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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인생관(레6:8-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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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인생관(레6:8-23)

주하인 2010. 8. 13. 10:19

  제 6 장 ( Chapter 6, Leviticus )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루도 빼놓지 말고

저에게도 일러 가르치어 주소서.

주님.
간절히 빕니다.

   
 
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단 위에 불을 항상 피우라.

기도하라.

예배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제사장의 번제에 대하여 나온다.

제사장은 제사를 원하는 타인에 대하여 영향을 미치는 자다.

이타적 사랑을 원하시는 듯 하다.

 

번제.

속죄제를 드리고 나서

속죄에 의하여 깨끗해진 상태에서

은혜(성령의 사죄은총)를 전파기 위한 제사.

 

 

 주하인은 자신의 속죄와 성령충만함을 위하여

실제적 속죄제인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를 드리고

실제적 번제인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는 기도를

늘 드려야 함은 물론이고

내 스스로는 '제사장'의 직분임을 잊지 않아

타인을 주님과 가까이 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자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타인을 위하여 중보하고

타인을 위하여 선을 행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내 삶의 목표' 가 되어야 한다.

' 화목제의 기름' 

기름은 성령이시다.

화목.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

인간과 인간과의 화목을 위하여

늘 '단위에 향'을 피워야 한다.

그게 내가 지향해야할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가끔은

인생의 목표가 왜 그리 구태의연하고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유치한 것이냐

생각될 때가 없지 않았다.

마치 아이들이 커서 무엇될것이냐 물으면

대통령, .. 하듯이 그런 막연한 이야기가

인생의 목표인 것 같은 생각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이 땅'이 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는가?

본질적이고 '천국의 삶'을 위한 품성의 회복,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어쩌면 '천국의 시민'으로 살기위해 이땅을 사는 우리의 마땅한 바 아니던가?

그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바 우리의 본래 정체다.

그렇다면 이땅이 목표가 되는 것은

빌립보서의 표현대로 '아랫 것'이고

위와 같은 목표는 '위엣것' 을 찾는 것이 맞다.

오늘 제사장으로서 단 위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남의 화목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성령충만함을 사모하는 기도는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할 '위엣 것'을 지향하는

진실한 인생관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차원적인 삶을 위하여 '수도적'이며 '인생을 도외시'한 삶을 추구하는

율법적 삶이 문제다.

그것은 또다른 미련한 왜곡이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허락하심은 세상에 부대껴 살면서 성화되는 모습을 보시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진실한 인생관을 주님안에서 추구함은

삶에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게 하고

어떠한 순간에서도 기쁨이 빨리 회복되도록 하게 된다.

그 전제가 정확한 인생관을 가지고

끊이지 않는 '기도'를 통한 '성령의 충만함'이다.

그리하면 삶이 변화된다.

물질이 따라올 수 있다.

명예가 그리할 수 있다.

삶의 힘참이 그리될 수 있다.

 

 매년 7-8월 사이에 환우들이 몰려든다.

요 며칠 사이 정말 진료를 많이 하고 수술도 많이 했다.

오늘 아침 입원 환우분들 소독을 하기 위해 진찰실에 내려 오라 했다.

난소혹 파열로 수술한 젊은 여성의 보호자로 오신 어머니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시더니

'교회 다니냐'는 전도의 물음에

'이전에 다니었는 데 지금은 아니다'라 하신다.

눈도 크고 따님의 수술 하는 날 많이도 우시던 분.

아버님이 예수님 잘 믿고 정말 당신을 배려 잘 하시던 분인데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후 부터 그랬다 하신다.

얼마나 어머님을 잘 배려 하셨는 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당신이 스스로 속옷을 깨끗이 빨아 놓고 소천 하셨다 한다.

그 후로 충격을 받아 교회를 쉬고 계신단다.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아침에 묵상이 '중보자 화목자로서의 내'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아니던가?

숙연해지려는 그 분에게 그리 이야기 하였다 .

' 주님은 그래도 선이시다.'

그 크고 놀라우신 분의 뜻을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도 천국에서 더 큰일에 쓰시려고 잠시 먼저 모시고 가셨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우리는 이해 못하더라도 선이심을 믿는게 중요하다.

교회 나가라' 했더니

그렇잖아도 꿈에 남편께서 천국에서 큰 일 담당하고 계시다 하시며

교회에 나가겠다 하신다.

할렐루야.

 

 만일..

말씀에 매일 서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했더라면

어찌 내 입에서 그들의 슬픔 앞에

그래도 당당히 예수님 믿음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나.

부족하지만 내 삶 속에서 기회될 때마다

주님을 증거하려 애쓸 수 있음은

성령의 충만히 이끄심 탓이다.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씀 묵상과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충만함' 탓이다.

 그렇다.

아마도 이게 '성령의 사죄은총'을 사모하는 번제를 드리는 행위일 수 있다.

늘 사모함.

주님을 전함이 인생의 진실한 목표임이 굳건히 사로잡은 탓이라

스스로 흐뭇한 생각이 든다.

나.

전도하고 나면 마음이 정말 뿌~듯하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느껴진다.

내 삶이 희망과 소망으로 소롯이 차는 듯하다.

덜 늙어 보인다고

특별히 요새 말씀 들 많이 하신다.

그렇다

오늘은 특별히 더 '남을 위한 하나님 과의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한

일상의 한걸음 한걸음이 되는 하루이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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