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중심에 내가 있다[신28:36-57] 본문
들풀과 자연의 경계에
싱그러움과 지저분의 사이에
차가움과 시원함의 가운데에
그가 서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이 서 있다
그 위에 나비 앉았다
난 그것을 보고 있다
복과 저주의 중심에
내가 서 있음을
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
아직 내 위에 있음을
난 보고 있다
난
진정으로
복이 있는 자다
43.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한동안 ( 수년간~) 잘 나갔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아 ,세상적인 기준에 맞추어 '복'이라 하기엔 ㅜ.ㅜ;;
아직 더 받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난 잘 흐른다고 생각되었다.
그것 ,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안에서 만족하게 되어가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팍팍했던 내 심령이 그렇게 변한 것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형통으로 느껴졌고
조만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심령천국이 '조~기 보일 듯'했다.
그런데......올해들어 갑자기 급전직하다.
잘 흐르는 것 같던 것이 멈추어진 듯하더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다.
거기에 어느새 난.. 진료실에서 버거운 내 심령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 지고 있다 .^^;;;
외로울 상황은 늘어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잔잔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점점 나는 낮아지고 그들은 '위'에 뛰어나고.. 라는 오늘의 표현처럼
자꾸만 나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려는 상황들이 몰려든다.
'몰려든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럼에도 난 균형추 위에 서 있듯
깊은 힘듦에도
너무 좋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다.
45.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
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저주' 같은 말씀이 되풀이 된다.
그럼에도 그리 신경쓰이지 않는다.
보기 싫어 얼른 덮어버리지 않는다.
그제의 말씀에는'복',그것도 넘치는 복에 대한 말씀으로 희망에 거하게 하시더니
어제부터는 무서운, 그것도 살이 떨릴 만큼 무서운 얘기로
급변하셔서
오늘까지 되풀이시다.
그 양극단,
양 극단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느냐 "청종하지 않느냐"가 있다.
즉, 나의 '선택'이
그 양극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님은 '은혜'와 '공의'를 통해
우리의 성장을 기대하신다.
그런데 지금
위에서도 고백했지만
내 저울은 어제오늘 쪽으로 기운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혹시 안계시는 것은 아닌지.. 말씀을 내가 잘못.. ' 이라는 의혹보다는
내 저울추의 잘못으로 인한 현상은 아닌지
더 연단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현상인지 ( 광야.. 낮추사..마침내 복을...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 ) 구분함이 필요하다.
말씀대로 '세상의 넘침'은 줄어드나
그게 반드시 '복'이 줄어듦 만은 아닌 것은
날 사랑하신 하나님의 연단과정 중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더 기뻐할 큰 '복'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고 기쁨으로 기대할 수 있다면...
그러나, 내 잘못에 의한 오늘 말씀대로의 저주의 과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그냥 두려워 하기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 혹시 하나님이 이토록 변덕 스러운 분이실까, 살아계시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의혹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의혹을 하는 것이 두려운 사실임을 직면하기 싫어
그냥 '멍~~ ' 한 억압의 심리 기제,
사단이 그토록 좋아하는 부정.. 속에서 방치하다가
어느새인지도 모르는 깊은 불신자로 되어 버리는
그런 길을 걸어야 하던가?
어제 목사님이 설교중에서 말씀하셨다 .
전도가 어려운 자들을 낮은 단계 부터 이야기 하시는 데
'불교나 이슬람교도들은 '신'은 믿기에 어느 순간에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면 쉽다.
신은 믿되 기독교는 아니라는 사람들은 조금 더 어렵지만 괜찮다.
그 다음은 신은 없다.. 라 는 부류고,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자들은
기독교도 존중하고 목사님들에게도 일정부분 존경심을 표현하나
아직은 믿을 때가 아니라는 사람들..
잘 믿다가 떠나는 사람들.. 이란다.
그렇게 따지면 '의혹' 속에 자신을 묻어 두고 있다가
불신의 늪에 빠져드는게 제일 어렵지 않을까?
무서운 시험의 기로다.
그것을 말씀을 통하여 깨우치길 바라시는 것이실 것 같다.
복과 저주의 양 차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는 '내'가 중심이다.
그렇다면 나..지금의 현실적 심적 어려움의 가중은
내 청종하지 못함이던가?
어쩌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행위는 하나
더구나 글을 이토록 청산유수로 잘쓴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으나
실은 그게 매일 해온 습관에 지나지 않고
말씀이 실생활에서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말씀' 이 좋아서 더 적용을 서두르는 '감동의 반영'이나
말씀이 두려워서 조심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작용도 아니어서
함부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을 해치우는 것..
그것이 내모습이 아닐런가?
나.
안다.
내 잘못하는 것.. 많다.
그러나 , 하나님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주심은 사랑하심이어서임에도
난 그것을 '내 오래된 터부'의 결과로 어쩔 수없다는
어린애의 어리광처럼 되풀이 하여 오고 있어서 일 것같다.
그것... 하나님이 오래오래 참으셨다 ..
이제 말씀으로 강하게 깨닫게 하시는 것 만 같다.
