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의 자리[겔28:1-10] 본문
주님
저는
주님 만 바라봅니다
제 영혼
주님의 자리에
주님 앉으소서
간절히 비옵건데
그 자리
제가 앉으려는
어리석음 만은
막으소서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늘 이렇게 시작하신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나도 그렇게 되길 몸부림을 치며 사모한다.
또,
또,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그것이야 말로
매일 같이 내 영혼 , 내 영혼의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으려하는
'내 자아'를 가장한 사단의 횡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의 주인공인양 착각하고
마음대로 사는 것이야 말로 홀가분 한것인양 착각하게 하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사단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교만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게 하는
아주 크고 강력한 죄성이다.
연휴때 연달아 당직을 섰는데 또 당직이었다.
그래도 '분만의 철'이 아니라서인지 덜 바빠서 버틸만은 햇다.
아침 일곱시 채 못되어 전화가 왔다.
산모 분이 두분이 입원했다.
방금 입원한 두번째 아가 분만 산모의 NST (자궁수축 및 태아 안전 감시 장치 )를 들여다 보니
안좋은 싸인이 그래프로 계속 뜬다.
일단 산소를 주고 링거액을 걸어 놓고 경과를 보기로 하고
산모님 남편을 불러서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실제로 그 싸인은 'monotonus'라는 진단이 붙기 직전의 현상으로
굉장히 위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설명을 하려 하는데 계속 '제동'을 건다.
일단 설명을 듣고 판단하시라 하는 데도
남편 분은 '외래' 진찰 다닐때는 아무 소리 안햇는데 라면서 뭐라신다.
그래서 '현상 만을 설명하는 것이니 다 듣고.. ' 라 하니
' 짜증'을 낸다.
이런 경우가 참 속상하다.
' 현상'..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듣고
생길 수 있는 상황과 향후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판단을 내려도 충분한 것을
무조건 '방어선'을 치고는 '의사끼리 설명이 다르니 과도한 진료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저항을 무조건 하고 본다.
그럴 때마다 난 이 시대의 '불신'의 벽에 대하여 울뚝하고 올라오려 한다.
그래도 꾹 참고 설명하고는
'이것은 위급할 수 있는 일시적 상황일 수 있으니 추후 진행하다가
응급 제왕절개에 대하여 권유할 때 시간 지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라고 한후
내 근무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당직실에 올라왔다.
속이 상한다.
왜 내 속이 '과도'하게 상한가를 가만히 묵상했다.
말씀에 얹어 놓고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으니.. '
울툭 거리던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진다.
난.. 아마도 '그 불신의 시대'라는 말로 정의감 있게 판단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 오랜 상처를 건드리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묵상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난 비슷한 과거의 올라옴을 예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았다.
말씀 앞에 그리하려 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 앞에... '
그리고는 '판단'하려는 내 생각을 오늘 말씀에 맞추어 보았다.
주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수도 없이 말씀을 하시엇다.
판단은 내가 '주님'의 자리에 올라가 앉는 것 아닌가?
오늘 말씀에 두로의 죄는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아
자신의 업적을 자신이 모두 이룬 것으로 교만하게 선포한 죄 아니던가?
나하고 무엇이 다른가?
비록 내 아픔을 마스킹 하기 위한 깊은 동기가 있었지만
타인을 불신의 시대라는 두 단어로 족쇄를 채워버리고
나는 선인인양 착각하고 싶은..
그래서 내 포악을 그들에게 전가 해버리고
내 속상함을 풀어내고 싶은... ..
내 교만은 이 과거의 아픔을 디디고 일어서려는 '교만'이 그 원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을...
이제 주님은 내 생각을 조금더 펼치신다.
그 분의 저항.
예민하신 환우 보호자 분의 실제.
아마도 그 분도 '나'를 매개로 한 어떤 아픔이 자극 받아
예민한 저항을 하신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긍휼하게 '여겨야 할 상황인 것을.. .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과거의 유령들에게 조정당하며 울고 웃는
우스운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이 되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친김에 내 속을 후비는
내 의식 밑의 기억들을 만든 그 분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기도하기로 했다.
잠시 내 마음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제 잠시가 아니고
매사 매일 매시를 그 분께 자리를 내어 드려
온통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마음이 움직이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심령천국'의 삶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성화가 아닌 가 싶다.
비록 그 길이 '좁은 길'이라도 난 가야 한다.
좁은 길의 방향을 이토록 명쾌히 보여주시며
훈련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난 보고 있다.
그게
감사하다.
아침이 향기롭다.
적용
1. 하나님의 자리
내 영혼의 지성소를 주님께 내어 놓는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져 가는 습관의 훈련을 하자
2. 성내지 말자.
화는 '교만'을 자극 받음이다.
정의를 빌미로 한 '판단'의 자리에 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꿰어차려는 사단에 동조한 것이다.
3. 용서하자.
내 과거의 그들.
4. 성경 세장 읽자.
기도
주님.
아침부터 제 약한 부분을 터치하시더니
말씀으로 또 이렇게 잡으십니다.
주님.
주님의 자리에
제가 서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니 자꾸 되풀이 해오는
이 인생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이제라도 간절히 비오니
주님의 자리에 주님 만 앉으시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매일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와
주님 만이 제 아버지이시고 제 판단자이시고
저는 주님의 종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제 영혼을 거스르는 사단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제 마음의 오랫동안 잘못 흘러 되돌리는 힘듦이 있어도
주님의 길이라면
선뜻 따를 수 있는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하소서.
주여.
깨달음이 제 마음의 올바른 흐름으로 자리 잡기에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됨을 알지만
이제 주님의 말씀 앞에 매일 매일 비추고 있으니
더욱 빨리 더욱 확실히 그리되게 하소서.
용서하는 마음 더 크게 키우시고
긍흉히 여기는 마음 넘치게 하시고
제 자신을 더 낮고 겸손히 받아 들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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