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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리를 따르는가[왕상18:16-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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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리를 따르는가[왕상18:16-29]

주하인 2017. 6. 18. 08:31

 

17.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렇겠지...

세상적으로 마구 마음내키는대로  살다가

'하지말라. 하나님의...'하면 듣기 싫겠지.

그럼 '괴롭겠지'.

 그걸 넘어서 '괴롭게 하는 자'로 느껴지기도 하겠지..

그럴 때 자신을 관조하거나 돌아볼 능력이 없는 자, 반성의 태도가 없는자..

아마도 그럴 거다.

"날 괴롭게 하는 자 ,너냐?"

이것..

' 날 괴롭게 하는 자'라는 이야기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 괴로운 느낌을 느끼게 하는 ...이라는 표현이니 '자기'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남아 있겠지만

이제 '날 괴롭히는 자'가 너냐..해버리게 되면

무조건 '타인'에 대한 손가락질 뿐인 구제 불능의 단계가 아닐까?




18.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런데 같은 말을 하는 자가 맞은 편에 있다.

바알의 맞은 편이다.

'하나님 편'이다.

그 엘리야가 그런다.

'그게 아니다.

너와 네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다'...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세상의 원리와 적극 반대할 필요는 없으나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세상의 풍조에 대하여 부담이 느껴져야 옳으며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게 ' 사단', 즉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의 그것 때문임을

적극적으로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굳이 '선'과 '악'

사단과 하나님으로 나누어서 양분법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님의 편이 당연히도 옳다.

그리고 내가 주인 인 듯한 이 세상의 살아가는 매사의 감정과 판단들이

꼭 '내'가 모든것을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히 인지하고 알아야 한다.


'괴롭게 한다'라는 표현에

같은 말을 두고 왜 두 사람의 사이에 정 반대의 일이 벌어질까?


그것..

당연하지만 자신의 '가치'에 따라 다른 판단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 가치.

가치, 인생관 , 삶의 방향성, 정체성, 우주관, 세계관...많은 다양한 표현이 있겠지만

살아가면 '사춘기'를 거치고 인생의 풍파를 겪어내면서

그 사람 안에 굳건히 형성된 신념체계의 소산이 아닐런가?

 거기에는 좋은 사람, 좋은 환경, 풍족한 금수저의 성장과정으로 자라나면서

세상은 자기 아래이고 좋은 일만 벌어져야 한다는 '가치'를 가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너무 힘들게 커와서 '우울'의 방향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동일한 유전자, 동일한 환겨에서 자라는 쌍둥이도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그 모든 것...

그의 안에 형성된 '핵심가치'는 '자신의 선택'의 몫이다.


그러하다함은 오늘 두 사람이 서로 괴롭게 한다는 것은

동일한 '엘리야의 선언'을 두고 정반대의 반응으로 보이는 게

엘리야 탓 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들 안에 각기 형성된 '가치'체계르 거쳐서 '자신이 반응'을 그리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 '자기 눈에 낀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 색안경을 끼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며

그 자기 선택을 허락하시고 인생을 세상에 살도록 하시어

자기 삶을 통해 자기의 선택과정을 거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성화의 정도를 보시려고 하는

이 드라마틱한 인생의 용광로를

이 지구에 , 온 우주에(어쩌면 다른 별의 다른 우주인에게...^^*) 허락하심으로

그 모습을 보시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심히 좋으셨더라고.. 창세기에 분명히 나오고...

 이사야서 43:21에서는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게 하실 목적으로 만드셨다고 나온다.^^*),

 이때 허락되어서 연단에 쓰이도록 허락받은 사단의 자극들(욥기 처음에 나온다)이

그의 가치 체계에 영향을 주고

그를 통하여 이 원죄적 영혼에 드는 죄를

어떻게 선택함으로 이겨내는 지..

안되니 십자가, 성령님.. 도움까지 허락하신 게 아니겠는가?


게속 길어지지만

오늘 맒씀의 레마는 이것인 듯하다.


나는 매시매초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때.. 남탓의 이유는 없다.

오직 내 선택의 결과로 베풀어지는 오늘이다.

매일 매시가 쌓여서 오늘이 온 것이다.

남을 탓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내 지금의 선택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이다.

그게무엇인가?

말씀대대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다.


아침..

날 스물거리며 사로잡으려 하는 오래된 내 생각의 변주들이 밀려오고

날 차겁고 화나게 만들려 하는 느낌이 들려한다.

기도한다.

차분해진다.

말씀이 떠오른다.

'날 괴롭게 하는 자, 너여'...는 내 분노의 네가 문제가 아니다.

내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길 원하신다.

오늘...

그래야한다.

오래.. 내 가치를 형성해온 그 생각을 이제 조금 내려 놓아야 겠다.

주님이 그 어려운 과정을 쉽게 도우시리라.

내 십자가 선택을 동시에 성령으로 이끄시리라.



주님.

감사합니다.

 아침..

또 옳은 선택을 하도록 이끄시는 군요.

이 매일의 조금의 변화를 통해

이 이후의 내 영혼이 훨씬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자 되게 하실 것 .. 조금씩 더 기대합니다.

내 주여.

이 거룩한 주일..

살아계신 하나님 편에 서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인생의 하모니를 불러 올리는 것을 보시려고 창조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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