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창조주 예수님(골1:15-23) 본문
(골1:15-23)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
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모든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창세기에도 '복수'로 나온다.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NIV) one of Us- 같이
되었으니 )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시다.
그러나,세 분이시자 한분이신 '삼위일체'의 그 놀라운 신비의 위대하신 분을
우리는 자꾸만 나누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순복음...
어느 쪽에서는 '성령'님의 사역을 중시하여 '뜨겁고 신비주의적'으로 가기도
어느 파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에만 관점을 두어
그 분의 십자가 고난에만 조금 더 치중하여
조금은 냉랭하고 차갑고 이성적인 경향을 띠어 심지어는 방언조차 터부시하기도 하고...
그러나, 진정 그런가?
그게 신학적인 논쟁의 여지를 떠나 '삼위일체' 그 분의 그 놀라운 기묘막측함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행위던가?
아마도 , 너무도 큰 하나님.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기엔 인간의 지혜가 너무 부족하여
자신 만의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논리의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거기에 비슷한 생각으로 모이고 정리하고..........
기본을 중시해야 한다.
다른 생각이지만 존중하여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에는 내 아는 것 , 타인과 다른 점을 포기해야 한다.
옳은 방향으로 융합해야 한다.
삼위일체의 하나이신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당연히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창조하시었음이 인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 ...
나는 어떤 식으로 주님을 느끼고 있던가?
하나님.
그 분 만이 창조주이시고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시고 -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하지 않은가?
오늘 말씀을 들어 다시 깨닫게 하시는 것을 보면 -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되셔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한 단지 '구원의 버튼' 역할 하시며
성령님은 구원 받은 후 인쳐진 자로서 꾸준히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연결해주시는
'끈' 역할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지 않던가?
나름 깊지는 않지만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나 나름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틀이긴 하다.
그러다 보니 때로 내 상황, 즉 어느때 은혜로 넘칠 때는
성령 하나님을 더 찾게 되고
회개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예수 하나님의 십자가에 더 묵상을 치중한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이유에서든 궁극적 생기의 원천임을 이해하고 붙든다.
그러기에 큰 비틀림이 없는 나름의 통합적 신앙을 구축해가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부족한 내 믿음 생활을 자주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때 보면 '예수님'은 내 관심의 멀리 계신 듯할 때가 있고
때로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심부름 꾼처럼 - ㅜ.ㅜ;;- 생각되어 버리는 때가 없지 않다.
한번씩 '성령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하시는 분들을 보고
또 내가 그러는 걸 보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나님의 영'이시기도 하시며
그분이 임하시면 느껴지는 은혜의 감각이 전기 같은 전율의 느낌이시기도 하셔서
때로 육신적 존재인 우리에게 그 분은 그러하신
단지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비물질'- 정말 죄송 ^^;;- 처럼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없지 않다.
그러기에 '성령을 주소서.'라는 이 어이없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게 옳은지는 모른다.
성령은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영이시기도 하며
인격적 존재이시며 연결 통로 같기도 ....하시기에 어찌 알겠는가?
오늘 묵상의 포인트가 예수님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 하시는 데
내 고착된 개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만 연루 시켜 고착시키는
이 어리석음을 지적하시는 것 같다.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하나님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창조하시는데도
일위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면서 그 분이시기도 하고
또 땅인 이 지구에 내려오셔서
이 무지한 '주모'가 알수 있을 '현상'적 모습을 띄우셔서
당신의 그 십자가 사역을 담당하신
그 모든 것을 따라 행하고
믿을 수 있는 구체적 인 십자가를 내려 놓으신 것이시다.
그 온전한 이유가...
하나님과 나의 화평,
세상과 나의 화평,
나와 나의 화평을 위하심이시다.
그 분은 마치 방송국에 있는 연기자가
TV 수상기를 통해 방에 있는 '나'와 다른 수도 없이 많은 '청취자'들에게
직접 보여지는 것 처럼
볼 수 있는 TV인 십자가를 세상에 내려 놓으셨지만
그 분의 본질은 방송국인 천국에 계신 하나님이시란 것이시다.
전파는 '성령님'이시고............
그게 내가 이해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결국, 천국에 계신 그 분 삼위일체 하나님을 쉽게 보고 이해하는 나는
이땅에 내려오셨던 예수님 , TV 속의 하나님을 보고 있지만
실제는 천국 방송국의 그 하나님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전파 하나님' 성령님의 존재가 꼭 필요하시다.
이것이 어찌 정확한 표현이겠는가?
어찌 구분하겠는가?
어찌 하나님을 설명해 이해하겠는가?
삼위이시지만 하나이신 그 분 하나님.
그 놀라운 비밀을
박테리아 속 바이러스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이해의 괴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내가.........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러한 나와 하나님 사이의 너무나 큰 간격을
그분은 끝없이 이해 시켜 주시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지 않은가?
내 가진 경험의 폭의 너무도 작음,
조물주와 인간 사이의 그 넘을 수 없는 ....감히 생각해 낼 수 조차 없는
그 간극을 어떻게든 이해 시켜 주시려는
그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 그 온전하신 세심하심이 가슴에 온다.
