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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깨야할 내 삶의 산당 산당 산당 들[왕하23:1-20] 본문

구약 QT

당장 깨야할 내 삶의 산당 산당 산당 들[왕하23:1-20]

주하인 2024. 10. 12. 07:55

부제) 따라야만 할 언약 말씀 순종

(주님 안, 주님나라를 가로막는 일상의 산당들 by DAL.E 3)

너무도 달콤한 유혹들

조금의 힘을 안써도 얻어지는 쾌감들

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절망 가운데

그래도 나를 붙들어 살게 한듯한

죄인듯 죄 아닌듯 혼란케 하는

도피성의 죄의 유형들....

 

그리하여 마침내

기쁨 중에도 가장 큰 기쁨

행복 중에서도 가장 본질의 행복

그토록 갈구하여오던

평강, 평안 중에서도 가장 크신

우리 주 안의 거함을 잊게 만드는

이 산당의 죄들..

 

이 쉬우면서 꼭 필요할 것 같아

훨씬도 전에 주님 은혜로 눈을 뜬 자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장님 지팡이 같은 이 산당의 죄들을 

주여

오늘은 꼭 버리게 하소서

 

아.. 

주여

오늘 만이 아니고 

오늘이후로 과감히 다 정리케 하소서.

요시아님의 결단처럼

그 분의 말씀앞 경건한 언약실천처럼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이제.. 

곧 마주뵈어야할 주님 앞에

더 이상의 '산당의 죄'로

얼굴들지 못할 일 없는

성장한 영혼이 되게 하소서

 

이 깨달음

확실한 영혼의 인식과 받아들임으로

더이상 이 지저분한 산당에 눈돌릴 일

전혀 없게 도우소서.

내 주 예수시여

성령님이셔

하나님이시여

 

 

3ㄴ3누3눈3누3ㄴ.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요시아 왕이 

'단 위에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웠다 .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자" 고 선언했다. 

'언약을 세울'것

그래서 '말씀을 이루'게 할 것을 선언했으며

'그 언약'을 따르기로 선언했다. 

 

 그게 모두 '여호와 성전'의 보수 중 발견된

'말씀'이 담긴 책을 발견함으로 시작되었다. 

 

 

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당연하지만, 

그 개혁은 엄하고 대단하고 정밀하고 집요했다 .

 

그런데.. 그 내용이 대부분

'산당'의 정리다. 

'산당, 산당 , 산당, 산당들...', '산당의 제사장들' .. 이다.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고

그 힘겨운 개혁을 아주 잘하고 있다. 

그 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토록 오랫동안 수대에 걸친 선조 왕들과 국민들이 해내지 못하던 것

모두 같이 '결심하고 해냈다'

 

 그러한 정체, 

그 대상이 '산당'이다. 

 

 우리는 모두 그 어려운 결심을 다 잘안다. 

위대하다. 

정말.. 

 

그런데.. '그 산당'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코 하나님께서 그리도 싫어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저리 정리하는 게 당연히도 맞음을 알면서도

과연 무엇이길래 저렇게도 오랜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

심지어는 '수많은 , 하나님 앞에 정직했던 왕'들 조차

완전 척결하지 못하고

일부 뉘앙스는 

하나님께서도 '어쩔수 없이.. '약간은 이해하고 봐주시는

아니..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지만

더 시급한 '다른 죄'들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듯한 

하나님의 용인, 아니 묵인하에 

약간은 참아주시는 그런 뉘앙스의 '죄'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산당의 죄'는 

반드시 벗겨내어버려야 

그것도 '완전 척결'해야할 죄가 맞음이며

그 대상이 '다른 나라'를 맞아 전쟁을 하거나

굉장한 고통을 눈앞에서 마주해야할 '두려움' .. 그러한 것들은 아니나

정말로 질기고 오래되어

익숙하고 벗어내기 힘든.. 

달콤한 유혹, 질기고 더러운 유혹.. 

그래서 마침내 '주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뺏아가는..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을 잊게 만드는

그런 느낌의 죄악이 

'산당'이다. 

 

 얼마전 산당에 대하여

정리한 것이 있어 옮겨 붙혀 놓았다. 

다시.. 아래에.. ^^;

 

아침 밭, 조금 베어내 말리고 있는 들깨들이 보인다 ^^*
해뜨니 조금 더 선명히 보이네 ^^* ,지난 시간 땀의 결과 물,허락되어진 증거들

  

 나.

왜 없겠는가?

너무도 많다 .

 

 '하나님 안의 그 기쁘고 감사한 평안함, 기쁨 , 감사함'.. 

그때문에 

나름 '주 안의 정직'함, '의'로 인정을 받을 만함을 깨닫고

그러함으로 인하여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는 

오직 유일한 이유이자 동기가 되어가고 있는데... 

