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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진정성을 위하여[삼하1:17-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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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진정성을 위하여[삼하1:17-27]

주하인 2016. 7. 13. 09:59


 

17.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이" 슬픈 노래.. 라 한다.

그냥 슬픈 노래도 아니고

이 슬픈 노래다.  

"This Lament"
 

 다윗의 마음이 저렇듯 처절하였음을

이 단어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요나단 뿐이었음이면 그냥 우정이나 조금 진한 전우애 같은 느낌,

자신을 알아주는 지인이 죽었음에 대하여

잠시 안타까움으로 느껴졌을 것을....

분명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라 나오고



23.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사울에 대한 애도 가

요나단의 그것과 계속 되풀이 겸하여 나오고 있다.

 


27.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여기 스크랩에는 빠져있지만

요나단의 '다윗, 자신에 대한 사랑'을 아름다왔다는 표현으로 써는 있지만

사울보다 더 비중을 둔 느낌은 전혀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리 느껴졌고

두 용사가 엎드러진 것에 대하여

확실히 가슴아파 하고 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의 이 애절한 슬픔의 '가식적'이지 않음에 대하여 주목이 되어 지고 있다.

또한, 운율은 분명코 따르는데

이 수필 같은 , 산문 같은 글을 가지고 어떻게 노래가사로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노래들이라면

4/4박자 내지 ... 박자를 가지고 적당한 포맷으로 이루어지는 곡이기에

이런 가사를 가지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데...그렇다면..

우리 가락이나

TV에 보면 몽고 대 초원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불 앞에서 부르던 그런 스타일의 노래라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런 가락에 맞추어

오늘 묵상구절을 음미하면

자극적이고 되풀이 해서 흥분시키는 요즈음의 노래와는 또다른

훨씬 soulful하고 영적인 느낌의 노래가 되어

내 가슴을 흐르는 듯하며

그 다윗의 슬픈 심사가 가슴을 찌르는 듯 .. 슬쩍...(깊은 묵상이 안되어서.ㅎ) ..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의 슬픔은 거짓이 아니다.


사울.

그는 비록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긴 했었고

그 사실을 머리속으로 알고

결단력 강한 상남자의 가슴으로 받아 들인다고 해도

저런 절절한 진심의 슬픔이 가능할까?

아.

예술인의 감성으로는 상상을 통하여 가능한 경지까지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더구나 절절히 사랑하던 요나단의 곁에 사울 이름하나를 끼워 넣으면

정책적으로 ^^;;; 가능하기도 하나

저런 영적인 노래가 나올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 사울은

변덕덩어리에  다윗을 여러차례 죽음으로 몰았던 자이다.

그런 그를 잠시의 변덕으로 감성을 이끌어 내어

저렇듯 깊은 노래를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슬픈 노래.


그렇다면 가식이 되지 않은

다윗의 진심의 슬픔..

이 것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의 심성에 바탕을 두고

그렇듯 만들어진 달란트 말고 말이다.


 생각이다.

생각 훈련을 해야 한다.

' 사울 ,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다.' 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열심히 되뇌여야 한다.

그런 결심이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굳건함으로 뿌리 박기 위해서

그는 양치기 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존재를 묵상하고 경험하였을까?

그리고는 기도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문제는 기도의 방향이다.

그 기도가 겨우..왕을 되기 위한 연습이나 현실적 문제에 대한 갈구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다윗도 연습을 머리에 그리며 쉐도우 댄싱하듯 , 기도 제목에 넣엇으리라.. )

그러나, 그 중심은

사울을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그 내면의 공간을 확고 부도히 만들 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마음 마져 바꾸어주시길

수도 없이 간구하고 간구했을것 같다.

그래서 그 결과 나온 것이

저런 상황에서 저런 슬픔,

이 슬픔이 .... 절절이 나오게 된 배경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는 것이 모두 인가?

쉽게 우는것  ^^;; ????


진실한 감정이 오늘 묵상의 주제다.

진실한 울음이 어디까지인가?
 

계속 말했지만

사울을 위하여 울기 위한 인간적 노력, 책을 통한 인격의 도모... 등으로 가능하기도 하지만

저런 영혼 깊숙히 흐르는

이 슬픔이

원수를 사랑하라시는 대로 나오기는

전혀 쉽지 않은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 정도나 예가 될까?

나..

오늘 말씀을 보면서 받아 들여야 할 것은

내 생각을 다시한번

광야의 양치기 소년 다윗처럼

지속적 연습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 생각의 방향이

'하나님이 선택하시면 옳다' 는 올바른 생각이

다른 사단의 생각을 완전히 뚫고

내 영혼, 내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바탕하여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마음대로 흐르셔서

옳은 감성이 날 사로잡았으면 좋겠다.

비록 그게 세상의 큰 흐름과는 동떨어진 듯,

조금은 고리타분하고 어쩌면 남들 보기에 가식인 듯 보일지라도

그게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일이기에

난 슬퍼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

그런자가 되고 싶다.


그걸... 이 슬픈 노래..라시는 말씀에

오늘 그대로 담아 보여주시는 것이시다.



주님.

아시지요?

제 머리속에 움직거리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요....

이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생각을 하려 하는 노력들이 조금씩 힘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내 생각이 주님의 명령, 말씀을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논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뭇거려지고

덩달아 내 감성도 한번씩 어떤게 옳은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제 주여.

이 슬픈 일은 슬프게 울수 있는 감성이

자유롭게 흐르게 하시되

하나님이 옳다시면

어느것하나 거슬리고 눈치볼게 없음을 확신케 하소서.

그래서 단순한 에너지의 흐름....

선하고 옳은 흐름이

내 안에서 폭포수처럼 흘러 가게 하소서.


주여.

믿습니다.

온전하신 주님의영이 내 안에서

흐를 수 있는 그런 자 되게 하소서.


주여.

그리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제 행실에 대하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지게 하시고

회개에 더욱 깊이 신경쓰게 하소서.


우리주 에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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