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왕하23:21-30] 본문
부제) 오직 주님을 위하여 허락되진 내 매일을 주께 맡깁니다
내 매일이
하나님 앞의 삶
코람데오의 그것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들이
주님 인식하고 사는 그것이 된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심령 천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라시는
그 근본의 원인.
사랑의 넘치심
긍휼의 폭주하심^^*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심 아닐런가
아
바로 천국이
내 앞에 있는데
왜 아직도 나는 이런가
내 모든것 아시는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내 매일이
오직 주님 바라기의 그것이 될 수 있길
이 아침
깊이 바라본다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너희의 (나의)'
'너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서 사는 삶.
아...
내가
오늘도 또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여호와, 그분
내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살 수 있다고
그러라고
그러함이 어떠한 가 시험해보라 심 처럼 느껴져 온다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 진다.
말씀 하나 하나 들여다 보고
곱씹어 보고 한자 한자 따라하다 보니...
마음이 풀어지고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은 멀어져
멀리서 겨우 들려오는 아이들의 천진한 부대낌 소리 정도로 들린다.
그렇다.
이게 ' 은혜'다.
이게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 앞에 서게 하는 '
이 부족한 주하인이
'내 나름대로 느껴
겨우 표현하여 낼 수 있는
주님 임재감에 대한
아주 작디 작은 묘사'일 뿐이다.
마치 코끼리의 전체 모습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내가 그렇다. 겨우 -
장님 코끼리 만지고 표현해 내는... ^^;
이러함이 확장되고 커져가면
과연 그 기쁨으로 내 마음이 터져나가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거같은
그러한 예감으로 채워지는 것..
주님은 또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로고스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흘러
내 영혼의 '지성소'에 자리 잡으신다.
그냥 ..
'요시아'님을 묵상하려 말씀 앞에서니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하다.
" 주하인아 보라.
네 작은 결심,
어제 말씀대로 산당을 멀리하는 그러함을 기회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늘어나니
'은혜'의 폭이 커지고 깊어지지 않는가?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는 기쁨...
그 정체.. 그 은혜의 어떠함에 대하여 깨닫게 되고
이제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는 것..
그러함이 어떠한 의미인지
말씀하시는 듯 느껴져 온다.
그렇다.
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 앞에서는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 자들.. .
그런 자들에게는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는 '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온 일생을 다 걸어도 되는 깨달음과 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오늘 '요시아' 왕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는 결심에 대하여
저러함이 단지 '어머니 여디다'의 교육의 결과나
착한 심성과 백성들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의 결과로 보기에는
그 오랜 이어짐과 '꾸준함'이 절대로 불가한 것임을
25장에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라는 하나님의 도장찍으심과
더불어 절대로 인간적으로 그 오랜 재위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산당까지 -이 산당의 교묘함, 인간을 파고드는 집요함을 계속 묵상하고 있다.. .어제 나도 산당을 제거하니 하나님이 이리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을 알겠다. 할렐루야 - 제거함의 결과이며
그것은 그 '요시아' 왕이
하나님 앞,
개인의 하나님,
하나님을 위하여 살 체험을 한 왕임을
확신하게 된다.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리고 그러한 '요시아' 왕을 통하여
오늘 허락하신 말씀을 또 듣는다.
' 유월절'을 지키는 삶,
'말씀을 이루려'결심하는 삶이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는 삶의 태도다.
그것.
'나'...
요시아님처럼,
'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는 은혜의 상태'
그 깊은 임재감을 체험한 자다.
문제는
결심이다 .
'마음으로
뜻으로
힘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노력이 부족함이다.
아..
쉽지만 너무도 어려운 일..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 인하여
내 '죄'를 모두 가져가 주시는
그리고 그를 위하여 '성령 보혜사'로 도우시는
내 주 하나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인생의 교묘한 '사단'의 '산당'들은
곳곳에서 날 넘어지게 하려 애쓴다
다행이도
나..
말씀을 근거로
허락하신 거룩한 부담으로
'산당'을 멀리했다.
쉬이 '구독'에 들어가 있는 이 '확증편향'의 오류 , 사단의 유혹들을 멀리하고
'설교'.. 듣고 '찬양'들어가며 '귀향' 했다 .
집으로..ㅎ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의 임재'를
이전보다는 훨씬 맑고 강하게 느끼게 된다.
