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히 기뻐해보자(골1:24-2:5) 본문
(골1:24-2:5)
해변에
파도 밀려오듯
고난은
끝없이 밀려온다
고통에
마음을 빼앗기면
영혼은 온통
물에젖은
암담함과 두려움 뿐이다
하지만 눈들어
그 뒤의 큰 바다를 보면
어느새 파도는 고요해지고
그 소리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들린다
내 인생을 지배할 듯
어려움이 밀려오지만
예수님의 남은 고난으로 바라보니
내 영혼은 잠잠해지고
내 속은
성령으로 강하게 역사하신다
오늘 하루
그래보자
주님 말씀으로 인내하자
밀려드는 파도 소리처럼
역사하시는
내 주님의 평강
체험해보자
온전히 기뻐해보자(골1:24-2:5)
1장
24.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괴로움.
고난.
남은 고난
너희를 위하여 받는 남은 고난.
기뻐함.
괴로움을 기뻐함.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기뻐함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한 기뻐함
육체에 채움.
인내.
고난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채움.
승화를 위한 전제 조건.
타인을 위함.
예수님을 위함.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는 의식.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타인을 위함.
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서게 함을 위함.
그를 위한 수고.
힘을 다한 수고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른 힘을 다한 수고.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른 최선의 수고
성령의 능력.
거기에 더해지는 나의 온전한 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은 무엇인가?
고난을 참음.
나 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몇개 있다.
그게 타인을 위한 참음이 되던가?
당연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참음이 될 수 있는가?
당연하다.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또다른 모습일 수 있으니..
그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는 의미는
아픔을 인내하면서 예수님 때문에 고스란히 그 아픔을 받아 들인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내가 그럴 수가 있는가?
고통이 있을 때 고통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몸부림 치지 않고
오늘 하루 '인내'를 할 수 있는가?
그것도 타인을 위하여........그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야 한다.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고난이 몸을 써서 해야 하는 수고 일 수도
창피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을 무릅쓰는 것일 수도
하기 싫은 피곤한 몸을 가지고도 되풀이 요구하는 미련한 (?) 설명에 대한 요구라도
인내하고 참아야 한다.
어쩌면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그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채우겠다는 마음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오늘 하루 살 것이라는 결심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이를 위하여..
이를 위한 목표가 '주님의 영광' , 타인의 온전한 예수님 깨달음을 위한 것임을 확연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도 내 혼자의 힘이 아닌
결심하는 순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비록 더 자주 잊었지만
수많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을 했듯이
또 풍성한........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연스레이 이겨나갈 수 있음을 경험해야 한다.
거기에 '수고'를 하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인생의 반경.
그리 넓지 않고
오늘도 하루가 '어제, 그제, 긋그제.....'와 크게 다름 없을
제한된 반경이기에 무엇 또 대단한 일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 보도록
눈을 똑바로 뜨고 오늘 하루 기뻐하자.
어렵겠지만 그리하자.
노할 일을 인내하자.
분할 일을 기뻐하자.
주님 기뻐하실 생각을 하며 그리하자.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만 받게 됨을 감사하며 그리하자.
영혼이 아니다.
육체.. 까짓거 잠시 흘려 보내며 인내하면 없어지고 오히려 회복의 아련한 기쁨을 느낄 그 고난의 실체를
온전히 깨달아 기뻐하자.
사람들의 엉뚱한 말에 의한 아픔... 그것도 남은 육체의 고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두근 거리는 것 같은 '실패의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기뻐하자.
고난을 기뻐하자.
그로 인해 성령의 역사하시는 그 충만한 은혜를 기대하며 기뻐하자.
성숙해지는 한단계의 발전을 깨달아가며 기뻐하자.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주말 당직하고 오니 몸이 느끼나요.
괜히 마음이 흔들리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흔들림이 한동안 별로 없어 버릇해서 인지요.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서며 다시 차분해지는 저를 느낍니다.
괜한 장래에 대한 걱정,
하루에 대한 의미없이 돌아가버릴 무의미성에 대한 짜증,
내 부족한 터부의 변화 없는 듯한데 대한 ..........생각 들.........이
열린 문틈을 뚫고 오는 겨울 바람처럼 솔솔.. 오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에 저를 열어 놓으면 반드시 감상의 날에 다칠 것 만 같습니다.
주여.
어쩌면 그런 감상의 드라이브들을 막는 것과
그로 인한 내 예기치 못한 '못된 행동 ㅜ.ㅜ;; 들을 막는 것도
저는 고난을 참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러함으로 주님 의식함으로 기뻐하며
오히려 주님의 명하신 선한 일들,
성령의 열매들을 세상에 조금이라도 드러내게 인내하고 참아내는 것,,
그리하여 이전의 내 인격의 부족함으로 나타내었던 행동양식들이
정말 예기치 못하게 다른
선한 모습으로 세상에 발하고
드디어는 내 속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강하게 역사하사
내 의지로 기뻐하려 노력하고
내 의지로 고난을 인내하려 했고
내 의지로 주님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지려 노력했으나
어느새 성령께서 제 영혼에 역사하사
내 분위기는 온유로 바뀌고
내 취하는 태도는 겸손함을 남들이 알게 하시고
나 스스로는 담담하고 평온한 마음을 취하게 되어
오늘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내 삶속에 역사하는 그러한 하루 되게 하소서.
주님.
그외에
당신이 원하시는 어떠한 삶의 다른 장소와 환경이 있으시다면
그리하여 그게 '인내'와 '고난을 기뻐함으로' 임해야 하는 계기가 된다면
제 게 지혜를 베푸사
또 말씀을 잊어버리고
옛 생각대로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늘깨우치시어 주세요.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제게는 순종으로 힘써서 기뻐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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