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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밟히는 자의 福( 렘 18:1-1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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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밟히는 자의 福( 렘 18:1-12 )

주하인 2009. 10. 12. 10:17

제 18 장 ( Chapter 18, Jeremiah )

 

 

지난 일요일

연세 지긋한 노 신사 두분이

예배를 마치시고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으로는 친구 분을 잡으시고

저리도 다정히 식사를 하러 가신다.

 

그 분들의 사랑스러운

뒷 모습에서

주님의 밟고 태우신 가운데

잘 익어가시는

名器 토기의 우아함이 보인다.

 

그게

그 분들의

내 시선을 끄는 이유였었구나.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10 그들이 나 보기에 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예레미야 님 처럼 영상도 보이고

지혜로운 말씀이 은혜 가운데 깨달아 지고

주님 앞에서 두렵고 겸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토기 장이 집에 가게 하신 후

예레미야 님으로 하여금 여러 말씀을 주신다.

토기 장이는 주님을 암시하시고

토기는 연단받아 정결해져야 할 주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밟고 또 밟을 것이다.

진흙속에 들어 있는 죄의 속성들이 터져나가 깨끗해질 때까지 ..

얼마나 아플까?

밟히는 흙들은..

흙이 밟힘은 고통이지만

토기로 나오기 위해서 견딜 수 밖에 없는 기쁨이다.

 그리고 나서 토기장이의 손에 의하여 토기의 형태가 잡힐 것이다.

흙이 토기가 되는 것이다.

비천하고 땅에 깔려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은 토기로 예비하신 것이시다.

십자가를 통해 토기로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 그 토기는 그냥 거기서 말려져 버리면 그냥 토기다.

유액을 바르고 불에 구어져야 한다.

불같은 연단에 들어가서

그 연단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명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고난은 기뻐할 이유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토기도 될 수도 없고

멋진 도자기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고난이 오면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심적인 고난의 가중이다.

'왜...나만...'이라는 자기 연민이 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배로운 자기가 되기 위하여는

고난은 불가결한 존재임을 깨달으면

그것은 '감사'로 바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복'에 대하여 생각을 바꿀 찬스이기도 하다.

 

 토기의 형태에 대하여 . ..가 또다른 생각이다.

어느 흙은 '고려청자'로 '백자'로 나오지만

어느 흙은 '김장독'으로 '물주전자'로

심지어는 '변기'용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용도의 토기는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선택' ,

즉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달려 있다.

오늘 묵상 구절에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라 하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그것은 그리 투정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의 오늘의 모습은 물론

주님의 뜻과 나의 선택 사이의 상호 작용의 결과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누구를 원망할 이유도 없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괜한 신세의 한탄은 주님의 주권을 질타하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이나 잘된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질지 모르는 행위다.

그렇다면 현재의 가난이나 상처의 고통에 대하여는

원망하지 않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

상처가 깊고 깊어 그 후유증이 나이 오래까지 남아 있던 터.....

남에 대한 원망과 주님의 뜻을 곡해하였을 때는

지독한 아픔으로 내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바닥으로 떨어져 갔었다.

불면증.

혈압

두통

호흡곤란

두근거림

가슴통증

치아의 통증

...........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약을 먹지만 혈압은 정상이고

간기능도 깨끗하고

깨끗한 숙면

모든 증상의 사라짐

머리도 덜 쇰

충치하나 없는 이빨

...............

의사로서의 능력 인정

.....

이러한 육신적 회복은 둘째로 하더라도

나에게 최고의 축복은

'행복감'이 내 하루 중 상당 부분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나에게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는가?

 

 주님 안에서

나를 인정하기 시작함으로 부터이다.

내려 놓고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말씀 안에서 늘 주님이 나에게 지도하시는 것을 받아 들이려는

나의 자그마한 '선택'의 연속이 이어진 결과이다.

 

  예레미야 님의 시선이 아침 묵상 중 슬쩍 느껴진다.

밟히고 있는 흙과 타고 있는 토기를 쳐다 보는

그 눈.

그 가운데 주님의 깨닫게 하심이 이어진다.

그 깨달음의 기쁨.

그 주님 앞에서 정결한 개운함.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의 현 상황을 이해하길 바라는 안타까움.

알고 있을 듯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면서

이마에 땀방울이라도 흘리고 있는 자들을 보는 '사랑스러움'....

이러한 마음들이 그 분 예레미야님의 심령에 소용돌이치며

그 분의 영혼이 정화되어가고 점점 더 맑아지는 현상.

그 분이 눈물의 선지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아.

그러면서 그 밟히고 있는 토기 흙 중의 내 아들 흙이 보이고

타고 있는 불가마 속의 토기 중 내 아들 자기가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 현실의 내 아들의 모습들이 연상된다.

나른하게 앉아 있지만 그들의 심령은 타고 있을 것이다.

타고 있을 때는 난 가만히 있어야 한다.

나에게 신음소리 낼 때까지 가만히 눈물을 삼키고 쳐다보아야 한다.

그 아이들의 연단은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그 불이 꺼지고 그 아이들이 영롷한 빛을 발할 것을

눈물로 감사하며 기다리면서...

 

 福

다시 복으로 돌아가 보자.

주님이 말하시는 복은 무엇인가?

흙으로 논두렁에 방치되어

가끔은 따뜻한 햇빛아래 나른한 날씨나 즐기면서

그게 '복'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그냥 그냥 시간을 죽이다가

소똥이나 떨어지고 말 발굽에 밟히다가

쓰레기 더미의 뚜겅으로 덮혀

그냥 진흙의 정체성 조차 잃어 버리고 마는 삶.

그게 과연 '복'이 맞던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다르다.

비록 밟히기도 하고 태워지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토기'로 형태를 이루어

명품 '도자기'로 천국 주님 전에 놓이기를 위하여

불에도 가끔 태워지고 식혀지고

유약도 발려가면서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진 토기 자격으로

세상의 칭송과 副도 가끔은 부수적으로 누리면서

연단을 이루어 가는 과정.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이다.

 즉,

복은

주님의 영역이고

주님의 주시고자하면 받을 수 있는 부분이며

결국은 '주님의 성전의 器物'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 복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복은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가 뚜렷해지는 현상을 가져온다.

치졸하고 유치하게

겨우 이 땅에서의 것만을 가지는 것은

'복'의 아주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적용

 

1. 성경 일곱장 읽겠다.

 

2. 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

 아직 빼야할 공기가 남았거나 광택이 덜 난 이유일 수 있다.

 힘들어 하기보다 감사하자.

 

3. 아들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연단 중이다.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4. 천국의 향내나는 도자기가 우리의 복 받을 최후의 모습이다.

 

5. 무엇이든 흔들릴 일이 없다.

  내 현재의 모습은 주님의 허락하심과

  내 선택의 결과물이다.

 

 

기도

 

 주님

돌이켜 보면 하나도 갈등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도 속상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게 주님의 주권이시고

모든 게 주님의 사랑이신데

그것이 복인 것을

거꾸로 속상해하고 원망하고 탓하는 것은

불신의 모습이고

어린이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주님의 뜻 안에서 믿고 의지할 제가 되게 하소서.

더욱 바라는 것은

예레미야님의 그 힘있는 믿음 생활이 부럽습니다.

남을 관조할 수 있는 영적 성장

주님을 경외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주님 안에서 사랑과 긍휼함이 넘치는 삶.

주여.

저에게도 '복'을 주소서.

나머지는 결과로 나오게 하소서.

제발 제발 그리하소서.

더욱 바라옵기는

제 자식 , 제 아내

제 나라

.. 모두 그리되길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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