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쳇바퀴의 지옥을 벗어나는 길(요8:21-35 ) 본문

신약 QT

쳇바퀴의 지옥을 벗어나는 길(요8:21-35 )

주하인 2008. 11. 25. 12:29

제 8 장 ( Chapter 8, John )

 

 

 베란다 안.

따사로운 겨울 햇살.

창밖의 차가운 동풍과는 상관없는

여유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

 주님 말씀 안에 거하여

자유케 되기를 원한다.

광풍의 세상의 그것들과는

한걸음 떨어져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싶다.

주님의 따사로운 진리의 햇살 아래에서.....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함.

진리.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자유함이란, 종의 상태를 경험해 본 자들에 대한 이야기 일 뿐.

이들이 말하는 종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은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그들이 참 자유를 얻어서 일까?

늘 자유로와서 어려움을 모를까?

 

어려움이 닥쳐도 어떤 이들은 성품상 느긋한 자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약간이 고통에도 프라이팬에 콩볶듯 튀는 분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헛된 생각의 논리에 빠져 잘못 편안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다.

 지적으로 느낄 수 없는 자들,

태생부터 교육적으로 그리 길러진 분들,

술이나 마약, 등의 중독성 물질로 '도피'한 사람들

미친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못느끼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종의 상태란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가?

우선 대표적으로 '죽음의 운명에 놓인 유한적 인간'을 볼 수 있지 않는가?

죄의 결과인 죽음.

죽음을 누가 벗어 날 수 있는가?

난,

젊을 적 만 해도 죽음은 전혀 나에게 해당되지 않을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조금의 노력에도 피곤이 회복되지 않는 지금의 현상을 보고야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다.

이러한 생체의 시계의 노화, 즉 죽음으로 부터의 공포를 잊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는가?

참선, 요가, 헬스, 등산..........그런다고 젊음을 끝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그랬다.

사람들은 태어나자 마자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가 죽는다고.....

이러한 죄의 결과는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저마다 자기의 고난을 겪고 간다.

 

 비록 일 순간 편안한 상태에 있다고

과연

'누가 종이란 말인가?'라고 외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면

그에게도 팔다리의 힘이 빠져가고

아내, 남편, 아이들, 상사, 환경,건강,.......................비교, 질시.......두려움................으로

서서히 그의 영혼은 말라붙기 시작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유전 공학이 발달하여도 시간은 늦추어져도

그 운명은 그 앞에 놓여 있다.

 죄는 죽음과 더불어 그 영혼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수반한다.

이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과연 무엇이 있어 그를 자유롭다고 말하게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자들이 철학을 통하여, 

참 종교인 기독교 이외의 종교라 하는 헛된 이데올로기에 매달려

해탈을 이루고 깨달음을 얻고 도를 이루어 가려 했고

위와 같이 허세를 부리던 자들도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중독의 현상이나, 우울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가거나,

이단의 종교에 매달리거나 세상의 성공에 전 영혼을 다 바치다가

결국은 그 전대의 선조들이 그랬듯

허무와 영혼 속에 묻혀 들어가게 되지 않던가?

 

정말, 그런데 이게 다인가?

 

세상 사는게 이런 쳇바퀴가 모두 끝인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살고 자식을 기르고 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가 왜 있을까?

 

 오직 .....나...........라는 존재 속에

온 관심이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답이 없다.

영원이 되풀이 될 때까지 갇혀 있어야만 되는 쳇바퀴의 지옥일 뿐이다.

누구도 답을 낼 수 없다.

  

 그런데

길은 있다.

답은 있다.

진리는 있다.

그러기에 '예약된 자유'가 있다.

 

주님이시다.

예수님이시다.

그 분이 길이고 진리고 자유의 원천이시다. 

 오늘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는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

어느 누가 있어 이런 말씀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 누가 있어 이런 통쾌함을 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난,

예수님을 10여년 전 영접하고 가장 먼저 가슴에 오고

가장 나에게 희망을 주었던 구절이 이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

그 지긋지긋한 세상 살고 싶지 않은 권태로움.

의미없는 하루 하루..................

그 상황에서 '첫사랑'으로 다가오신 성령의 '출애굽'을 통하여

난 정말 통쾌한 기쁨과 열정에 떠 다녔었다.

그것은 '자유'였고

그것은 진리를 깨달은 득도의 환상이었다.

주님의 위의 선언은 내 가슴에 진실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 난 소망이 있다.

난 환경이 어떠해도 가끔은 든든히 서 있다.

가끔은 겨울의 매서운 밤바람이 내 볼을 때려도

파카 입고 열심히 산보를 나가면서 느끼던 그  따스한 가슴의 온기가 느껴지던

그 체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자유로와 지는 진리의 체험을 하기에 그렇다는 것을

난 안다.

 

 정말 어려운 시대가 몰아쳐 오고 있다.

환경에만 눈돌리면 도저히 소망이 없다.

피할 곳은 없다.

술로, 약으로,  이리 저리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넓힘 쪽으로,

우울로, 정신병으로 도망을 해도, 심지어는 죽음을 택해도

그것은 자꾸만 수렁으로 몰아넣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오직 길은 주님이시다.

그 분 예수님께 모든 문제점을 가지고 나가

그 분 예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을 느끼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의 결단을 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 놀라운 기쁨이 영혼에 몰아오게 된다.

그것은 내가 알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배우려는 고통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주님은 내 영혼에 깨닫게 해 주신다.

나머지는

주님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하실 것이다.

 

 환경재앙 ?   문제될 것 없다.

곡물?

질병?

금융?................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것은 필요조차 없는 고민이 될 것이다.

주님의 낙원이 이 땅에 펼쳐질 것이다.

난 그리 확신한다.

말씀이 그러신다.

말씀으로 느껴지는 확신이 그렇다.

그 걸 체험해오는 내 삶이 증명한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진리입니다.

진리 안에 있고

자유로운 우리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여.

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주님을 잊어가는 세대를 불쌍히만 여기소서.

이들을 회복시켜 미몽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이 땅에만 고정되어 있는 쳇바퀴의 삶을 벗어 던지게 하소서.

옛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듯

환락과 타락의 쳇바퀴를 벗어 던지게 하소서.

어리석은 고민을 하지 말게 하소서.

오직 주님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 앞에 세상 모든 배고픈 자들이 겸허하게 하소서.

말씀을 먹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앞에 전율하고

말씀으로 살아나고

말씀으로 자유를 알게 하소서.

진리로 거듭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 , 회복되게 하소서.

어긋나는 종말적 현상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 간절히 빕니다.

성령님 도우소서.

 

에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합니다.

아멘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말씀 앞에 겸허하겠다.

 

3.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백번 외겠다.

 

4. 걱정을 내려 놓는다.

   기뻐한다.

   난 진리 안에 있는 자다.

 

5. 난 자유로운 자임을 명심한다.

 

6 전도한다.   

  한명은 했다. ^^;;

 

7. 어려운 자들을 긍휼히 보는 마음을 기도한다.

 

8.  선교사 돕는 선교의 일을 위하여 기도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