위의 'AI' DAL.E 3를 이용한 그림이
이 영적 기쁨을
정확히 표현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나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얼른 올려 붙혔다.
각설하고
이제
그동안하고는 조금 다른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지금도 아쉽다.
허전하려 한다 .
이 많은 빈시간 동안 또 무엇을 날 채우지... 하며
일찍 일어난 '주일'.. 휴식시간의 아침 육신을
또 피곤으로 잡아 끌려던 것이
말씀의 은혜로 채워지는 순간
멀리 달아나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행복하다.
정말...
이 주님의 은혜
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느낌으로
이 부족하기 한없는.. 결핍 덩어리 인생-늘 내속에 지배하고 있던 사단의 집요한 망상^^;;;- 의 자책 내지 좌절들이
어느새 '멀~리' 사라져 가게 하신다.
감사하다.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그리고 드디어
'이 감사한 표본'.. 요시아 왕도
인생의 버거운 운명 가운데
'죽임'을 당한다.
주님 앞에 올바로 서려
처절히 몸부림 치며 살아온
'신앙과 모든 것의 모본'이 될 그 분께서도
또 아름답지 못한 - 인간의 눈으로 보아.. 저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 그토록 아름답게 신앙을 유지했다더니 저게 뭐야.. 할 ㅠ.ㅠ- '죽인지라'라는 표현처럼
그렇게 또 인생을 마무리 했다.
하나 더 깨닫게 하신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어차피 이 인생,
그 어떠함이
하나님의 뜻과는 그리 크게 상관없다.
다윗도 손발이 차가워 죽어갔고
야곱도 뒷방늙은이, 사랑하는 요셉 아들을 잃어 절망하는 노년을 보냈다.
.. 누구라도 이 인생은
반드시 '끝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
예수께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다.
우리도 그렇다.
세상은 어차피 '기후 변화'.. AI.,,들로
인간들의 세상이 지옥도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 중
'미국행 비행기 '내 '성별 조사서에
성별이 '남녀'를 구분함을 넘어
4가지 '성별'로 구분했다함을 듣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함처럼
이제는 세상은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수준에 있다.
그리고 .. 말씀처럼
훌륭한 요시아
멋진 임종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다시금 확인 시키신다.
그냥.. '말씀' 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려 하는 자'..
그 옳은 인생 방향..
그러함을 같이 하시는 '하나님의 에너지'의 보충,
우리네 인생의 목적이
'우리네 기쁨'.. 우리네 만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시고
'오직 하나님을 목적으로 사는 자의 허락받은 기쁨'으로 사는 삶이
그리고 '영생'의 나머지 진짜 기쁨은
주께서 알아서 결정해주심 아니시던가?
그거다.
할렐루야 주님.
어제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주말 농부의 본분을 마치고
올라왔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근거로
조금의 '유혹'도 느끼지 않고
'ㅇㅌㅂ'를 멀리하는 '산당제거'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시아'님의
'네 하나님 여호와 앞' 신앙
'내 하나님 여호와 임재감'으로 이어지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 십자가 앞의 삶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인생은
사단이 '억울하다'고 귀에 넣어주는 말과는 하등상관없이
주님의 영광,
주님의 원하심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그런 시간들이며
그러함을 통하여
주님 앞 삶을 살다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성장의 드라마를
온통 주님께 올려드림으로
저 천국 영생의 삶의 결정 받는
그러한 과정이라 다시금 확연히 깨달아 지게 하시어서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시대,
기후 대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계시록적'.. 7년 대환란 전조시대의 이시간에
얽혀있고 본질적으로 다가오는
이 두려움에 대하여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라는
막연한 기대와 실제의 괴리 사이에서 겪을
괜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하여 조차
'요시아님의 마지막'을 묵상하며
이제 그마져 내려 놓으라심으로 느껴져 그리합니다 .
내 모든것
내 가진 그 어떤것
나.. 와 연관된 그 모든 이땅의 소유와 위치..
다 주님의 뜻에 따라 맡기려 하니
주여.. 어제도 그랬고 이전에도 수없이 많이 그러셨듯,
말씀이 있으시니
그대로 제 마음에 틀이 되어
'영적 성장의 또다른 단초'가 되도록 하소서.
나머지 . .모든 것..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맡깁니다.
주여.
홀로 영광받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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