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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왕상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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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왕상1:1-7]

주하인 2017. 6. 15. 08:55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면

무조건 순종해야 할 당위성을 안다.

그 놀라운 은혜의 절절함과 날아갈 듯한 개운한 기쁨을

우리

사모하는 열렬한 소수들... 은 안다.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자들은 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님을 떠나지 못한다.

이 절절한 혼돈의 시대에도 주님 만을 바라볼 이유가 된다.


 솔직히 그러지 못하는 분들이 불쌍하다... 많이... 죄송하지만...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가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련.

작금의 지구 환경 혼란으로 우리 나라에도 3년 넘게 봄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벼 모내기 포기 농가 까지 있다하니...

이 '지구적 죄'를 어찌할까?


생각하면 답답하고 어지러우려 하고 마음이 불안하려 한다.


그런데

엘리야에게는 '피할 길'을 얘기하신다.

다행이다.

 그러나 또 그런데..다.

그리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내가 입장을 바꿔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가뭄'을 피하는 것은 감사하고 고마운일이나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아침마다 까마귀떼가 ,

또 , 저녁에도 까마귀떼가 ...아이구.. 그 조그만 입으로 먹여 살리려면 까맣게...내려 앉을 것인데

아무리 '까마귀'를 길조로 보는 나라들이 있는 것을 감안해도 그 풍경은 그리 달갑지 않고

또, 그들이 물어오는 떡은 '입맛에 맛는 따끈따끈하고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 맞을 것이며

고기는 종류 미상의 사체에서 뜯어 가져오는 .. 부위도 불명한 .. 어쩌면 썩은 고기...ㅠ.ㅠ;; 일 것을 추정하면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가장 좋은 것 주실것을 앎에도 잠깐 상상에 그랬다는 이야기다..ㅎ )

 '가뭄'을 피하게 하심은 감사하지만...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거기에 '시내도 말랐다'


아..

하나님의 약속.

'시냇물을 먹게 하시겠다'셨는데.. 말랐단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감 속에 이루어진 약속인데

어찌... 이해해야 할까?

 물론 다음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묵상을 하면서

'가뭄'에 대하여 일단 마음이 쏠린다.

이 '영적인 기갈'의 시대,

이 실제적 '대 가뭄' 및 환경재앙.. 의 종말론적 기갈의 시대에

그를 유발하는 우리의 '죄',

그 죄의 증상으로 '구약'시대와 너무도 똑~같은 '죄'의 현상들로

하나님이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그 분의 말씀은 한낱 조롱거리 처럼 느껴지며

동성애, 인륜파괴,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생명까지 건드리는 파괴적 현상의 만연과

그에 대한 '경계심' 조차 무너지는 ( 우주적 원리 까지 파괴되어도 당연시 되는... 이... @@#$%^&*)

이 대 혼돈의 시대에 이제 경험 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허락하신 계시록적 재앙이 세상에

오늘 묵상의 가뭄처럼 임할 것을 묵상하게 된다 .

많이 두렵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담담하다.

그 담담이 망각이 아니다.

환란 날에 '피할 길' ,

오늘 엘리야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 같은 피할 길을

어느 순간엔가 믿어져서 그렇다 .


 하지만 .. 위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묵상해도

결국 피할 길도 .. 그리 녹록한 게 아니긴 할 것이고

어쩌면 그나마 멈추지 않고 보좌에서 흘러나올 생수의 강같은 시냇물을 생각했지만

그마져도 마른다고 나오시니

하나님 약속의말씀이 저렇듯 달라지기 까지 힐 가능성에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려 한다.


그러다 불현 듯 깨달아 졌다 .

부족한 가운데 '감사' ,

뜨거운 가운데 오히려 '나른한 평온함',

불같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의 눈물'.. 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며 같은 유형의 체험을 공유하며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나는

짧다면 짧은 주님 영접후의 은혜의 시간에

차곡차곡 내 영혼의 어디엔가 '경험'으로 쌓아 놓아지고 있다.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은

꼭 물질이나 환경이 이전과 같이.. 아니 더 풍족히 변하게 하셔서

나를 축복하심이 아니시고

어쩌면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오늘 묵상에서 보듯... 때로는 다소 생경한 경우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

아..

솔직히 '최저'의 조건으로 '죄고의 만족'을 주시는 게 .ㅎ.ㅎ.. 그 분 스타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위에 고백했지만

난.. 다른 은혜를 깊이 체험한 분들은 마찬가지시겠지만

오히려 더 기쁘고 감사한...

그것을 '은혜'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며 같은 유형의 체험을 공유하며

이 시간 (2017/0/15  10:45)여기까지 .. 하나님의 역사들이 이어지도록 하게되고 있지 않던가?


 무엇인가?

