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은 왜[수7:16-26] 본문
16.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온 힘을 다해 , 온정성으로
자신의 죄가 아닌 아간의 죄 때문에
밤이 늦도록 회개의 비통한 기도를 하던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아침 일찍이 ' 일어났다.
아침 일찍이.. 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나.
자주 저런 체험을 한다.
마음이 곤죽 박죽이면서도
그 것을 누르고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할 때마다 (정말.. 마다..다. ^^*)
주님께서 은혜로 내 심사를 기쁘게 만들어 주시는 경험을 한다.
그러고 나면
그 상황에 상관없이
아침이 상쾌하다.
아니면 아침에 불안할 때, 힘들 때
잠시 기도하면 그리된다.
나도 모르게 '아침이 일찍이..'
내 인간적 생각은 나를 누르나
하나님의 생각은 나를 힘있게 하신다.
인간적 생각은 깊은 밤을 원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침이 밝음'이다.
26.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무서운 이야기가 많다.
특히 구약에 그렇다.
요새는 '죄'로 생각지도 않는 ^^;;;; 물건 슬쩍 한 것을 가지고
이렇듯 요란히 ^^;; - 인간들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 것을 요란하다고 표현하고들 있다. -
재를 뿌리고.. 회개하고.. 나서는
무섭게 '죄를 다스린다'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오늘 구절도 그렇다.
산채로 죽이고
'아골'골짜기라는 무서움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리듯
죄를 응징하신다.
이것.
하나님은 혹여 무섭기만 한 분...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다.
어떤 이유를 대도..
우리 바램은
부디 인간적이고
서로 살을 부비대면서
잘못이 있어도 모두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들의 죄는 그들의 문제라면서
옳고 그름을 따질 것도 없이 그냥 그냥 묻어 갔으면 좋겠다.
'소통'이라는 이름하에 서로를 반기면서..
그런 명분이 '포스트 모더니즘'이고
극단적인 결과가 예수님까지도 그냥 좋은 것을 위한 한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다원주의이다.
그런데 , 그렇게 편하고 좋으니 세상이 행복한가?
세상이 꽃잎 뿌려지고 향기 은은한 유토피아 인가?
아니다.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행동은 극을 달린다.
환경을 마구 파괴하고
서로서로 극단의 아픔을 주고 받는다.
하루 눈뜨고 신문 지상을 들여다 보면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와 덮어버릴 일들이 다반사다.
사회면 말고..
정치면을 보아도.. 어이 어른이 되어서 저럴 수 있는가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종교면을 보면 더하다.
'존경을 받아온 큰 목회자'들이 한없이 구렁텅이 속에 밀려들어가는 것들을 본다.
.........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더 이상' 그들을 제재할 어떤 수단이 없다는 것.
큰 위치에 있는 분들은
그들이 벌써 하나님의 위치까지 올라가고 있는 듯,
말 한마디가 법처럼....
'사회면'의 벌어지는 일들의 기괴망측함
'연예면'의 마구 벗어 버리기 경쟁의 엉터리,
국제 사회면의 각국 리더들의 부끄러워 하지 않는 요상한 모양새는
수십년을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하고 상상해보지 못하던 일 투성이다. ㅜ.ㅜ';;
세상이 다 그렇다.
다 미쳐 돌아간다.
그것.
모두 옳아서 그렇다.
모두 옳으니 모두 '미쳐간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눈과 인간의 눈으로 대비되어 바라볼때".. 라는 주제가
머리 속에 금방 떠오른다.
나.
어떤가?
아침에 눈뜨면
고민과 기쁨
갈등과 평안...이 교차한다.
그 비율이 점차로 후자쪽으로 이동하는 게 많아지지만.. ^^*
그것.
말씀을 붙드는 시간이 높아져 간다는 이야기다.
'아침에 일찍이'라는 표현처럼..
다시 말하면
인간적 생각들이 날 사로잡도록 그냥 편안히 두면..난 불안해지고 어두워 지려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면 금방 내 전신에 힘이 돈다.
그렇다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지 않는가?
맞다.
맞는데 '힘이 든다.'
아직도..
아예.. 고민도 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십여년의 시간동안
하나님 말씀을 레마로 받고
그 레마를 일상에 적용시키는 훈련을 해왔다.
그래서 지금은 이전의 나로서는 생각하기도 힘들 만큼
생각이 변화되고 나아졌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선택'하기에
잡아다니는 연민의 감정, 무기력의 감상들이 날 그만두지 않는단 것이다.
그냥 그냥 편하게 대~충 살고픈 유혹이 날 잡는다.
