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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을 다했음에도 [대하32: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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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을 다했음에도 [대하32:1-19]

주하인 2013. 8. 24. 09:33

 날 이 좀

어두어지면 어떤가

 

갈채 대신

정리되지 않은 

무관심이면 또 어떤가

 

기대하는 대로

기도하는 대로

삶이 변하지 않고

 

내 

다한 충성에도 불구하고

삶이 

크게 변치 않았을 지라도 

 

단단해지고 커진

내 영혼의 심지를 허락하신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내 스스로의

깨달음 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으리라

 

 
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세세토록 잘 거할 것을 기대한다.

그게.. 어쩌면 믿는 이유일 수도 있다.

 

더구나, 충성되게 믿었는데...

ㅠ.ㅠ;;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그래도

히스기야 님은 '힘을 내었다. '

그래서 성벽도 보수하고.. 무기도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아 대책도 세웠다.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의혹도 없이..

 

배울만한 신앙인 !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 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그의 신앙적 심지는 아주 굳다.

'그들이 믿는 것은 육신의 팔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시다.'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다' 하고.. 단호히 외친다.

그 외침에 '자신 만이 아는 의혹'이 없었다.

그것은 그로 인하여 백성이 안심했다는 말로 알수 있다.

 

 

15.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산헤립 들이 성밖에서 외친다.

당연한 얘기.

 

 

충성을 다해,

그 충성이 그의 집착이나 아집이나 자아의 발로나 신앙교육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을 진정 기뻐하고 감동하는 '올바른 믿음' 의 결과로 보이는 중,

갑자기 뜬금없이

산헤립들이 쳐들어 온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 믿는 자들은 .. 이라는

축복의 과정에 있는 데

정말 갑자기 엄청난 시련이 밀려온다.

이럴 때 시련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믿음'에 대한 부분이 흔들리는 것이다.

 

 오래 기도하고

나름 깊은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하심을 확신할 만한 체험이 있어

사는 것의 이유,

인생의 목적,

그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나름으로는 잘 알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풍요롭고 마음이 다 녹아내릴 것 같이

하나님이 날 사랑하심을 느끼는 것 같았고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는데

갑자기 에기치 못한 일들이

예고도 없이

그토록 두려워 하던 일들이 벌어져

이제는 '그 일은 내 기도와 연륜 때문이라도 더 이상은 생기지 않을 거야 '하는 것들이

그것도 다발성으로 벌어지고

오래 기도했던 제목들이 시간이 지나면서도 이루어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가

그 어려운 일들과 더불어

오히려 더 안좋은 소식이 들리는 일이 겹쳐졌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직장이, 주위가 풍파에 휘말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전에 다 해결되었을 고민들이

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답답함으로

........마구 밀려들어온다.

바로 얼마 전 까지 그토록 '은혜' 가운데 확신을 가지던 일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심정을 마구 뒤흔들려 한다.

 정말 힘든 것...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왔던 믿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확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방향이 옳다는 기쁨, 그로 인한 평강

................' 이 지축부터 흔들리려 한다.

마치 산헤립이 '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고

갑자기 밀고 들어와 성밖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현실들이 그리 소리치는 듯하다.

 

정말 얼마동안 힘든 것은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 현실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불안,

마음의 혼돈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그 친밀했던 시간들의 소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 믿고 기도하는 것이 혹여......라는 의혹이다.

의혹을 가진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경임을 아는 것이

죄책감을 자극하려 하는 것이 힘들려 한다.

 

그러면서도 말씀을 믿고 붙드는 '습관' 때문으로

억지로라도 큐티집을 잡으면

말씀은 여지없이 나의 마음을 정리되게 하심을

매일 매일 체험해 왔다.

정말 하루하루가 힘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에 드는 '평온함, 흔들리지 않음'이 스스로 놀라왔다.

머리는 아프려 하고 가끔 심장은 벌렁거리려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을 '차분히' 지내왔다.

조금 씩 나름대로 깨달아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 ... 연단의 시간들이 이전과는 다르다. "는 것이다.

이전은 충성을 보이면 주시는 '축복' 내지 ' 평온'.. 평강'의 공식이 나름대로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르게 충성을 다해도 '환란'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음이다.

원리는 알고

그 뜻은 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더 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연단 과정 !

하지만 머리속 생각이 가슴에 내려와 내 정서와 세상을 보는 눈이 되기 위하여서는

많은 시간과 담금질이 필요치 않던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의혹'과 '말씀' 사이에서

의지적으로 '말씀'을 선택하자 마자 마음의 혼돈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내가 놀라울 정도로 이전과는 다른 마음의 평상심을 가지고

하루하루 잘 대처하여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선택'을 훈련시키시고

그로 인하여 나만이 아는 잔잔하고 깊은 기쁨으로

그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나를 잡으셨다.

난 스스로 그게 재미 있는 현상으로 스스로 느껴지고 있었다.