그렇다.
지금도 예수님에 대한 내 이해를 다시한번 교정하여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균형잡히고 덜 왜곡된 믿음의 성장을 통해
아주 아주 약간은 성장한 자 되어야 한다.
그게 비록 주님 앞의 진실에서는 너무나 거리가 멀더라도
우리 예수님...
내 하나님... 께서는
나를 이처럼 위하신다.
오늘은 '주일'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올려 드려야 하는 날이다.
지난 6일간은 주님을 통하여 내 위안과 도움을 구하는 날이었다면
오늘 만큼이라도
주님께 영광올려 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왜곡된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예수님도 함께 하셨다.
성령 하나님도 우리( Us) 안에 포함되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 하나님을 어찌 구분하겠는가?
기도할 때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여쭈어도 괜찮다.
그 분, 그 하나님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내 혼자서 , 내 죄, 내 상처, 내 쌓아 놓은 짐을 해결할 수없으니
내려오셨다.
그래서 그 무거운 것들을 들고 피눈물 , 피땀, 피를 쏟으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얼마나 놀라우신 일인가?
그러시면서 그 공생애 사역 내내 '성령'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모델을 보이셨다.
나의 인생의 살아갈 방편을 몸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그리하여 내 어찌할 수없는 강팍함을 내려놓고
모두와 화합하길 바라시면서...
오늘..
내려 놓지 못한 이 무거운 영혼의 때를
창조주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화합의 예수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일의 올려 드려야 할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영광올려 드려야 한다.
감사하다.
기도
주님.
오늘도 또 시간은 지나고 세월이 흘러
여지없이 '주일' 이 이렇듯 돌아왔습니다.
돌아 봅니다.
매일 매일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
주일이라는 일주일의 하루만이라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회를 허락하심으로
저... 이 부족한 자에게
6일의 시간을 허락하시고 이제 주님의 날에
다시금 회개하고 주님 앞에 정갈하게 되는 기회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가운데 바라보면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늘 묵상 가운데
예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같이 계시던
그 조물주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면서도
세상에 와 그처럼 몸을 낮추시고
몸소 모든 우리의 고통을 체험하셨으니
그 끝없는 하나님의 겸손하심과 낮추심을
감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 안에서
다시 힘내어 일어설 기회를 가집니다.
이제
이 당직서는 여성병원을 지키시사
이곳을 축복하시어
드나드시는 모든 분들
이곳에서 생명을 잉태해내신 모든 분들
우리 주님의 고통에 참예 하셨음을 새삼 깨닫고
그 십자가의 생명의 잉태처럼
귀한 생명들 잉태해 내신 그들의 수고와 노고를 위안하시고 축복하시어
인생 살면서 매사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살게 하소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가정을 어루 만지시고
늘 흔들림 없게 하소서.
모든 직원들 축복하시어
이곳에서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인생이 한단계 성숙해지는 게기와 시간이 되는
그런 공간이 되게 하소서.
늘 주님을 생각하는 직원 되게 하소서.
주님..
이 병원의 영적 리더로 서 계신 모든 목회자님 들 기억하시고
병원의 현실적 리더 분들 기억하시사
현실의 삶을 승리하게 하시고
그 현실의 일상에서 승리하게 하시사
그 승리가 온전 히 주님께 영광드리는 시간들되게하소서.
제 식구들 기억하소서.
아들 둘 모두 주님의 복음 진리에 목숨 바치는 자 되게 하시고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게 하시사
진리가 그들 영혼을 관통하는 깨달음 잇게 하시고
영혼이 잘되어 범사도 잘되는
은혜의 은총의 삶되게 축복하소서.
제 아내 몸 ... 영혼의 안정.. 심리적 온전함을 위해 기도합니다.
올해 초 수술 후 폐경기 위기의 어려움도 겹쳐져 있지만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자로서 잘버티고 있지만
많이 힘들어 합니다.
주님.. 아시지요?
고난을 승리로 승화하게 하소서.
제 아버님.
어제 생신이셨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차분함으로 맞이하심이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주님을 얼마전 영접하셔서 영이 맑아 지심 탓임도 있지만
준비하시는 듯 .. 한 정리의 느낌도 많습니다.
주님..
가슴이 턱막히는 슬픔이 잠시 밀려 왔습니다.
도우소서.
모든 것 잘 정리되게 하시고
어머니도 남으신 여정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운데 잘 정리되고
이 인생 후의 영생을 잘 맞이하시는 인생되게 하소서.
축복하소서.
저......
아시지요?
화합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요.
그리고 제가 평생을 걱정하며 가지고 있는 ..
버려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비화합의 부분들요?
예수님,
온전하신 창조주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내 믿음의 폭을 너무 제한하여
주님을 십자가 틀에만 계속 매달고 있던
이 어이없는 생각들을 넓히시사
그 놀라운 창조주 예수께서 내 영혼을 위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까지 달리신
그 은혜에 매사 매일 전율케 하소서.
할말 많사오나
주님..이제 맺사오니
제 기도 그대로 하나님께 상달되어
은혜로 매일 매일 잡으시고 축복하소서.
일상도 축복하소서.
너무 부족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하소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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