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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 잃어 버려도[창43: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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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 잃어 버려도[창43:1-15]

주하인 2020. 9. 11. 08:40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점점 더 기근이 심하여져서(세상의 힘듦이 점차로... 점차로.. 코비드.. 까지 ㅠ.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 오라

견디기 힘들 때까지 버텼다는 뉘앙스다.

마침내

먹는 것 다 떨어질 때까지

그들은 '고민'했음을 이야기한다.

 먹는 것 부족함으로 인한 고통,

먹는 것 줄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결국은 빠져나갈 길 없이 애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아는 자의 불안함,

자식을 위해 자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갈등.

........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그리하여도 결단을 못 내리는 아버지 야곱을 향해

유다가 그런다.

"내가.. 담보.. 영원히"

뭐.. 드라마 대사 읽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이나.."

 

누가 성경을

그냥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 , 교양서적.....이라 생각하는가?

너무나 리얼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갈등과 생각의 흐름과

그들 사이의 애정과 회개의 마음과

같은 형제들이지만 '리더'의 자질을 타고나는 선천적인 유형과

갈등과 고난에서 드러나는 숨은 자질(유다.. 말이다.  영적 장자 ),

영웅은 난세에서 ㅎㅎ 난다는 무협소설 같은 전개,

거기에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놓지 못하는

집착의 끝을 보여주는 아버지 야곱의 마음과

.....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리는

이 내면적 갈등의 묘사가

살아있지 않는가?
수천 년이 지난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감되는 묘사가 성경 창세기에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음은

또다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살아계신 하나님이

믿는

그래서 말씀을 하나님으로 받으려는

우리에게

내게

뚜렷한 증거이자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각설하고

난..

오늘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집착'과 '내려놓음'에 대하여 말씀하심에

아.. 그랬다.

 

 집착이다.

겉으로는 아니라 하고

이제 나름 잘 정리되었다면서

선을 그을 것은 금고

그 안에서 내 안 되는 것 주 안에 내려놓고

잘못한 것은 회개하며

나름 깨끗하게 정리해간다 생각하지만.........

실은

아직도

심히

크게

붙들고 있는 게 있다.

 

그 증거는

아직도

불현듯

내 속에서 치미는 '억울함'.. '속상함' 등이다.

어..

'외로움'도 '두려움'도

어쩌면

그 집착의 증거가 아닐런가 싶다.

 

 오늘

야곱의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는

나름의 고백적 선언을 보면서

불현듯

내 가슴에

저렇게 내려놓아야 할

어떤 것이 무엇인가.. 하고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더 정확히

더 깊이

더 뚜렷이......

그 붙들고 내려놓지 않으려 하는

집착과

그를 내려놓음에 대하여

묵상하리라.

 

 

그리고

그러하며 나름 다행이라 느껴지고

아니.. 행운이고

한편 감사로 느껴짐은

나 홀로 있으면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며

내 힘으로만 마주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다. 

 

 야곱이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

아들 유다의 설득을 '빌미'로 (^^;  표현이 그렇지만 반어법 )

자신의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입으로 한번 다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라며 자신의 결심을 확인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믿음은

그의 다짐을

실제화시킬 것을

그는

나는

또 믿는 우리, 경험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게도 '자신'이 생긴다.

힘이 생기고

그냥 말로 존재하는 유희나 수사가 아니고

실제로 감정의 든든함과 감사함의 변화가 생기고

육신에 힘이 돋는다.

말라 가는 근육의 세포 (myelocyte ^^*)에

핵산이 더 재생되고 mitochondria의 활성화가 되며 여러 RNA 전사와 더불어..ㅎㅎ..

힘이 생기는 듯하다.

 그러함으로

더 힘껏 야곱이 자식들을 향하여

" 그 사람 앞에서 (아.. 문제.. 두려움.. 집착의 뒤편에 존재하는 커다란 영적 바로.. 말이다 ) "

" 너희에게 ( 믿는 너희, 우리와 나에게 ^^*)"
" 은혜 베푸시기를 (아멘이지 않는가?)"

원한다.. 선언하고 있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그리고

마치 영화 속편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처럼

"요셉 앞에 '

'서니라' 하면서

형제들이 서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할렐루야다.

 

우리는 알지 않는가?

그들 형제들의 조우와 사랑과 회복과.......... 축복을.. 말이다.

 

할렐루야

주님

 

오늘은

집착과 내려놓음에 대하여

완벽히 보이고 계십니다.

주여.

제 집착은 무엇인지요..

알듯 알듯한

제 내면 깊숙이 있는 그 집착 말입니다.

 

이제..

당연하다고 하고

이것만은......... 이라면서

그 근거로

세상이 그러니...... 라면서

가까운 자들을 아직 놓지 않게 하는

그 집착 말입니다.

아..

내 자존심.

이것만은 붙들어야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을 듯한

그 오랜 집착.......... 내려놓게 하소서.

아...

주여.

그것마저 무너지고

그 상황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십자가 지는 주님 예수님'께 가해지는

손가락질 , 모욕 같은 두려움임을

저는 막연히 느낍니다.

주여.

그래서

꽁꽁 부여잡고

더 깊이 더 깊이 내려 눌러 놓아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그 두려움 말입니다.

부끄럽고 속상하고 창피하고........

외롭고........ 그래서

감히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그.......... 것 말입니다.

내 주여.

 

이제 그마저

내 살아계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 앞에서도

제게

은혜를 베푸사

어떠한 일에도 담대하게 하소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잃어버리면

잃어버리리라...

선언하는

선언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게 하소서.

그런 두려움을 감히

주님 이 계시기에

받아 낼 수 있도록 하소서.

내주여.

힘주소서.

지혜 주소서.

은혜 주소서.

깨닫고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기다릴 수 있게 하소서.

거룩하신 내주여.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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