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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티끌마져[출8:16-32] 본문

구약 QT

땅의 티끌마져[출8:16-32]

주하인 2021. 4. 19. 08:28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가만히 보면

'개구리' '이' .. '파리'.. 는 모두 

물, 땅, 하늘에 속한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 중 있었던 것을 통하여

괴로움을 허락하셨다고 주석설교 하시는 목사님 말씀 통해 깨닫게 된다. 

 

 오늘 

땅의 티끌이라는 단어에 눈이 간다. 

'이'로 변하여

그 땅의 티끌은 

그들, 믿지 않는 불신자들 

어쩌면 예수님 구원을 얻었지만

관심이 '세상',  그 세상의 티끌에 집중 되어 있는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땅에 발을 딛고 살며

땅의 티끌을 묻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긴 하지만

그 티끌로 인하여

'이'가 물리는 고통을 받고 안받고는


 

19.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권능이 아닌 것이 없고

그 세상의 흐름, 

심지어는 티끌 같이 가치 없는 듯한 세상의 피조물을 통하여서도

주님은 주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고자 하심이

우리를 세상에 머물어

이 티끌, 이 먼지 같이 찰나의 유한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신가?

 

그런데

정말 내 삶은,

우리의 삶의 행태는 그렇던가?

이 티끌을 보물처럼 바라보고

이 티끌보다 짧은 인생의 시간들을 영원처럼 바라보며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서 얻고 못얻음을 가지고

눈물흘리고 웃고 불고 따지고 자랑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라

이 손에쥐면 흘러내리는 모레보다 작은

이 티끌을 더 거머쥐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지는 않았던가?

 

 최소한

이들 '요술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

 

 나는 어떤가?

혹여

이땅의 티끌을 가지고

티끌같은 세상의 있고 없음을 가지고

그에만 매몰되어 사는

바로 , 애굽 사람 같은 자는 아닌가?

 

 


22.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하나님은

여호와시고

그 차원을 넘나드시며

가장 높은 궁극의 차원에 홀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

그 권능의 하나님께서

왜 ,

무엇이 부족하여

이 겨우 3차원 세상에 눈이 고착되어

그 눈앞의 티끌만이 모든 것인 줄 알며 사는

티끌 보다 작은 존재들에게

당신의 권능을 더 크~고 놀랍게

세상이 아주 깜작 놀라고 뒤집어져서

믿지 않고는 어찌 할 수 없을 정도의 현상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천천히 조금씩 단계를 늘려가며

바로 들에게

그들의 눈, 우리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자들에게

정신차리고

받아 들여서

주님의 하신 것 아니시고는 도저히 이리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인지하여

선택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두손 두발 들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을

그러한 정도의

세미한 ........ 현상 만을 보이심이다.

 

그렇다 .

그게

이 땅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원리이시다.

 

우리.

믿는 자들.

그토록 많은 뱀되었던 지팡이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도 그 지팡이가 내 삶에 번연히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도구 (어쩌면 지금 내 의사로서의 능력을 허락하신 것......간증.... 그것을 통해서... 라도..)가

내 안에

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니시고는

도저히 그리 될 수 없음을

조금만이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응시하고 살아가면 잊지 않을 것을

그리 못함은

이 땅의 티끌로 눈이 가리워져

티끌이 모두 인양

하나님은 티끌을 위한 도구인양

그리 잊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기 위함이 아니던가?

 오늘 내게

주님은 그러시는 것 같다 .

 

 "이땅은 티끌이다 .

티끌의 것에 너무 흔들릴 필요 없다 .

티끌을 통하여라도 보여지는

하나님이 원하심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쩌면

그 티끌이

여전히 네 삶을 '이'처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어서 빨리

네 삶을 돌이켜

하나님이 권능으로 네 주변에 베푸신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셨구나 .. 인식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그를 통하여 드러내어 보거라...

아니면 그게 오히려 네 삶을 괴롭게 하리라" 시는 것 같다.

 

 

주여.

정말 돌아보면

내 잘난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잘난게 이제 이나이에 어떤 효력을 가지게 될것이고

그 잘난 것을 알아주고 안 알아 주는 게

또 어떤 현재의 버거움의 빌미가 되어야 할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여.

모든 것 .. 내것 이라고

내 것을 가지고도 나한테 고마워 할지 모른다고

나의 가진 것을 찬양하지 않는다고

내 마음대로 해야할 것을

내 명령을 어긴다고

어쩌면

내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고

내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

온통.............몸부림 치는 것 때문에

지금의

지금까지의 이러한 삶의 버거움들이

여전히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뚜렷이 듭니다.

 

주님.

오늘

땅의 티끌로 이를 만들어 고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미루어 짐작해보았습니다.

 

이땅의 티끌로

저를 무는 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깨어 있게 하소서.

 

바로처럼 미련하게

완강한 미련의 저항을 보이지 않고

조금의 능력은 있지만

금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그리하실 수 없음을

두려움 중에 깨달아 고백해버리는

요술사같은

온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게 하소서.

두렵고 떨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상에서의 세미하게 임하시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고초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드러내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살아계심,

여호와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위하여

제 매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회개케 하소서.

주여.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뜻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제 안의 바로 같은 심성을 없이 하소서.

순간 '이땅의 티끌'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이땅의 티끌 같은 것에 눈돌리지않게 하시되

이땅의 티끌 조차도 하나님의 뜻가운데

그자리에 그렇게 있음을 알게 하시사

내 주변을 스쳐 오가는 모든 관계와 상황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여.

새로온 간호사가

손발이 너무 맞지 않아

자꾸 울~컥 울~컥 하려 하고

가까운 자에 대한

서운함이 올라 오려하고

드는 나이에 그니의 부족함을 감당키 어려운 두려움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주여................

모두 주의 티끌 가운데 있사오니

더 귀중히 보게 하소서.

더 내려 놓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내려놓게 하소서

 

제 안에 임하시고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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