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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혜는[대하35:20-27]

주하인 2013. 8. 30. 08:21

진정한 지혜는

있을 자리에 있을 줄 아는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작고 큼에 그리 흔들리지 않는

자족에 있는 듯도 합니다

 

또 진정한 지혜는

지나간 어둠

스쳐간 추위에서

영롱한 이슬을

맺어내는 자 같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매일의  도우심과

매 순간의 동행이 없다면

가능치 않을 것임을

이제야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계셔서

내 안에 역사하시고

늘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영광을 올릴 수 밖에 없음을

깊이 고백합니다

 


20.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

    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이  모든 일 후 ... !

너무 너무 잘하고 이쁜 요시아의 행동 바로 뒤에

애굽 왕이 쳐들어 왔다.

 

환란은 '필수'코스..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들..

나름 깊은 믿음으로 열정을 다해 주님을 의지 했는데도 생기는 일들...

그 고난들에 흔들리지 말자.

그대로 받아 들이자.

요시아왕도 히스기야 왕도

그렇게 되었다.

 

 

 

21.느고가 요시아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그런데, 그 환란을 몰고온 당사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인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훨씬 더 많이 아는 것 같고

당연히도 애굽, 그 불신의 나라의 수좌가 '하나님' 이름을 들먹일 때

어디까지 받아 들여야 하는가?

더더구나, 그의 뜻대로 돌아선다면

분명코 현실적 문제가 생기지 않던가?

그냥 돌아설 때

사람들이 조롱하지 않겠는가?

' 아니.. 하나님 이름 댔다고 속다니.. '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발견하고

내외적으로 굉장히 충일한 영적 육적상태에 있을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

오늘 하루 중에서는 과연 저러한 일이 없을까?

당혹스러운..

 

정말 필요한 것이 '지혜'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 맞으시다. '

그렇지만, 오늘 같이 불분명한 상태의 하나님의 이름이 거론될 때

그것을 알아채리는  것이 ' 진정한 지혜'가 아닐런가?

 아마도 나에게 동일한 상황이 주어졌다면

난.. 어찌 했을것인가?

거의 틀림없이 '요시아'왕과 동일한 판단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

'조급함'이 아니던가?

어쩌면 '교만'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계속 상황을 늘어놓으면서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하나님 영으로 충만한 상태' 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내외적으로 강건한 상태로 신앙훈련을 잘 받아 왔기에

교만 보다는 '의로운'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상대는 '자격없는 '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을 개연성이 더 많고

더더구나 그것을 포기함으로

현실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충분할 때,

명분이 전혀 없는데...........

어찌해야 하는가?

무엇을 보이시려시는가?
 

불신자의 입에서

'하나님' 소리가 나올 때.....

그때..는 한번 무조건 스톱해야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는 그 상황을 두고 '한번 정도 더' 십자가 아래 가져가서

깊은 장고를 하고

성령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문제다.

교만은 늘 존재한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교만한 자가 아니다.

그 기준을 가지고 신앙인의 눈으로 보아도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이기에

교만의 대상으로 보일 리가 없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은 당연히 그를 의롭다 하시지만 )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도

주춤할 기새가 없었다는 것은 '교만'의 발로가 맞다.

그러기에 교만은 매사에 매시 매초마다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한다.

더구나, 저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동했다면

믿지 않는 저 불신의 나라 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지름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래야 한다.

어느새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한다. '

나의 깊은 열등감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말씀대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함을 내 마음이 느낀다.

내가 의롭다고 생각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세상이 조금더 밝아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지혜가 쏟아져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외래에 진찰하러 오는 분들이

내 '진료실에 걸린' 시화를 보고 감탄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속사포처럼 그들에게 증거하고

그 말씀을 듣는 그들이 ' 눈물'을 글썽지게 만드는 기회가

점차로 늘어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사는 나는

내 상황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통한 마음의 버거움과 상관없는

평화를 누리기 시작함이

역대하 임금들의 그것들과 조금씩 흐름이 비슷해져 감을 느낀다.

요시아 왕의 그것도 잘 이해가 된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이 그 것의 지나침을 경계하시는 듯하다 .

교만..

그로 인한 어려움의 예상.

교만의 한계.

교만은 지혜롭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

가장 똑똑함은 가장 미련함.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

교만은 하나님을 매시 매초 잊지 말아야 함의 반대적 상황.

지혜에 대하여..........................등 생각을 많이 하게 하신다.

감사하다.

 

 

주님.

수술 .. 잘끝났습니다.

참 버거운 환우의 성품으로 힘들었던 케이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인도하셔서 잘끝나고

마무리하려 앉았습니다.

오늘은 '보통'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진정한 '교만',

겸손하고 의로와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타나는 깊은 교만 부분을

다루게 하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영육 간에 건강한 인도를 감사드립니다.

주여.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이름을 물어가는

매사의 동행의 삶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우는 사자처럼 물자를 찾는

사단의 궤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시되

저의 부족한 부분,

깊은 부분의 아직 허함을 아시오니

요시아 왕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도우소서.

그리하실 줄 믿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매일 죄씻으시고

매일 부활을 도우시는 성령의 보혜의 은총이 있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시니

저 반드시 승리하여

정말 지혜로운 자 될줄 확신합니다.

주여.

의로운자, 주하인이 될 줄 믿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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