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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 이웃 하나님 나라(막12:28-34)

주하인 2015. 3. 22. 10:38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듯하다.

당연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홀로 한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맞으시다.

 

여러차례 이 블로그에서

그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함에도 세상 살다보면

잡신들, 귀신들... 생각으로 혼란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다원주의' 안에 하나님을 포함시키는

진짜로 '무지한' , 무식한, 무시무시한 일을 벌이고

그게 마치 깨인 자인양.. 그리 세상에 이름을 들이민다.

 

하지만 이 '한분'이신 하나님.

세상에 모든 존재들이 그 조물주의 피조물임을 감안하면

만들어진 '신'들조차 '신'이라 혹 가정을 해도

(실제로 성경의 '신들의 신'이라는 표현이 부지기수다)

그 만들어진 모든 존재의 궁극에는

홀로 계신 진짜 조물주가 계시다.

 

그게 홀로이신 하나님의 옳은 표현이고

다른 모든 신을 인정하더라도

믿을 필요가 없는 이유가 생긴다.

 

하나님은 한분이 맞으시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그 분을 믿는 것.

그러나 쉽지 않다.

세상의 수 많은 어려움과 인생의 유혹들,

그안에 피어난 인간 욕망의 반영치인 '우상들',

그를 믿는 불쌍한 불신자와 배교자들....

그 장해물들을 뚫고 하나님.

홀로 하나님이신 분을 믿는 것은

인생 자체가 '영적 전쟁터'이기에 참으로 힘이들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단순한 명제가

성경 수천년의 역사동안에도

수도 없는 되풀이의 오류로 주님을 배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명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우리 신앙의 기본이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그 과정을 보시기위하여 만드셨다.

그게 아름다운 찬송(이사야 43:21) 이다.

 

그 아름다운 인생으로 불러 올려드리는 찬송에는

'이웃을 사랑함'이 전제가 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현상 現狀'이 이웃사랑이다.

 

그 이웃을 사랑함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세상이 각박해질 수록 더 어려워진다.

 

그 이웃을 사랑함을

'나' 사랑함 처럼 하라고 쉽게 말씀하신다.

그렇다.

나를 사랑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도 쉬운가?

자라면서 '역기능' 하는 가정의 소산으로

특히 요즘 같은 비 합리적이고 기형적인 인성의 가정 중에서

나를 사랑하도록 자랄 수 있는

정말 건강한 자가 몇이나 될까?

 

나를 사랑함은

다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때에야

내가 날 사랑할 수 있고

그 온유하고 완전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행동 만으로 뛰어드는 교과서 적인 사랑은

타인에게 오히려 고통만 준다.

 

믿음의 길은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 길을 가고 가고 또 가다보면 

어느새 '하나님 나라'가 가까와 지지 않을까?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서

그냥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인해 받은 자격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는 분명코 생겼으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가서

과연 내가

세상에 지금 처럼 불완전하게 더럽게 살다가 간

그 무뎌진 영혼,

더러운 때 낀 영혼으로 (하나님이 십자가로 보혈로 다 씼어 주셨는데 또 묻힌..때....)

어찌 고개나 들 수 있을까?

 

1차 구원은 십자가의 구원이지만

2차, 온전한 구원은 상급 구원이라 한다.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도다... 하시는 말씀에

가슴이 덜컹한다.

 

나 .

돌아본다.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던가?
이전보다 많이 지만

지금도 과연 매 상황에서 그러던가?

이웃은?

가까운 내 가족에게 모두 용인하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완전한 보호 테두리 역할을 하려 노력하던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 분의 그 격렬한 사랑에 대하여

난 온전히 기도와 감동으로 매일을 감사하며 살던가?

 

 

주님.

갈 시간이라서 챙기려 일어납니다.

주여.

주신 말씀 붙들고

오늘 하나님 나라 사모하며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하루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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