내게 주시려는 레마는..?


습관적 불안에 오래 길들여 왔던 '주하인'

예수님 영접하고 가장 좋은게 ' 쉴만한 물가.. 내가 쉬게 하리라..' 였다.

그리 평안하고 샬롬의 나라를 체험하고 보장 받는게 진정 기뻤었으나

세상의 죄, 이 번연한 지옥도 같은 죄들,

내 오래 각인되어왔던 행동의 장애.. 들로 인한 '두려움'이 아직도

바늘로 찌르듯 불안하게 다가오는 것을 아시며

주님께서 '피할 길'을 말씀하시고 (할렐루야.. 다.. )

그러함에도 가슴 깊이 무게로 남았던 저러한

온전하지 못한 '피할 길'에 대한 아쉬움, 무거움이

가만히 묵상해보면

시냇가의 까마귀떼와 , 시냇물과 물어온 고기의 정체의 불만감 이었지만

실은 가만히 보면

그 안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분명코... 확실히.. 임하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전율'과 '감동'의 시간이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게 지속되고 증폭되게 될 것이다.

' 하나님 나라' ..

이게 '그날을 감하리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모델로 보이시는 것 아니실까 싶었다.


그렇다면..

다시 내 은혜의 시간들을 돌아보자.

돌아보아도 그 절절한 어려움의 시간들에 '감사함'으로 더 감동하며 살아오게 되었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배워보지도 못한 '사진'과 '글'과'작품'들이 나와 많은 '역사'들이 일어났으며

50살 넘은 내 육신의 머리에서 '논문'이 몇편이나 나오고

찬양리더로 많은 은혜와 치유의 경험도 되었으며

새로운 Minimally Invasive Operation(최소침습수술) 인 단일절개 복강경이 개발되고

체형 (body shape)이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

감수성이 개발되고 영감이 있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현실적 변화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이거.. 되풀이 하는 자랑이지만

그 자랑이 그 메마른 가뭄의 시간에 허락하신

주님의 성령이 베푸신 은혜의 '시냇물'이고 '영적 음식물'로

내 영혼과 육신에 긍정적 변화들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앞으로 있을 어떤 일도

'불안'이나 '불만족' 보다는 오히려 '감사'할 조건이 될 것이 분명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


그 '감사할 변화'들의 '본질'이 이렇다 .

상황이나 현실적 조건은 안변해도

내 영혼의 상태가 변하고

내 마음이 변화가 되어

감사함에 이르게 되고

그 가묾에도

어떠한 다른 일이 또

나로 인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


불안?

아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기대하고 가슴 두근 거리는 소망으로 기대해야 한다 .


'전제 조건이 있다 .

엘리야 같아야 한다 .

지금까지 '말씀'을 붙들려는 노력이 유지가 되어야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주님은 이전의 경험과 인도하심을 통하여

더 뚜렷한 길로

훨씬 단축된 마음의 평정과

훨씬 더 큰 영혼의 성장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 결과 허락되어진 '성화'의 영혼이

내 나이듦에 비례하여 이루어져 갈 때

어느 때인가 급작스러이 부르시면

나 두팔들고

주님 앞으로 '할렐루야' 찬양을 드리며

기뻐 올라가리라.


주님.

귀하신 주님.

그랬습니다.

제 답답한 마음을 아셨습니다.

어제도 신문을 보니 .. 온통 불안하려 했습니다.

국회는 온통 싸움 뿐인데

미국은 '싸드'를 가지고 겁박하고

중국은 싸드를 통하여 아직도 물리적 압박을 가하며

북한은 또 무인비행기로 그리하고

아베는 그 묘한 얼굴을 신문지상에 들이 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진 현상의 시간에

그러함에도 '기독교 '인들이 드러내는 뉴스감은

'일인시위'하는 비 은혜적인 행동만을 보이고

열렬한 '회개'나 영적인 집회의 소식은 없음을 보며

다니는 교회의 흔들린 이후의 영적 가라앉음................등...

어디하나 '불안'치 않고 죄송하지 않을 현상이 보이지 않아

더 답답했습니다.


이 영적기근의 시대,

이 종말의 시대에

주여.. 피할 길에대하여 묵상을 시키시나

그 마져도 답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깨닫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금방 눈치채였습니다 .


은혜 받은 자,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상황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기쁨' .. 진정한 피할 길..이 있다는 사실이고

내가 걱정하고 생각할 어떤 것도 없이

그냥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근저에 '감사함'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감사함이

주님의 은혜로 ...

주님의 절대적 허락하심으로

내 영혼 깊숙이서 터져나올 것일 것을 알기에 또 그러합니다.


그날을 감사하신다는 말씀..

그대로 이해가 갑니다.

내 주여.


오직 주의 살아계심을 기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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