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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쇠사슬 소망(행28:16-31)

주하인 2011. 10. 22. 10:54

(행28:16-31) 

그림자

 

어두움

 

갇힘

화단

 

쓸쓸함

 

그리고

 

쇠사슬

소망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내 뜻과 다른 오해.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노력과 세상의 몰 이해.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럼에도 '이스라엘'로 표현된 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웃'에 대한 소망으로

'쇠사슬'에 매였다.

 

 쇠사슬에 매인 듯 어려운 인생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그것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소망'이다.

남들을 위한 소망이자 내 소망이다.

쇠사슬이 꼭 매임 만이 아닌 이유다.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나.

이러고 싶다.

그래서 게을러지고 잊혀지려다가 주님을 조금씩이라도 전파하려 노력한다.

말씀 안에서 깨우쳐져 전도하는 것.

아주 아주 놀라운 경험이다.

주님이 기뻐하심을 내 가슴의 소롯이 올라오는 '소망'이 그 증거다.

 

 

 

 만 12살 소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내 진료실에 들어섰다.

증상은 1년 전 시작된 月經이 잦더니 이제는 조금 어지러울 정도로 자주한단다.

아이를 가만히 보니 눈빛이 당찬에 영리해 보인다.

안경이 이채롭다.

테가 주황색 다리에 안경 주위는 감청색이다.

머리 때는 주황색으로 줄무늬 포인트를 청색계통으로 들어간 '다소 튀는 ' 모양새이며

입은 옷은 짙은 색이고 조끼를 받쳐 입었는데 잘 어울린다.

튀는 듯 하면서도 나름 조화로운...

성숙한 '어린이의 노력'으로 보여서

일단 진료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한번 물어봤다.

"어..너 멋지게 입었구나.

 안경은 ... 이러이러.. 옷도 저러저러.. 야.. 코디를 기가 막히게.. ' 하니

산부인과에 들어오며 어색해하는 아이의 일반적인 얼굴보다는

화사해지며 긴장이 풀어지는 모습이다.

눈빛을 반짝이며 얘기한다.

'제가 했어요.. '

'그래~!!

 야........너... 디자이너 해도 되겠구나.. ' 하니

엄마가 기뻐하며 ' 의사 된데요' 한다.

일단 진료실에 올려놓고 초음파를 보며

조심스럽게 그 나이 또래들이 싫어하는 얘기를 살짝했다.

'공부는 좀 잘해?

 의사가 되려면 1등 해야 하는데....' 하니 잘해요.한다.

'어느 정도? '하니..' 1점차이로 전체 2등 했어요' 하며 아이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찬다.

'그렇구나........

 네가 영리해 보이는 이유가 있었네?

 그렇다면 우리나라 디자인 계통에 훌륭한 인재하나

 의사세계에 빼앗기는 거네? ' 하니 막웃는다.

 병원에 와서 즐거워 하는 어린 환자들을 경험하는 게 나도 즐겁다. ㅎㅎ

자꾸 느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이 내 마음을 잘 풀어 주시나 보다.ㅎ

'그나저나, 의사하면서도 까짓거 디자이너도 같이 해버려~' 하니

'그럴 께요~' 하며 내 진료실을 두리번 거리다가

'선생님 , 아프리카 다녀오셨어요? ' 한다.

' 아니. ...왜?'

'저기~ 사진이 어디예요?"

'음.. 인도네시아.' 

몇년 전 선교 다녀올 때 찍은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에 이녀석 관심도 많다.

그래서 얼른 틈을 잡았다.

' 의사들은 재능있는 분들이 많아요.

 안CS, 박KC.. 알지?

 그분들도...그렇지 않아.?

 너도 그리해..

 그런데 교회는 다녀? ' 하니... 얼른 '예' 한다.

 '선생님도 의사라서 경험해보았는데

 나 혼자 돈 많이 벌고 잘 살려면 불행해져..........

 남을 위해.....

 아니 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는 목표로 의사가 되면

 아주 아주 할 일이 많아져요.

 행복하고.....' 하니 엄마도 많이 동감하신다.

아이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하려 마음먹고 있다 고 한다.

검사 몇가지 처방하고 나가는 아이를 보고

'그래서 나중에 의사되어 동료 의사로 만나자.. ' 하니

화이팅.. 하면서 나간다.

기쁘다.

 

 

 오늘 묵상.

사도 바울님은 자청해서 쇠사슬에 매였다.

그리고는 '로마'까지 왔다.

