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은 무조건 선이시다(왕하14:17-29)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2 Kings )
폭우 속에서도
짙은 어둠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도
주님은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발등의 등불처럼 도우시고
제 길의 빛으로 밝히시며
빗 속의 우산처럼
저를 보호해 주십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주님은 무조건 선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살아계심과
주님의 한결같으신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러함을 깨닫게 하심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내 주여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 열조와 함께 다윗성에 장사하니라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부분이 있던
아마샤는
이처럼 그의 남은 교만으로 인하여 인지...
아무래도 '왕'으로서의 큰 위치 탓인지
비참한 최후를 허락하셨다.
주님께서...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악한' 여로보암은
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오히려 큰 축복을 허락하신다.
솔로몬 이후의 최고.......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그 이유가 그의 잘난 탓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악한자.. 아주 악한 자다.
하나님 보시기엔...
단지 , 그가 선정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웁도록 하시는 뜻이시다.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 이었더라
또한, 이스라엘을 없애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기에 그러셨다.
다른 왕을 통하여서 함이
보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덜 혼란 스럽겠지만
주님은 그 악한 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먹이시니
하나님의 뜻은 참 인간으로서는 갸름하기 힘들다.
그럭저럭 괜찮은 아마샤는 비참하고
아주 쓸데 없는 여로보암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대 부흥한다.
주님은 그렇게 세상에 역사하셨다.
이것을 보고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지켜보며
마치, 주님이 살아계시지 않는가 헷갈릴 정도로
인생이 우리의 생각, 권선징악 적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보는 때랑
어찌 그리 많이 닮아 있는 지 당혹스럽다.
그렇다.
일단 버려야 될 것,
오늘 나에게 주님이 다시한번 확인시키시고 싶으신 것이 이것인 듯하다.
'난 이정도 했는데 이정도는 축복하시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다.
또한 '저들은 저렇게 악하게 살았는데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는
헛된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 부족한 지력에 따라 함부로
기뻐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방정스럽게 칭송하고
주지 않으심에 대하여
함부로 '인간의 정의' 차원에서 그 분을 원망하고 단정하려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불순종', 아니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내 영혼의 가벼움 아니던가?
실로 모든게 주님의 뜻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 만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내가 마땅히 할 일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가?
어떤 때 고난의 깊은 과정 중에 있을 때 내 영혼을 파고 드는
사단의 의혹을 어찌 극복할 수 있던가?
가벼히 날 들 뜨게 하다가 축복이라 생각되던 게 사라질 때 다가오는
실망감은 또 어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은 무조건 선하심' 을 인정하여야 만 한다.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분의 선하신 뜻이 있으심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그 진리를 인정할 때 내 흔들림은 멈춘다.
난... 말씀으로 매일 그 사실을 접하고 알아간다.
참 감사하다.
그 선하심의 이유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 조금 눈치 챌 수 있다
일단, 그들의 영적 상황과 상관없는 극단적 반대현상이 나온 이유는
그들이 남들을 파탄이나 축복으로 이끌 수 있는 위치,
즉 왕이란 것이다.
달란트가 크다는 것은 그 만큼 책임이 크다는 이야기다.
아마샤 같은 나.
비록 그런 위치에 비교할 바가 아니기에
주님은 나에게 적당한 정도의 축복을 허락은 하셨지만
이처럼 말씀을 통하여
영혼에 쥐꼬리 만큼 자리잡고 있는 '교만' ,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마져 받아 들이지 않으려는 일부의 '아집'을
온전히 파내어 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렇다.
난... 조금 더 전진해야 한다.
지금껏 돌아보면 아주 많은 부분 변했다.
그러나 멈추면 안된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신앙연륜이 늘어감은 그 만큼 책임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세상을 향해 이처럼 외치고 있는 시간이 늘어감과 나이가 들어감은
그만큼 더 조심을 해야하는 달란트의 커짐을 의미하지 않던가?
또 ..
