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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심하라 그러므로 안심하라[행27:21-4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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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심하라 그러므로 안심하라[행27:21-44]

주하인 2024. 6. 28. 00:17

부제) 바울님의 변함없는 담대함과 담담함의 이유

        소망(삶을 움직이는 의욕 , 동기)

(펌)

그렇다

매일 매일 달라붙는

불안과 욕심과 좌절과

그로 인한 현실의 유라굴라 앞에서

끝까지 소망을 지니고

하루 하루 힘있게 살아간다함은

정말로 모든 것 다 알아도

자주 넘어지기 일쑤다

 

특별히 이정도면 되었다 싶은 그때

내 나아갈 방향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곳

영적 로마가는 길임을 알아도

인생이란 광야의 연단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롤로코스트다

 

이러함에도 

굳이굳이 또 일어나 

내 작은 발걸음을

휘적휘적 이어갈수 있음은

소망이 있음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

그러한 동기와 의욕이

과연 단지 앎만으로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바울님의 그러함

그러한 변함없는 담대함과 담담함은

소망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짐이 이유며

그러함이 가능할 수 있음은

그의 매일 기도와

그때마다 충만하신

'성령님의 은혜'

그 은혜의 내주 합일

폭포수처럼이어지는

감사와 평강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

잊고 있었다

그는 기도하는 자다

그는 주님 안에 있는 자다.

그분은 매일 말씀으로

교통하시어 주시는 하나님이

그 분 안에 계시는

그는 그런 자다. 

 

그리고 그러함이

주변 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이러한 선언을 할 수 있게 할 

근본 동력과 이유다 

 

이제 안심하라

그러므로 안심하라

 

할렐루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이제는"

"안심하라" 하신다. 

 

 이제는 .. 이 회복되고 평정된 때가 아니다. 

20절에는 '구원의 소망이 없었'던 때라 나온다 .

아직도 고통과 고난이 유라굴라처럼 몰려오던 그때다 

그때.. '이제는' ... 이라 한다. 

그리고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신다. 

 

 그렇다 .

아직,고통과 고난이 진행되어도

'이제는' 안심해도 될 일은

'내 선택'의 영역이란 이야기다. 

 

그 선택의 결과가 그리될 것임은

그래서 누구보다 그 상황에서 담담하고 담대한 '리더'로서의 자격을 

뿜어낼 수 있는 ^^* 이유,

역경 속에서 드러나는 온전한 리더, 바울의 이유가 

기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함께하신 결과의 응답'임을 (이제는 안다.  기도로 응답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아주 지엽적인 부분이고.. 기도로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닫게 됨을 넘어... 늘 함께 계시니 그 분 안에서 사는 자.. 그래서 자연스레이 나타나는 결과임이 되어야 함을 ..^^*)...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보라.

'내가 속한 바'라 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아직도 번연히 내 안에서 나를 움직여

'악함, 노함, 분함.떠듬, 비아냥'........의 악한 마음으로 움직이게 하는 편이던가?

'긍휼, 사랑, 온유, 겸손, 절제'.........의 성령 편이던가?

 

  난 인정하든 안하든

매사 '선택' 안에 있음이다. 

그 선택의 주체가 '나'고 

내 안에서 '영적전쟁'을 거쳐

점점 더 '하나님의 편'으로 가

완전 성화되어

내가 '주 안에'

주께서 '내 안에' 계신 그 상태가 되는 것.. 

그게 '내가 (주 안에) 속한 바' ... 아닌가?

 

이 당연하고 당연한 원리... 

그것이 '유라굴라 풍랑'.. 

고난과 역경의 현재, 

소위 우리 이 3차원, 물질계에 살면서 바야흐로 허덕이는

이 순간에 그런 말을 함이 

과연 당연한가?

당연한 그 사실.. 

우리가 '영적전쟁터'.. 이 인생광야의 

'연단'과정을 통과하여 

주님의 편으로 완전히 '속해져 버리는 것'.. 

그 것을 

이 고난의 순간에 선언하게 됨이 중요하다는 거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 ..

 

 그렇다 .

또또하루 막연히 흘려 보내고 그렇게 그렇게 죽여버릴 시간 속에서 

난.. 유라굴라의 영적 원리를 깨닫고'내가 속한 것'은 '하나님 편'이며'구원의 소망이 없는 그 역경'의 매일에서난 주님의 사자, 성령의 은혜로 또 일어나 앉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

 

 사도 바울님.세상의 온통의 기쁨을 차단 당하고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 자신이 향할 수 밖에 없는 '영적 로마' 행에또 롤러코스트의 지겹고 힘든...ㅠ.ㅠ... 풍랑이 몰아치지만그 안에서도 아직 이렇게 번연히 '담대하고 담담한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있음은오직 세상의 '소망'이라 부르는인생의 동기, 의미,............이런 것이 '오직 내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니 세상의 것 못박고 자신도 세상에 못박힘'이 그 영혼에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 하나님 편에 속한 자' 라는 거다. 

 

 그래서 그 성령의 지치지 않는 내면의 흐름으로 그는 '소망'을 잃지 않고의미를 넘어서는 자연스러움으로 이러함을 선언할 수 잇음이다. "이제 안심하라"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유라굴라'와 상관없는 선언을 하시며 도장을 찍으신다. 

'그대로 되리라"

그리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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