주님의 이름을 담대히 드러내며

완전히 뒤바뀐 자로서의 그러함을

당당히 드러내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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