주님은 주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심지어는 여로보암 같은 자들을 통해서도 그러하신다.
그러한 축복은 그를 위함이 아니고 그를 통하여
그에 연관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심이다.
내 거하는 장소.
내 거하는 직장.
나를 이곳에 있게 하는 모든 것이
그곳을 운영하는 리더 탓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하셔서 축복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그것을 믿으면 삶이 단단해진다.
누구의 눈치를 볼일이 없다.
내가 있음으로 이 곳이 축복을 받게 된다.
그게 주님이 나에게 알게 하실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신다.
적용
1.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자
삶의 현상을 가지고 일희 일비할 이유가 없다.
모두 하나님의 뜻이시다.
2. 하나님은 무조건 선이시다.
여로보암을 통해서도 백성들을 먹여 살리신다.
믿는 아마샤를 고난에 처하게 하심은 그의 영혼이 순전해지길 바라시는 뜻이시다.
그가 결국 듣지 못해 고난 가운데 죽은 것이시다.
3. 더욱 정결해지길 선택하자.
아마샤가 더욱 정결해져 겸손해지려 노력했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귀를 열었다면 '축복'은
여로보암의 그것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 생각이든다.
아쉽다.
나.
오늘 이후 더욱 영적 성결을 위해 노력하자.
그것이 그나라를 간구한 후 받는 축복의 의미다.
4. 주님은 절대로 변개치 않으신다.
믿자.
5. 악한 자의 번영에 흔들릴 일 없다.
그를 통하여 주님의 자손을 부흥시킬 도구일 뿐이다.
그들은 영생이 없다.
오늘의 고난 받는 내가 훨씬 훨씬 더 다행이다.
난 영생의 약속이 있다.
6. 열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큼은 어쩌면 내 달란트가
커져서 임일 수도 있다.
고난을 감사할 이유 중 하나다.
7. 성경 세장 읽자.
기도
주님.
세상을 살아가며 자칫 자칫 흔들리며
알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면
마치 주님이 안계신듯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주님은 날 보고 계시고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이끄실 것임을
오늘 묵상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하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마치 아마샤 같이 딱딱하게 굳어 교만과 열등감 사이를
하루에도 수차례씩 드나들며 영혼이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
혼란했던 저를
이처럼 평안과 평강가운데 유지시키고
감사의 삶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그 세심하심과
골수와 관절을 찌르듯 내 영혼을 파고들어
그 온전한 하나님의 뜻가운데 매일 말씀으로 날 변화시키는
그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샤 같은 제가
아마샤와 다른 운명을 허락받았음을
묵상하며 진정 감사함으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굳은 부분을
더 열심히 주님 말씀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 성령으로 절 인도하소서.
십자가 예수 님 앞에 제 속의 족한 이론들을 사로잡아 가소서.
주님 보혈로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온전한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인생의 축복도 허락하소서..
저를 위함보다 제 부모님을 위하고
아내와 제 자식들의 모본을 위해서도 주님,
저 그리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 나라 사모하는 만큼 이땅의 축복도 허락하소서.
그리고 다시금 간구할 것은
세상의 상황에 상관없이 모두 주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그것, 그따위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제 영혼의 순한 흐름을 주소서.
제 걸리는 부분들.. 이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위해서라도
저를 보고 주님이 살아계심을 남들이 알 수 있도록
회복시키소서.
주님.. 그게 아니시고 그것이
아마샤의 아픔처럼 저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고
아직 제가 부족해서 도웁는 보철 같은 도구이라면
주여 그렇다고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기쁨으로 받아들일 제 영혼의 깨달음을 주소서.
주님.
그래도 주님은 선이심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주여.
사랑하나이다.
제가 매일매일 깨달아 아주 조금씩,
정말 주님께 죄송한 느린 속도이지만 변하게 해주시는
그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누가
저같은 행운을 얻을 수 있는 지요.
두손 높이 들어 감사드립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제 감사를 늘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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