로마에서 '유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도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어려움의 이유를 안다.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라는 선언으로 그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렇다.

그는 '예수님'을 전파하는 이유로 세상에서 쇠사슬로 표현되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어려움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이라는 본래의 뜻에 합당토록

'예수님' 영접하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이 ' 쇠사슬이라는 표현처럼

자신이 선택한 '어려움',

진리를 택할 때 찾아오는 거짓들의 공격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감수하였다..라는 것이다.

그리하는 그는 '하나님 나라'를 '이 거짓 세상에서' 담대하게 전했다.

 

오늘 레마는

'쇠사슬'의 이유다.

쇠사슬의 본질이다.

 

쇠사슬은 고통이고 고난이고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이다.

살아가는 게 그렇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를 신경쓰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제약이 많다.

어쩌면 '상처'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 상관없을  듯,

운명처럼 나를 덮어 쓰고 있는 오물 같은 어려움 조차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허락된 어려움임을 깨달으면

그것 마져 '소망의 쇠사슬'이 아닐까?

 

나.

나에게 허락하시려는 오늘 말씀의 레마는 과연 무엇일까?

계속 되풀이되는 '고난이 유익이다'라는 큰 의미를 떠나서

오늘 하루에 대하여 허락된 말씀.

" 담담함.

" 내 답답함에 도 불구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

" 그 답답함을 통해서 해야할 전도"

" 레마의 말씀을 통하여 전도한 후 체험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함"이다.

그래서 인가.

말씀이 있을 때마다 아주 적은 적용의 노력이

오늘 '아이 환우'에 대한 전도다.

비록 아이는 교회에 다녔지만 ,

난 불신자 하나에게 전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런 성과보다는

그 노력자체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느낌이 중요하다 생각된다.

그게 날 가볍게 한다.

이제 더.....성장이 있고... 때가 되어 ...

주님의 말씀이 강하게 내 영혼을 칠 때

어쩌면 내 인생의 일부분 내지 통째를 털어서라도

그 분 사도 바울님처럼

선교지에 들어갈 마음의 여지는 남겨 놓고 있다.

그냥, 서두르지 않는다.

그런데........오늘 허리가 많이 아프다.

어제 수술 도중 뜨끔한 이 고질 병이 ..ㅎㅎ

이 허리도 나아야 선교 나가지 않을 까 싶긴 한데...

주님이 내 인생에 어떠한 준비를 하시고 계실까?

 

주님을 믿고

말씀으로 점점 더 주님을 깊이 체험해 간다는 것.

인생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점점 줄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유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아직 내가 다른 분들처럼 더 깊고 큰 고난을 겪어 보지 안해서

미숙히도 저러한가 싶기는 하다.

그러나, 그마져도 주님의 내 달란트 폭에 대하여 허락하시는 한도에서

주님의 뜻에 맞게 난 쓰임 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점점 더 자유롭다.

 

 

 

주님.

오늘은 쇠사슬에 대하여 말씀 들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는 사도바울의 소망.

주님.

저에계 씌워진 쇠사슬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임을

주님과 저 만은 압니다.

이전에는 그 사슬이 온통 내 잘못 탓인 줄로만 알고

믿음과 괴리되어 살아 왔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아갑니다.

내 인생을 지배하는 그 사슬의 묶임을 통해 얻어진

깊은 통찰과 하나님과의 교류를 통하여

내 앉은 자리에서도

또 이 인터넷 공간에서도

알게 모르게 듣는 사람과 믿는 사람들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내 답답한 삶의 테두리.

그 테두리에 잠시 접촉해오는 '환우'와 '지인'들에게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가끔 전해주는 내 고집스러운 전도의 말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주님.

저... 오늘 말씀으로 더욱 뚜렷해집니다.

그들이 싫어할 그 진리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게

제 소망이 되어야 함을요.

감사합니다.

오늘의 레마로 더 뚜렷한 내 삶의 주관을 정함을 깨닫게 하심을요.

귀하신 내 아버지.

이제 저에게 씌워진 이 사슬을 풀어주시길 원합니다.

아니면, 더 깊은 기쁨으로 기뻐할 마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제 안에 격동으로 더 주님일 잘 할수 있길 성령으로 채우시던가요.

예수님.

제 자식들... 귀한 영적 리더들 되게 하소서.

그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겪고 있는 인생의 쓴 것이

그냥 버려지지 않고 주님 안에서 의미있는 사슬로 바뀌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자신의 바램이 바뀌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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