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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복[신28: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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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복[신28:1-14]

주하인 2013. 10. 17. 14:20

홀로 두고보면

나방일까 나비일까

구분이 힘들만큼

모습 화려치 않지만

 

모여 있어 서

겨우 그럴듯한

작은 풀꽃 위에 있고

 

흐르는 바람과

가을 햇살의 청명함이 꾸며주니

그제야

달리 보이는구나

 

이건

단지 조화로움과

그로 인한

괜찮은 아름다움을 넘어

복이로구나

 

그랬구나

주님의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이란

내 생각을 넘고

여럿의 공감을 넘고

우주를 넘나드는 게

맞구나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말씀을 청종하려 애쓴다.

가끔 실제 청종할 때가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그래서 복을 받은 자임을 '자주' 느낀다.

^^*

^^;;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그런데도 '복'을

성읍에서도 받고

들에서도 받고....함은

잘모르겠다.

ㅜ.ㅜ;;

 

 

4.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특히

내 '자녀'문제에 들어가면

그게 '복'이라면 복이고 아니라면 한참 아닐 것만 같다.

 

내 가는 곳 모두가 '복'을 받는가?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복'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이

사실인가?

나에게만 느껴지는 당혹감인가?

 

 

11.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그렇다면 아직 '복' 받을 시간이 안되어서인가?

복받을 자격이 없어서 인가?

'내게 주리라' 약속하신 그제가 덜 되어서 인가?

 

 내 아들들..그리그리 괜찮지만, 저리 저리 있는 데 저게 '복'인가?

나.. 한동안 풍성한 것 같다가 다시 조그라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게 '복'인가?

나이 50 넘어 세상이 차분히 보이긴 하지만 한편 ' 외로워지고 힘없음이 신경쓰이는데' 그게 복인가?

자꾸 조금씩 조금씩 '영향력'이 줄어가는 데 그것이 복인가?

아니.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내 외적인 매력과

내 의사로서의 위치와

의사 자체에 대한 사회적 눈길이 그리 호의적여저 가지 않는데 그것도 '복인가?

또, 점차로 내 하는 일에 자신감이 줄어들고,

생기는 부작용들에 대하여 내성이 감소되어 가는데 그것이 복인가?

아.. 이전 같은 강렬함은 아니어도 '두려움'은 소실되지 않았는데 그것도 복인가?

약하게나마 아직 남아

내 삶을 흔드는 수십년된 내 터부,.. 는 또 '복인가?

...............

 

분명코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확신할 만큼

기쁘고 깊고 기대가 되는 체험들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난 자주 '기쁘다'

자주라는 표현은 아닐 때도 있다는 이야기다.

난.. 복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복'이란 실체를 자신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복.

그처럼 한국인이 좋아하는 '복'의 개념은 무엇인가?

돈만 많다고 복인가?

자식이 성공했다고 복인가?

지위?

수명?

.....................

무엇이 복인가?

 

오늘 말씀은 '복' ..... 복..복...복..복 을 넘어 ... 매사 형통한. ..진정한 .. 이다.

그래.. 고백한대로 난.. 말씀을 묵상하고

진정한 기쁨과 형통함이 무엇인지 알고

그 원인이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 탓임을 안다.

그것을 '평강'이라 '샬롬'이라 난 늘 되뇌이곤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오늘 말씀처럼 '말씀을 청종' , 그것도 제대로 매일 매사 청종하려 노력하는 자이기 때문임을 알고

그 결과 하나님이 날 동행하시는 결과임을 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묵상에서 처럼 '복.....................'이  형통하고 넘치는 '복'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도 몰래 내 마음속에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도 눈뜨자마자 나를 집어 삼키려고 하는

불행의 이유들에 맞추어 보았다.

위에 그래서 '복이던가?' 하면서 나열해 놓은 그것이다.

만일 형통하지 않는 저런 불행한 일들이

아직도 내 삶에 남아 있고

그게 늘 수십년간 되풀이 연습해온 ㅜ.ㅜ;;;   이전의 '예기 불안'처럼 

그대로 내 불행을 예고 하는 것이라면

난 어찌 '복 받은 자'라 할 수 있던가?

