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의 등을 바라보며(막11:1-11) 본문
지난 토요일
햇빛 찬란한 가운데
조카 결혼식에 가려
식구들 모두 전철역으로 향했다
내 가족이
뿜어내는
밝은 웃음소리가
맑은 대기로 퍼진다
그들의 행복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쫓아가는
내 가슴이
기쁨으로 든든해온다
내 삶
큰 현실적 이룸없어
내세울 것 없고
지루한 듯하지만
예수님의 등을 보고
잠잠히 따르는 자의
고요한 평강이
점차로 크게 느껴지니
참으로
내 삶이 복되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산다는 것.
예루살렘,
내 하늘의 예루살렘성을 향한 길을
예수님과 동행하다가
어느 때 주님이 잠시 멈추어 서시면 같이서있다가
보내시면 잠시 떨어져 가기도 하게 되고
안보내진 사람들은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억지로 몸부림 쳐
주님 앞을 나설 필요도 없고
머리 놓고 살 일도 없다 .
예루살렘이란 공통의 목적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무엇인가 하실 것을 믿는 믿음 만 가지고
중간 중간 인생의 교훈을 통하여
가르치실 것은 배우면 되는 것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보내지는 두 사람,
선택받은 소수
나.
내가 지향하는 이 블로그의 정체성....에 속하여
나를 쓰시겠다하면
예... 하고 순종하여
그냥 가면 되는 길.
그런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루살렘 성에만 가면
성공할 것이라는 내 현실적 기대감과
조금은 이상하게 다르시게도
'나귀새끼' 가져오는 심부름을 시키는
그러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
솔직히 세상적인 눈으로 어이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 즉시 ' 순종하여 이루어지는
그 사실 만을 보고
그 사실에서 하나님의 이 인생에서 역사하시는
놀라우심을 깨닫고 겸허해지는 게
그래서 모든 인생에 대한 '내 자아의 목표'를 내려 놓고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의 속상함 마져
오히려 하나님의 피동적 역동성을 인정하게 되는
그런 체험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진정 선택받은 소수의 되어질 품성이 아닐까 한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
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설령...
보내지지 않고
남아 그들을 기다리는 10명 중에 속해도
그 안에서
예루살렘 성의 환상에도 불구하고
마냥 이해할 수 없이 지루하게 기다리게 되어도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믿고 기다리는 자...
그런 품성을 가지는 게
제자로서의 가져야 할 진정한 품성이 아닌가 싶다.
오늘 주시는 메시지.
살아가며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의 뜻대로 풍성히 주시고
우리도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멋지게
여러가지 일
즉 선교 ,순교, 큰 교회의 건축... 등을 하고 픈,
그래서 번드르르하게 세상을 살아나가다가
죽을 때 수없이 많은 자들의 아쉬움의 눈물을 뒤로하고
하늘 나라 예루살렘 성에서
두팔벌리고 뛰어내려오셔서
천사천군의 호위속에 하나님의 품에 안겨
높은 보좌에 앉혀지는게
어쩌면 우리의 바램일 수 있지만
예수님은
뒤따라 오길 바라시고
가라시면 가고
서라시면 서고
기다리라시면 기다리면서
그 안에서 '움직거리는 ' 자아를
잠잠히 달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그 자체야 말로
진정한 평안이고 기쁨이고 보람이며
가슴설레는 체험임을 깨닫는 영혼이 되길
바래시는 것이 아니실까?
예수님을 믿는 길은
축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반드시 십자가를 동반하는 삶이다.
은혜를 주심은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게 하시기 위함이시라 하시지 않는가?
오늘 말씀은
내 바램을 내려 놓고
주님의 명령만이 진정 기쁨임을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심이시다.
주여.
조용한 지역
미션 병원이 아닌
그러면서 나름 외적으로 풍성한
이곳 , 제게는 '영적애굽의 고센'으로 이해되는 곳에서
벌써 두달째 지나보내고 있습니다.
올때 걱정했던 부분들,
나름 먼저의 병원이 갈등과 생각들이 부딛치는 벅쩍거림은 있었지만
미션 병원의 정체성 안에서
용광로 같이 뜨거운 영적 살아 있음의 역동을 누리다가
이곳에 오면
나른하고 변화없을듯함이 두려웠습니다.
홀로 몸부림 칠 영적 갈등이 힘들 것 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곳 블로그에서 고백하듯
풍성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고요한 정진이 있습니다.
주여.
오늘 말씀의 내용이 그런듯합니다.
예루살렘의 여정,
삶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자의 여정이
그리 풍성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자극이 별로 없는
열두제자의 터벅 걸음이고
그 앞에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따라가는 길이며
한참을 재미없이 가시다가
세워놓고 2명 만 뽑으셔서
겨우 '나귀새끼'를 데려오라시는
힘빠지고 재미없을 듯한 그런 길 말입니다.
주여.
그러나 묵상하며
제 인생,
제 인생여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 풍성한 삶의 의미,
그것은 '예수'께서 저와 동행하시고
저는 앞서가시는 예수님의 등을 잊지 않고 바라보려는
노력을 계속하다가
지치고 힘이 들때 쯤,
주님이 저를 돌아보시며
주하인아 쉬자,
그리고 가서.. 하시는 듯합니다.
그 때 제가 나귀새끼에 이제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보내지 않고 앉아 있음에
지루함에 벌러덩 누워버리거나
보내지지 않고 선택되어지지 않음에 질투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음에도
예수님의 '하심' 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은혜로와 할 수 잇는 자 되게 하소서.
주여.
지금까지 돌아보면
주님이 모두 인도하셨습니다.
오랫만에 같이 내려온 아내와 지난밤 기도전에
마주보고 웃으며 감사하엿던 바입니다.
이제도 제 인간적 눈을 들어
세상을바라보면
아무 기대할게 없는 게 제 인생이고
세상의 돌아감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부림치며
무엇인가 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라시면 가고
서라시면 서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이기뻐하심을 믿고 그리하겠습니다.
주여.
저 뿐아니라
제 자식들
제 아내
제 이웃들..
영적 동지들..
모두 모두 붙들어 주소서.
잡아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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