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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도(막11:12-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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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도(막11:12-26)

주하인 2015. 3. 19. 09:11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예수께서도

시장함, 배고픔을 느끼신다.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께서도

'저주'를 하시긴 하신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예수께서도

'분'을 내신다.

심지어는 내쫓고 상을 둘러 엎기 까지 하시며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그러시면서도

그 분은 가르치신다.

우리의 성전,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신다.

그러함에

강도의 소굴을 만든 그들에게 '분노' 하신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는

뜬금없이  (죄송 ^^;; )

하나님을 믿으라라 신다.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용서하라' 신다.

 

 위의 '예수님께서도' 라는 단어 뒤에 붙은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나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모습적이 아니신 ^^;; ' 모습을 보이신 후

너무나 당당하신 '예수님' 본연의 모습으로

그리하신다.

가르치신다.

이전과 다름없이...

 

' 좀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모습' 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옳을 것이란 생각으로

그냥 흘려 넘어가거나

아니면 '인성 人性'을 가지신 '인자人者 예수님'으로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고 싶은 부분.

 

오늘의 묵상 포인트다.

내가 오늘 붙들 말씀의 본질인 듯하다.

 

무엇인가?

나에게 깨닫게 하시려 하시는 부분은?

 

우선 ''예수님'의 인간적 부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체휼하신 분이시다.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주님께 다가가기 힘든 부분,

그 분은 나와 떨어져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에

일상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할 것 아닌가?

내 속의 더러운 움직임들,

나도 이해하지 못할 내 죄인 중의 괴수 같은 부분... 등..

주님은 모두 아신다는 것이시다.

그 분은 배가 고파 보시었고

그 분은 이유가 어찌 되었던 간에 '분노'와

그 바탕의 인간적 심리를 이해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내 '버거운 심사'를 다 아시는 분이심이시다.

 그러하기에

내 살아가면서

내 자신에 대한 실망

이웃에 대한 '경멸' .

인간 본질에 대한 좌절 등을

조금은 더 받아 들이고 너그러이 관용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오늘 난.. 혹

나 자신과 내 이웃에 대하여 너무 과도한 '잣대'

예수님과 똑같이 전적으로 '신같은 '기준을 들이대어

남과 나에게 증오와 자책의 어두움을 유발하지 않는가?

 예수님도 인성을 보이셨다.

그 분은 주님의 인자로서의 모습보다 월등히도 부족한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더 기준을 낮추라 하심이시다.

 

 

 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그 분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심으로

주님은 범접하기 힘든 분이 아니시고

너무나 '가까이 계신 ' 아버지와 형제 같은 분이심을

넌지시 보이심이다.

그것.

세상에 어떠한 종교도 제시하지 못한

완벽한 부분이다.

더 기대하고

더 내려놓고

더 기댈 부분.

 

 분노에 대한 부분이다.

주님은 분노를 격하게 표출하셨다 .

그러나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으셨다.

곧 제자들을 향하여

지도를 하셨다.

분노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나도 그래야 한다.

분.. 지금은 이전보다 아주아주 많이 적어졌지만

어쩌면 분을 내는 사실 만 가지고도

난 , 나 자신에 대하여

너무 심한 혐오를 내포한 것은 아닐런가 싶다.

일부분 그러한 분노에 대한 거부는

분노의 빈도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 모르지만

자책은 포기로 변해

더 심한 분노로 나를 묶기도 할 수 있다 .

 

 또 인간으로서 예수께서

세상에서 저런 인간적 감성을 다 가지고 계셨음에도

세상의 온갖 관심과

그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과 살해의 위협을 불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회복사역을 하시고...

감정과의 싸움, 마귀의 광야 시험 같은...

그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감정의 굴곡들에 대한 저항.. 등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가 그 분께 있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 분은 그 누구, 인간적인 위로와

내려 놓을 이야기 상대가 없었다.

그러하기에 ' 베드로 ' 등보고

십자가 달리시기 전날, '내가 죽을 것 같으니.. ' 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이 엄청난 고통을

오늘 말씀에서 자그맣게 드러내 놓고 계신다.

 내가 바라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 ,

'지도자로서의 예수님'의 큰 모습 만 가지고

예수님을 믿으려 함은

어쩌면 '오류' 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것...

 예수님께서 이땅에

인자로 오시며 겪을 수 밖에 없던

그 처절한 심리적 갈등에 대하여

공감하고 불쌍히 여겨드리고

내 삶에서 내게 부조리하게 달려드는

삶의 어려움들을

그 분의 그러한 갈등에 비추어

같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겸허하게 감사하며 보내야 하겠다.

 

 또한 분노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내적인 문제로 분노하신 것은 아니시다.

그분은 비록 인자의 모습을 지니고

인간의 온전한 감성을 가지고 육화肉化하셨지만

아담의 죄성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시기에 십자가에 어린양으로 달리실 수 있음이다.

그러할 때 그 분의 분노의 방향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 그러기에

내가 분을 낼 때 그 대상과 그 한계를 테두리를 정할 수 있음이다.

 우선,

그 분은 '절대로 ' 하나님과 관계된 일에만 분을 내셨다.

'성전 훼파' 다.

자신의 ego를 건드리는 자에 대하여

피하고 도망치셨고 인내하시고 자제하시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대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것에 만

그것도 가장 적은 횟수의 분노로 대하셨다 .

교육적 차원의 분노이기도 하다.

 

 모든 것..

누구나 다 할 수 있음이 아니다.

나도 십수년 지난 믿음의 시간 후에

내면을 말씀으로 정화하고

성령으로 십자가 앞에 가져올 수 있을 즈음에야

다시한번 말씀으로 이리 인도하심이시다.

 

그 분은 '성전' ,

내 안 영혼에 성령이 들어 앉으실 자리를 더럽히지 말라 하셨다.

그래야 한다.

 

 그 분은 분노를 발하신 후에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   

가르치시었다 .

모범을 보이시었다.

기도하라 하셨다.

금방..

 

모든 인간적 어려움을

다 체휼하신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신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공감되는 연약함을 보이신 후

그 분은 그 모든 것을 이김에는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잊지 않을 것과

기도로만 성전이 깨끗해질 수 있음,

그 기도의 방향이 '용서'가 전제되어야 함을 가르치신다.

 

감사하다 .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안고 품고 구해내는 분이

우주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새삼 주님 예수님이 더 가깝고

더 감사한 아침이다 .

 

귀하신 내 하나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내 하나님.

그 어려운 십자가의 길에

예루살렘이라는 인간적 번영의 환상 앞에선 자들에게

화를 내시고

배고프심을 나타내시고

저주를 하시며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조금은 다양한 모습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그 인간적 고뇌와

우리의 모든 감성을 체휼하시고 느끼고 공감하시며

기도의 길,

용서의 십자가의 온전한 길에 서길 바라시는

안타깝고

죄송하고

감사하며

결의를 다지게 되는 하루 입니다.

주여.

잊지 않게 하소서.

더 주님 안에서 누리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모든 결점과 아픔을 온전히 아시는

내 주님.

주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감사 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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