매일 말씀은 살아계셔서 하나님으로 나에게 오셔서 이렇게 지도하시는데

그렇다면 말씀이 헛 이야기란 것인가?

 

아니지 않는가?

나의 그 수많은 영적 경험들.

그 간증거리들..

지금도 자주 자주 역사하시어 옆에 계시는 듯한 감동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연히도 하나님의 말씀은 맞다.

그렇다면 아직도 이렇게 가지고 있는 인생의 불합리한 것들과 상처들과 풀어지지 않은 듯한 매듭은

내 안에 상존하는 듯 하지만

그것이 있음도 '복', 그것도 오늘 말씀하시는 '복'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

오늘 나에게 '왜 복을 ' 말씀하셨을까?

그것

'주하인아.. 너는 진정 복된 자다.

걱정 보다는 기뻐하라' 시는 것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것, 논리적 유희에 의하여 그러해야 하는가?

내 의지로 복 받은 자라 세뇌하여야 하는가?

복의 다른 개념을 받아 들여야 하지 않는가?

 

'복' .

지금 나는 위의 상존한 여러 문제들 속에 있지만

자주 자주 기쁘다.

그것 오래 믿어왔던 불행의 소리들, 과거의 소리들을 믿어옴을 대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결심'을  한 후 부터

말씀이 예언처럼 들리며

내 상황과 내 느낌에 상관없이 잔잔히 내 속에 흐르는 든든함이 더해져 왔다.

그것.

말씀이신 하나님의 영을 내 영혼의 성전에 들이는 '선언'이자

하나님께서 조금 성장하자 성장하는 만큼 나에게 훈련시키시는 과정의 일환일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속에서 그리 느껴진다.

그것마져 성령께서.. 그 시간과 그 생각의 선한 몰아침을 허락하시고

결국 난 성장을 이루어 내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난 그게 진정한 '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상황에 상관없는 평강.

그게 그렇게도 내가 추구해오던 삶의 방향,

신앙의 방향이었다.

그러면서 결국 성령이 폭주하는 삶이 되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평강이 넘치고 은혜가 날 사로잡아

내 가진 모든 단점들은 주님 임재 앞에 녹아나지고

난 '성화'되어 주님 기뻐하시는  자 될 것이다.

 

 점심 시간에 회의가 있어서 들어갔다.

센터장 회의

회의 전에 ' 묵상' 을 잠깐 읽고 진행한다.

미션 병원이라서..

오늘 말씀을 읽으신 의료 원장님께서 그러신다.

 '이 복에 대한 말씀 주신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에 있을 때에요..

 힘들 때 주신 복에 대한 말씀..

 희망이지요?"

그랬다.

복에 대하여 생각할 부분이다.

 

난...

아직 현실은 그렇다.

내 심적 흔들림도 비슷하다.

그러나 , 나를 바라보는 내 눈은 조금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것도 '복'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 예전보다 크다.

그게 복이다.

하나님은 결국 '선'으로 우릴 이끄실 것이시다.

겸손이 가장 복이다.

겸손케 하기 위하여 광야, 그 무섭고 전갈 불뱀이 넘치고 물없는 곳을 이끄셨고

결국 먹이고 입히시면서

겸손을 이루어 냈고

마침내 복을 주셨다.

 

오늘의 복.

진정한 복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나를 바꿀 수 있는 힘.

잘못했다면 바꾸는 것.. 주님 생각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그래서 현실도 바뀌는 것.

그게 복이다.

 

 

주님.

제가 복이 필요합니다.

왜 이리 달라지지 못하는 지요.

주님은 이리 복을 말씀하시는 데

제 문제는 이리 상존하는 지요.

그래서 묵상했습니다.

진정한 복에 대하여서요.

정확지는 않지만 깨달아 지는 바가 있습니다.

더욱 겸손해지는 것.

주님 앞에서 그래지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 뜻안에서 제가 자연스레이 그리되게 하소서.

그리고 나머지는 주님 뜻대로 다 축복으로 바뀜을 기대하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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