 

 또 , 오늘로서 '한가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 머리가 터질것 같고 지축이 흔들릴 것 같은 때,

내가 제일 힘들어 하고 하나님께 '이것만은... ' 절규했던 문제가

다시 생기면서도

그 대처과정에서 나름의 깨달음과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내 영혼을 붙드시는

그 힘든 상황에서도의 차분함과 더불어

이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하면서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고

해결하면서 배워진 깨달음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할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그것..

내 지평을 넓히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일 수 있겠다...하는 깨달음이 온것도 그것이다.

 

어제 '금요성령 집회'에서 'P 목사님'의 설교가 

내 정곡을 찔렀다.

시편 77:10-15을 가지고 설교 하시면서

"시편 77편을 1절 부터 읽어보세요.

 중언 부언.. 기도하면서 얼마나 힘든지 그 마음이 다묘사 되어 있어요.

 (~~ 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ㅠ.ㅠ; )

  하지만 10절 부터 갑자기 변합니다.

( 11-12절.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 되뇌이다...)

 그것..

 그 복잡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옛적 함께 하셨던 일을  '되뇌이면..영어로 'meditation ' , 즉 묵상하면.. '

갑자기 마음이 변하는 것입니다.

(13절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

그리고 삶이 변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힘이 드십니까?

기도해도 변하지 현실이 어려운지요??

하지만 ,

하나님이 기도에도 그리 힘드시다가도

마지막 일어나실 때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 만 해도

우리가 변하게 되지 않을까요? "

..........

참고로 '되뇌인다'는 것은 '묵상'이란 뜻이고 meditation이란 영어지만

히브리어로 '사가'로

사자가 그르렁 거린다는 것이란다.

그리 기도한다는 것...........

나.. 안다.

깊은 기도에 들어갈 때 '중얼 중얼.. '

하지만 그때 난 하나님이 들으심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그것을 사자의 그르렁이라 하지 않으셨을까?

 

그렇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결국이

승리임을 잘 알고 있다.

태양을 움직이고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키고

결국 산헤립등이 물러가는...

 

 우리의 바램은

기도하면 , 그래서 나름대로 신앙이 깊어지면

일생이 편안하고 잘먹고 잘살면서

나름대로 난.. '머리가 안아프고' '마음이 평안가운데 '

늘 행복하고 웃고만 살았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기대와는 전혀다른 바램을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든다.

 

 당연하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원죄'의 흔적이 있다.

scar.

상처.

그런 자들은 늘 평안하면 '죄'로 익어간다.

고생하지 않고

늘 앞서나가는 잘나가는 신앙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우리는 자주 보고 있다.

고생하지 않은 리더가

직장을 한순간에 말아먹고

나라가 뒤집히는 것을 본다.

 나..

 수년간 어느정도 평안의 기간이 지나자

교만이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온다.

하나님은 '세상의 영달'도 베푸시지만

그것은 그냥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 분의 우리에 대한 주 관심은

'영혼의 성화'다.

성장이다.

변화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실족의 대상일 뿐이다.

사단,

세상의 권세잡은 영혼들이 그냥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하셨다.

이 땅의 것만.. .바라는 것은 우리의 좁은 단견일 뿐이다.

 

그런의미에서

'환란'은 '영생을 준비하는 축복'이기도 하다.

과정은 어렵지만

돌아다 보면 과정 중에서도 느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그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어느 물질이나 세상의 축복이 그 기쁨을 대치할 수 있을것인가?

겨우 면벽이나 고행이나 천배.....등 자신을 가학하는 찌르는 말초의 기쁨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기쁨이다.

감동이다.

그 기쁨이나 감동은 '충성을 다한 후의 어려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그렇다.

그 기쁨을 놓치지 않으면

우리는 성장한다.

영생을 하나님 가까운 곳에서 보낼 수 있다 .

이 땅에서도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을 당김은

모든 의혹을 털어버리고

하나님이 '선'이시고

하나님은 무조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것은 무조건 옳아

나는 승리할 자고

승리하는 영혼으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임을 믿는 것이다.

 

 

주님.

내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어찌 이 좁은 머리와 가슴과 눈으로 판단할 수 잇겠나이까?

어찌 짐작이나 가능할지요?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마치 눈속에서 꽃이 피어나듯

상처 속에서 회복의 나른함이 올라오듯

하나님은 나를 위하심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결국의 자리에 서서 돌아보면

모든 의혹은 다 사단의 집요한 이야기고

그 과정을 견뎌 낸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보시기 위한

당신의 사랑의 과정이었음을 깨달아 질 것만 같습니다.

 

 주님.

하나하나 어려운 일들이 매듭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

아직 견뎌 넘어가야 할 일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마비나 마취'가 아닌

'말씀'으로 인한 든든한 '믿음'과

그에서 파생하는 감사함으로 인하여

잘 이겨나가 질 줄 믿어지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기대하니 그렇습니다.

주님.

더욱 간절히 비올 것은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들의 끝이

어서 빨리 오게 하시고

주님.

저로 더욱 깊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대하며

말씀 가운데 나를 스스로 변화시켜 가는 만큼

저 자신에 대하여서도

모든 것을 인정하고 기뻐하고 받아 들이어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 자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그러한 자가 나이고

그러한 나이기에

더 이상 세상의 흔듦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그런 행복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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