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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후 이러리라[행28:1-15]

주하인 2024. 6. 29. 07:05

부제) 롤로코스터의 세상 안에서 누려지는 예수 안의 초연함

(펌)

그랬을 거다

바울님은 저 짐승의 물어댐이

그리 큰 의미나 호들갑이 되지 못했을 거다

그냥 또 떨구어도 될

잠시의 그러함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 모든 가벼움

그 모든 초연함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크신 뜻 가운데

잠시 스쳐지나가는 무대 장치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되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 

 

이 땅에 눈뜨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이외

그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이제 더 이상 날 흔드는

그 어떠한 중함이 될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마주할 

주님의 영광

살아계신 주님 나라가 

곧 내 앞에 펼쳐지고야 말것을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유라굴라.

구원의 희망마져 없을 어려움.

그래도 그 안의 '안심하라'시는 성령님의 뚜렷하심.

 

 그리고 또.. 당연하지만 '구조'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 ^^;

 

 구조될 지도 모르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구조될지도 모르지만

'세상'적 방법,

세상의 존재하는 섬에 의하여

'구조'될 것은 확실하다 .

하나님께서 구원하실거다 .

그러니 안심하라 신다. 

그리고 모든 방법과 형태에 대하여도

그냥 내려놓고 기다리자.

'멜리데'라는 

구조되고야 알 수 있을 섬도 있다. 

 

하나님의 기기묘묘 막측하심을 

그냥 믿고 기다리자. 

문제는 내가 '기도하며' 기대하는 자 인가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그리고 그 섬에서는

예상과 다른 '쉼'이 있을 거다 .

하나님의 쉼에 더한 세상적 환대.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하지만.. 당연히도

세상의 것은 불완전하다 .

꼭 주는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 

 '호사다마'..

 

이 쉼없는 '롤로코스터'..ㅠ.ㅠ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그리고 그러함은

그리 차분히 영접해주던 세상의 인심이 격변하게 하는 

또다른 실망과 좌절의 이유가 된다. 

 

 그렇다. 

세상은 흘러가는 곳이지 

완전히 의지하거나 잠시의 그들의 반색을 

온전한 '의'나 선으로 착각하여 마음을 풀어버리다가는

언제 또 격변하는 롤러코스터에 탈지 모른다. 

 

 일희 일비

과도한 감정의 휘몰림.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한 '안온감'의 지나친 의지... 등은

결코 

"노 ~!'라는 말씀이신듯하다.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이 말씀에 눈이 꽂힌다. 

 

바울은 늘 기도하는 자다. 

아마 이 순간에도 성령의 충만한 흐름이 있었을게다. 

당연히도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짐승 ^^;' , 뱀을 떨구어 버려버리고는

툴툴 털어버린다. 

 

왜 일까?

무엇 때문에 '뱀'을 그 짐승이라 표현했을까?

 

 더 이상,

세상의 악함이 

그를 해할 수 없는 지경,

그들에게는 '경악'하게 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롤러코스터 바닥치기일지 몰라도

이제는 더 이상 '바울님의 모든 부분'에 하등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러한 가벼움 ^^*이기에 그런 거 다. 

 

세상아.. 지껄여라

난 아무렇지 않구나..그래 .. 그럴수도 있겠지그러나 뭐.........!.. 다. 아니다. 그냥... 그마져 흘려 보내게 될 일상의 한 가벼운 스침일 뿐이다. 더 이상 어떠한 것도그의 평강과 안심(이제 안심하라.. 그러므로 안심하라.. 시는 선언 !) 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가벼움일 뿐이라는 거다. 

 

귀하다. 롤로코스터......같은 세상의 풍파와 웃고 웃음은더 이상 그에게는 별의미가 되어 버리지 못함이다. 오직 하나님 이외그 어떤 것도 그는 '초연'할 수 있음이다.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보라

세상은 그를 불쌍히 여기었다가

놀랬다가

저주했다가

이제는 '신'이라고 까지 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세상'이며

그게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착각되어지는 '이 땅'이다.

또 그게

'인생광야'......'연단'의 장소이다.

 

 이러한 세상에

과연

무엇하나 의미를 두고 추구할 게 있단 말인가?

 그냥..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허락되어진 '연단'의 장소로서

그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곳 일 뿐이다.

 

오직 내 관심은

아직도 남은 내 '일희 일비'의 흔들림의 진폭일 뿐이고

그를 통하여,

그렇게 하는 그 매개체들로 인하여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바라보는 것 뿐이며

그 모든 유라굴라와 '멜리데'와 '주민들의 어떠함'......속에서

엎다운, 롤러코스터의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내게 허락하신 '평강'이 존재하는 가...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로마'가

비록 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종착지이며

그곳이 꼭 육신내지 세상의 만족이 분명히 아닐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마지막 귀착지 모습일 거라는

그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

말씀대로만 살아가며

매일 회개하고 돌이키고

매일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매일 내 안에 하나님 계시는

그 상황 가운데의 '현상'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짐승'을 털어내도

아무렇지 않은 그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게 됨이 자랑스러움을

매일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한거다.

 

 

감사하다.

 

 

주님.

말씀이 깨달아 집니다.

그러한 마음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가 아니고

주님을 기뻐하여

주님 말씀대로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하루 하루 살면서

인생의 희노애락,

그 어떠한 팥죽끓듯한 세상의 격변에도

오직 '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주님과의 매일 교통으로 허락받은

인생의 방향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그 모든 상황에서 '어느새 바울님의 저 잠잠하고 초연한'

그러함에 제 안에도 잇음을 확인 받고

하루를 살아내는 거......................

그러다가 마침내

결국 도달되고야 말

로마에서

주님의 뜻대로 전력을 다하여 살아왔음을 확인받고

부르실 그 나라에

부활의 몸으로 소천되어가는 것....................

그게

제게 말씀하시는 내용의 키포인트 같습니다.

 

주여.

주신 레마

마음에 담고

여전히 슬그머니 제 마음 속에서

언뜻 언뜻 물어대는

영적 '짐승'의 흔적을

또 말씀 가운데 내려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안심하고

오직 주님으로 초연한 제가 될 수 있길

기대하며 기도하나이다.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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