하지만, 그 감사함, 그 놀라운 주님 안에 거함을 

철저히도 막아서는 

죄인듯 아닌듯.. 

누가 그마져 '죄'라면 미쳤다할까 두려워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죄'들.. .

작은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들의 내 관심을 

아직도 붙드는 것들.. 

그 '산당'들에 대하여

오늘은 

요시아님의 

별거 아닌 것들인 것에 대하여

"너무 과하게 선언하고 '언약'을 들먹이는게 아냐?

거기에 무슨 위대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저리 ..#$%^&*(),,," 하며

비아냥 대는 소리들이 들리는 듯하지만

막상 벗겨 내려니 

벗겨낼 것들이 계속 나오는 '저 산당들'.. 

그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아 

수 십년, 수백 수천년을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죄들,

결국 하나님 앞에 더 다가기 위하여

성장하여 

주님께서 마침내 기뻐하실 그 확실한 결단이 

바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내게 전해지는 '요시아님의 결단'.. 이고

내가 해야할 결단인 거 같다. 

 

 아.. 

그런 거.. 

너무 오래된 거 있다. 

 안목의 정욕,

확정편향

이 지루하고 어려운 세상에

그래도 '시간 때우기' 로 의지해오는 

죄아닌 듯한 ㅇㅌㅂ, ㅇ화... 말이다 .

거기에 '주님은 아셔... 내 어쩔 수 없는 이 생각의 허락되어진 오류, 도피성 죄'말야..." 하면서 

지금껏 붙들고 있는 '장님 지팡이'의 'ㅁㅇ', 'ㅇ망' '어색함'...........말이다. 

 

주님은 오늘 '결단'을 원하신다.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길 말이다. 

 

그래야 한다 

 

 

주님.

오늘은 허락되어진 '흐름' 가운데 ^^*

들깨 추수를 위하여 '캠핑'겸 '밭'에 나와 맞이한 아침입니다. 

 

주여.

하루 종일 바쁘게 어제도 보내고 

저녁에 내 그리도 자유로와하는 '루프탑' 안에서 잠자면서

또 'ㅇㅌㅂ'를 매몰되어 잠들었습니다. 

그 시간에 더 기도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주님 아시오매

이상히도 힘듭니다. 

이 영적 거부들.. 

붙드는 '산당의 죄'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솔직히 '주님 안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면서'도 

더 기도하고 

항상기도하기를 막아서는

'강력한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게 '산당'입니다. 

머리를 멍하게 하고

주님 눈감고 기도하려면 마구 빙빙 도는 생각의 떠돎.. 

그 일단의 이유가 

제게는 'ㅇㅌㅂ' '영ㅎ'입니다. 

막아주소서.

오늘.. 빈시간이 많을 것을

더 많은 기도와 

주님 임재에 대한 사모로 보내길 원합니다. 

 

과감히 잘라

더 이상 '산당 ㅇㅌㅂ'근처에 가지도 못하게 하소서

오직 '찬양' 이외

다른 쪽으로 이용되지 못하게 하소서.

더 기도하여 

더 깊이 주님을 만나야 하는데

기도할 때 뵈지 않으시는 주님 얼굴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돌려 하는 

이 '악함'이 저를 자꾸 산당에 머무는 그리움으로 이끄는 듯합니다. 

제 그러함을 넘어서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항상 

주님의 임재감을 느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 갈증에 대하여

우상, 산당으로 대치하고 픈 유혹을

오늘은 더 깊은 성령의 임재 체험으로 

더 절 붙들어 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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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이 왜 그리 끊기 어려운 죄 였을까?

Copilot 답)

구약시대에 '산당'은 주로 높은 언덕이나 산 위에 세워진 제단으로,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매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1. **전통과 문화**: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제사 장소였습니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제사 장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¹.

2. **접근성**: 산당은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중앙 성소가 없었기 때문에, 산당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편리한 장소였습니다².

3. **종교적 혼합주의**: 산당에서 드리는 제사는 종종 가나안의 우상 숭배와 혼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도 다른 신들을 섬기려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혼합주의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이었지만, 많은 왕들이 이를 철저히 금지하지 못했습니다³.

4. **정치적 이유**: 일부 왕들은 산당을 철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산당을 철거하면 백성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종종 산당을 그대로 두는 선택을 했습니다³.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많은 왕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관습을 버리지 못했고, 이는 결국 하나님의 실망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산당에서의 제사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주제에 대해 알고 싶으신가요?

¹: [구약의 제사와 상징적 의미](https://m.blog.naver.com/lysby532/222042111054)
²: [구약의 제사 - 성경 상식](https://watv.org/ko/bible_word/sacrifices-in-old-testament/)
³: [구약의 제사 종류와 제사방법](https://m.blog.naver.com/hanansk/2221062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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