거기에 오늘 묵상의 '아골 골짜기 ' 장면 같은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솔직히 피해가고 싶은 유혹도 든다.
뜻은 안다.
'죄'를 온전히 단죄함.
그리고 정결한 영혼으로 새롭게 시작함.
순종하는 자의 축복.
죄짓는 자의 암울한 결과.
............
그러함에도 우리의 '죄'의 꼬리는 길기도 긴가
저러하신 단죄에 아픈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저런 무서운 장면을 '성경'에 남겨놓으셨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의 정서에 맞도록
조금 강도를 조절 하시거나
더 아름다운 시로서 상징 만 하시지....
하나님의 그 크고 귀한 뜻이야
우리 인간의 머리로 어찌 알까?
문제는 알려고 하는 인간들의 생각이야 말로 엉터리 같은 발상이 아닌가?
하나님의 뜻을 모두 같이 알게 되면
그것이야 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속의 그런 오합지졸 신이되지 않겠는가?
현대의 인간들.
물질문명이 발달 (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과도히 소모하여 만들어진 모래 탑' !!) 하니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 주장하는
그 논리 자체야 말로 진정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래..설령 다 알아져 봤자 무엇하겠는가?
이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의 혼란'은 누가 다스리겠는가?
이 가늠할 수 없는 '평안'과 '평강'의 기쁨은 과연 누가 주겠는가?
이 목적 없는 삶의 궁극은?
왜 사는가?
이 어이없는 비합리의 세상은 왜 그냥 이어져야 하는가?
.............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내 머리속을 스치는 해결 불가능한 생각들의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 의 선'을 위하여 그러하셨다.
'선'이라함은 좋은 것이다.
문제는 '좋은' 것을 이 땅위에 국한시켜 바라보면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것 뿐이고
그러다가 지쳐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미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 것이고
어쩌면
그러한 것 마져 다.. 허락하심으로
그 중에서 '선택'된 '소수' ... 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을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장치'...
그렇다.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는가?
난 내 인생을 돌아보면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금의 기독교인이 되고서야
'인생이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연단과정이고
그 과정을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행 길'이란 확신이 들면서
매일 말씀으로 지도 받고
말씀을 선택하는 '약간의 수고'를 통해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지는
근육의 상쾌함과 심적 평안함으로 인도하시어
주님이 이끄시는 인생의 여정을 이루어 내가는 것으로 이해되어
세상의 풍파와
거칠고 어두운 세태의 변화에도
그리 흔들림이 덜한
평안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어 있다.
아침.
자잔한 자극들이 나의 얼굴을 굳히려 한다 .
그때에 다시 어두운 마음,
연민의 마음이 또 옛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하나님은 '왜'
지금의 현상들을 허락하셨는가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허락하신다.
그러시면서
미리 제시하시는 것은
'여호수아'의 하나님을 깊이 만난 후의 아침의 평안이다.
그렇다.
잘 모른다.
왜 .. 어떻게... 모두..
하지만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다시한번 믿고
모든 생각과 어려움과 번민을 내려 놓기로 한다.
마음이 조금 낫다.
하나님.
토요일입니다.
감기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자잔한 일들이 제 마음 한켠에 부딛히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 보니
여호수아님의 힘있는 아침이 보입니다.
여러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이
하나님의 거대하신 뜻 가운데 있음을 이해함으로 받아 들여집니다.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저를 포함한
이 작은 땅덩어리에 거하는
어이없는 인간들의 주인없는 듯한 교만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부모 없이 홀로 태어난 듯
자신들끼리의 소통 만을 주장하고
심지어는 부모마져 마음대로 선택하는 듯,
그게 자유인듯 어이없는 세상의 추악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부디 하나님의 오늘 보여주신 분노가
이들에게 내려지지 않도록 어서어서 회개하게 하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눈을 뜨고 주님 만 바라보려 하오나
세상의 풍파가 너무도 큽니다.
저의 흔들려 왔던 과거의 버릇이 아직도 잔존하여
조금의 흔들림에도 순간 무기력하려 합니다.
주여.
붙드소서.
여호수아의 아침의 일찍을 저도 아오니
주여 매사에 붙드소서.
주님.
홀로깨어서라도 세상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확신에 차게 하소서.
저들의 너무나도 많은 의혹의 공격으로 인하여
자칫 흐려질까 두렵습니다.
주여.
매일 깨어 있게 하시오되
저로 너무 외롭지는 않게 하소서.
제가 스스로 제자신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주님 허락하신 동역자들을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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