나.
그래서 행동을 교정하기로 했다.
마음 속에서 거부감이 일어난다.
더 웃고 더 친절하고 더 기다려 주고...................
속이 간질거리려 하고 울컥하려한다.
하지만 해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데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저렇게 문제들이 생기고
멀리 보아도 '두려울 일'들 만이 마치 하나님이 오늘 예고하시는 것 같이
위기로 다가올 것만 같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탓이고
그래서 '저주 '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은
내가 더욱 말씀을 청종하고 준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때 현실은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현실이 바뀌어 더욱 풍성이 될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나를 더욱 강하게 하셔서 다른 하나님의 방향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
어느 것이든 하나님은 '복'으로 날 인식시키시고 그리로 이끄실 것이다.
그렇다.
난 아직 .. 복과 저주의 중심을 비교적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 저주 쪽으로 저울이 내려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느끼고 있음은 다행이다.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는 노력이 있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날 변화시켜 더 쓰시려는 '희망적 현상'임을 스스로 느낀다.
의학적으로 '정신병'과 '신경증'을 구분하는 기본이
자신의 병리적 현상을 인식하느냐 아니냐다.
인식하느냐는 아주 중요한 현상이다.
회복의 기준이다.
난.. 아직 회복의 가능성 많다.
다행이도 말씀 묵상을 붙들고 있다.
매일 레마를 받음을 기뻐하고 있다.
그래서 얼른 나를 바꾸면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다.
그래서 매일매일 새로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날 도우신다.
은혜다.
그래서 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부활할 수 있다.
장래?
몰려오려는 불안한 생각들?
하나님이 광야, 그 광막하고 황량하고 물없는 건조한 곳을 지나는 것은 '숙명'이라 하셨다.
연단을 거쳐야 하는 ..
힘들지만 거쳐야 한다면 '말씀'대로 지키리라
더이상 불청종의 죄를 지어서 고생하지말고
얼른 다시 말씀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래서 내 행동이 부족하면 바꾸어야 한다.
어색함은 없다.
과거는 부활됨으로 새로워졌다.
또 새로워짐으로 새롭게 나가면 된다 .
그게. .복이다.
그것을 앎으로 '겸손'을 이루어나감이 진정한 복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됨이 진정한 복이다.
'복'
진정한 복.
그게 꼭 외적인 현상, 내 흔들림과 일치하지 않음이 깨달아짐이다.
저주와 복.
꼭 양극 만은 아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심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고 하나님을 청종하면
복 안에 있을 수 있음이다.
감사하다.
기도
주님.
지금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안이라 함은 내 속에서 내가 아직도 콘트롤 하지 못하는 죄성으로 인한
제 당혹감입니다.
오래 습관화 해온 '불안'감들이 용트림하려 함입니다.
말씀 안에서 축복으로 인식하고 잘 다져지고 있던
마음의 평정이 조금씩 흔들리려 함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
매일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사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어찌도 이리 깊고 힘든지요.
주님.
외적으로 전국 각 대형병원 마져 흔들리고 곧 모라토리움 소리 나올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때
나이든 산부인과 의사로 같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그 뿐입니까?
주님 아시오매 가지고 있는 문제들요........
아..
문제만 보면 정말 내가 '복' 중에 있었던가 생각이들며
회의감이 밀려 오려 합니다.
그게 제게는 문제 중 가장 큰 문제였었습니다 .
저주로 생각되는..
저주.. 잘 믿어오던 제게 이런 저주라니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금방 말씀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 깨달음을 주심은
하나님의 날 사랑하심이고 나에게 주신 지혜시고
내가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직 청종하는 증거임을 스스로 알아 차림입니다 .
그게 감사합니다.
주여.
저주를 말씀하시지만
제가 받을 복을 위하여
제가 받지 못할 복이 안타까우셔서
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겸손'의 과정을 이루어내게 하시고
마침내 주실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탓임을 깨달았습니다.
주여.
그게 감사합니다.
저주를 말씀하지만 복을 느끼는 제가 감사합니다.
그 원인의 중심에 주님이 계심이 감사합니다 .
이후의 제 삶이 '복'의 근원이 되고
복 가운데 서 있을 복 있는 자가 됨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중심추의 역할을 다시 잡겠습니다.
일상에서 잘못을 회개하겠습니다.
바로 잡겠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던 것 돌아보면서 예수 십자가 앞으로 가져 가겠습니다.
다시는 똑같은 되풀이 못하도록 주여 붙드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제가 성화되게 하소서.
어려움.. 그것을 통해 제가 변할 기회가 된다면
그게 복임을 다시 한번 깨닫사오니
주여.. 그런 복을 깊이 깊이 바라게 하소서.
주님 뜻대로 변하여
결국 주님 뵈올 때 수고했다는 말씀 듣는 제가 되게 하소서.
매사에 주님의 기쁨의 어루만지심 느끼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런 오늘 되게 하소서.
내 자식들 기억하시고
내 가진 모든 문제들 기억하시사
다시 복으로 바꾸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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