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늘 주님 보게하소서[겔28:11-26] 본문
인생에
힘이 부치려할 때
하늘 보게 하소서
괜히도
마음이 높아지려 할때
주님 보게 하소서
매일의 삶 속에서
단 한시라도
내 주님
잊지 않게 하소서
17.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 네가 아름다우므로'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존재.
마음이 교만하여 짐은 웬일인가?
가진게 늘어나고 모든게 잘 풀리는 이유지 않던가?
네가 영화롭다 신다.
영화로운게 죄는 아니다.
부한게 죄는 아니다.
부해지면 '내'가 올라오기 쉬운게 문제이지..
자아가 승해지면 교만해진다.
교만은 '지혜'가 더렵혀짐이다.
물질이나 세상의 번영은 '교만'해지기 쉽게한다.
주여.
저는 너무 부하여 지혜가 더렵혀지도
너무 부족하여 걱정 근심으로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하게 되지 않게 하소서...
26.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부하게 되는 것도
망하여 세상의 조롱이 되는 것도
그런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모두 '주님의 뜻'이다.
주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게 함이다.
그렇다.
인생의 의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너무도 ' 당연하게
만드신 분, 조물주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심이다.
그 분의 만드신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렇지 않고 내 영광, 내 것 , 내 의지, 내 의미.... 내..를 찾아 살기에
모든 관심은 '땅'에 고정되고
이 땅의 이룸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여 살게 되고
그것은 '하나님을 잊음'이 되게 하며
결국에는 '자신'이 자신의 주인되는
'교만'의 형국에 이른다.
교만은 하나님을 모름이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감이다.
그것... 실제로 자신이 자랑하는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니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미련함 아니던가?
죄 아니던가?
불신 아니던가?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불신의 극치'지 않던가?
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레마는 무엇인가?
당연히도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말씀 묵상을 하는 한, 나는 아직은 ... 아직은 이다.. .교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만큼 미련하지는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더 교만하지 못하도록 자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신 듯하다.
그리고, 더욱 깊은 뜻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허락하셨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하루의 어느때..
가끔..
이전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나의 이 어려움'이 답답하여 그지없을 때가 있다.
어째 ..세상에 나혼자 버려진 듯한 '외로움'에 의한 '괴로움'이 엄습하려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또 다시 그 근원적 대상이라 생각되는
'어떤 자'들을 향하여 불뚝..하고 원망이 올라오게도 하기도 한다.
물론, 말씀으로 깨달아 버렸기에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삶을 힘없이 만드는 에너지 손상 ^^; 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주님이 그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 어이없음.. 조차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말씀에 내 태중으로 부터 선택하셨다고 하셧다.
사 46:3-4)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
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그런 분께서 지금의 어려움을 모르실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 내 어려움 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뻐할 ' 이유의 근거가 되지 않은가?
또 그렇다면 흔들릴 일이 없지 않은가?
왜 흔들리는가?
그 이유의 어떠한 것을 알고자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려움은 어려웠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깨달음과 더불어
추후에도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인 동행을 할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야 말로 축복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아직 그 어려움을 떨쳐 버렸을 때의 '힘있음'에 대하여
그리움 내지 부러움이 크다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주님은 내 어릴 적 ,
내가 힘을 쓸 수 없을 만큼 힘이 들때 ,
내 주위에서 날 보고 울고 계셨을 수도 잇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고
더 큰 미래의 내가 될 수 있기에 기다리셨을 뿐이라고...
그게 '진정한 축복'이라면
결론은 다시 ' 땅의 축복'에 대한 생각에 미친다.
아니다.
주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지었음이지
이 땅의 이룸, 얻음을 위하여 나를 지었으심이 아니란 것이 분명하다.
오늘 말씀에도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을 더욱 펼쳐야 한다.
나의 진정한 축복은
' 매일 주님 만을 보고 살다가
이땅에서 주시면 누리고 안주시면
영원 영생의 진정한 삶을 축복으로 주실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이땅.. 길어야 80-90년의 유한한 삶속에서 누릴
썩을 것들하고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축복이다.
정말 어렵다.
알지만, 세상을 도외시 하면 '왜곡된 수도자'요,
그리워 하면서도 누르기에는 이중적 기독교인의 빈약한 생애가 되기 쉽지 않던가?
그러기에 더욱 말씀으로 중심 잡힌
성령의 인도가 필요하다.
잠시 환우가 뜸하던 시간을 이용하여
'방언'으로 기도했다.
소리 덜내고 ...
어제 금요 예배 중 내가 좋아하는 고린도 전서 구절의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라는 데서 자극을 받았다.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성령께서 내 알지 못하는 깊은 부분 까지 하나님께 직고하시는
쉬운 ^^* 기도의 한 방편이다.
그래서 그랬다.
잠시 내 위의 레마의 논리를 근거로 하여
집중했다.
마음이 뻥 뚫어진다.
그렇다.
난... 일상을 살면서 주님을 본다.
주님의 영광...
다른 분들은 다르게 ..
일반 세상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들에게 보편적인 방법으로 드러내게 하시겟지만
난.. 나다.
나의 특별한 점을 이용하여 주님이 영광을 드러내 보이시게 할 것이다.
점심시간.
옆자리에 앉으신 C 샘이 그런다.
'선생님.. 화장실에 걸린 시화 중..자전거... 너무 좋아요..'
어제는 마주친 NP과 닥터 K가
'샘... 전.. 몇번이나 읽고 또 읽었어요.
환우들이 .. 얼마나 감동이겠어요.. '
하나님이 날 보고 어제 오늘 계속 내 전도 방식,
내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사람의 입을 통하여 위로하신다.
그게 바로.. .기도하고 마음이 뻥뚫어진 이후다.
하나님이 날 보고 교만하지 않은
지금의 삶의 태도,
주님을 죽도록 바라보려는 노력 만으로도
네 모든 것을 이루리라. ..신다.
진정 나 ... 오늘 바랄 것이 있다.
내 과거로 부터 오늘 만 보지 않고
미래라 보았자 겨우 눈감을 때까지만으로 고정되지 않고
그 후.........영생까지 펼쳐진 기쁨의 눈을,
믿음의 눈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과정에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되길 원한다.
할 수 있으면 행동도 해낼 능력과
터부의 깨짐도 원한다.
주님.
깨달음 주심 감사합니다.
위의 주신 깨달음, 레마를 통하여
내 일상을 살아나가고
내 일생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 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전 다만 주님의 위안,
그리고 약속하고 예비하신 여러 축복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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